연극 <로테/운수>는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고전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운수 좋은 날>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작품 속 여성 등장인물인 ‘로테’와 ‘운수’를 내세워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이야기였다.
‘로테’는 낙성대학교 미술사학과 부교수로, 젊은 나이에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우울증, 공황장애, 망상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이유는 1년 전부터 시작된 스토킹 때문이다. 로테는 스토킹 피해자이다.
하지만 그런 로테의 상황을 이해하는 이는 없다. 스토킹 때문에 찾아간 경찰관도, 로테를 사랑한다는 남자친구도, 로테 주변인들도, 모두 ‘스토킹’의 원인을 ‘로테가 예뻐서’, ‘로테가 잘나서’, ‘로테를 사랑해서’, 와 같은 가볍고 장난스러운 이유로 무마시킨다. 로테가 찾아간 정신과의 의사조차 로테의 이야기를 들은 후 망상장애 환자의 망상일 뿐, 로테가 겪은 피해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토킹에 더해 2차 가해가 일어나자 로테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이고 그녀의 내면은 점점 거멓게 물들어 간다. 연극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연출하였는데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등장해 하얀 바닥을 새까만 페인트로 천천히 칠해나가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하얀 바닥이 점점 검은 바닥으로 바뀌며 로테가 서 있을 곳은 사라져간다. 한 줄씩 검은 페인트가 칠해질 때마다 그것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같이 무거워졌다.
이런 여성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한국의 스토킹 처벌법은 2021년에 제정된 이후 꾸준히 바뀌어왔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한국에서 피해자에게 가하는 2차 가해가 굉장히 흔하다.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연극 속 경찰관, 남자친구, 주변인들처럼 스토킹 피해자에게 가해자에 대한 선처를 강요하거나 여성을 보호하면 된다, 라는 결론으로 종결될 때가 많다.
범죄 앞에서는 사랑이 원인이 될 수 없다. 사랑으로 하나의 범죄를 미화시켜서도 안 된다. 하지만 여성혐오 범죄, 특히 스토킹 같은 경우 ‘사랑하는 사람의 특이한 집착’, ‘과도한 애정’ 같은 마치 하나의 로맨스물로 각색시켜 범죄를 미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연극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피해자가 바라는 세상은 누군가에게 보호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나 혼자서도 일어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로테와 결혼을 결심한 남자친구는 로테에게 자신이 스토킹 가해자로부터 너를 보호해 주겠다며, 잘나서 어떡하냐며, 사랑한다며 결혼을 청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보호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어딘가 심각하게 잘못된 세상이 아닐까?
여기 한 명의 피해자가 더 있다. ‘운수’는 남편 ‘김첨지’에게 가정폭력을 받으며 살아오던 가정폭력 피해자이다. 그녀는 뚝배기로 김첨지를 10번 내려쳐 죽인 후 법원에 서 있다.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자신의 피해사실을 말하려 하지만 말이 쉽게 나오지 않고 천천히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녀 곁에 있던 내면의 무언가가(연극에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인물로 등장한다) 하얀 벽에 무언가를 휘갈겨 쓰는데 굉장히 공격적인 투로 운수를 몰아붙이며 위협한다. 연극의 끝에서 이 공격적인 투로 말하던 내면의 운수가 결국에는 홀로 서 있는 운수를 안아주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매일매일 가해자와 한 공간 속에서 지내며 뺨을 맞고 발길질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가해자 앞에서 숨죽인 채 살아왔던 운수가 ‘이년아 말을 해라’라는 말에 자신의 고통을 소리쳐 말하며 결국에는 슬프게 우는 장면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는 아내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병든 아내로 묘사되는 김첨지의 아내는 김첨지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폭력을 당하고 욕설을 얻어먹은 후 죽었다. 과거에는 이러한 묘사가 남성인물이 가진 고유한 성격, 남성이 처한 시대 상황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 겉은 공격적이지만 알고 보면 속은 한없이 아내를 위했던 양면적인 인물, 결국에는 아내를 사랑한 한 남성의 비극으로 쓰였을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소설의 전개와 인물의 설정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대적 상황을 인지하고 보더라도 과거와 현재의 해석이 같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과거의 이야기가 현대에 먹힐 것이라 기대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연극이 김첨지의 병든 아내, 이름이 없었던 인물에게 ‘운수’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 그 인물을 안아준 것이 좋았다.
두 소설을 재해석한 연극이기 때문에 흥미로운 점이 많았고 생각해볼 점도 많았던 연극이라 생각한다.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연극은 6월 7일 일요일까지 공간아울 극장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