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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썩은 뇌의 일기

단순명확한 근육이 필요해

by 윤하원 에디터
2026.06.0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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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로서 실격인 말이지만, 요즘 나는 생각을 별로 안 한다. 스마트폰에 단단히 중독된 탓이다.

 

화장실에 갈 때도, 종일 모니터를 본 뒤 한껏 눈이 피로할 때도 여지없이 폰을 집어 든다. 코로나 이후로 스크린 타임이 점점 늘어나긴 했어도 작년까지는 이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난생 처음 주 5일, 8시간씩 일하기 시작한 후로 걷잡을 수 없는 보상심리에 이끌려 폭주 중이다.


스마트폰 중독이 내게 끼치는 악영향은 당연히 차고 넘친다. 내 방 침대에 누우면 대각선 끝에 책꽂이가 보이는데, 맨 윗칸에는 가로가 유난히 긴 책 한 권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삐져나온 부분에는 카프카의 ‘변신’의 원제(Die Verwandlung)가 세로로 적혀 있는데, 작년 여름 시력 교정 수술을 받은 뒤로 나는 종종 저 알파벳들이 잘 읽히는지 확인하며 시력을 가늠하곤 했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수술 직후와 별 차이가 없었는데, 몇 달 전부터 알파벳이 이전보다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수술한 지 채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이 지경이라니. 수백만 원을 들여 소중한 각막까지 깎았는데 허무하고 한심했다. 그래도 내일부터 눈에 좋다는 블루베리나 영양제도 먹고 화면을 덜 보면 금세 돌아오겠지 희망을 가지며, 폰을 한참 본 탓에 이미 밤이 늦어버린 시간에 씁쓸하게 잠에 들었다.


글도 써지지 않았다. 정확하진 않더라도 근사한 문장을 쓰려면 시간을 들여 집중해야 하는데, ‘brain rot’이라는 단어처럼 뇌가 썩어 인내심도 동이 나있었다. 그래서 지난 두 달 간 글을 쓰지 못했다. 깊게 사유하는 경우도 드물어져 쓸 만한 주제도 없었다. 일기장에는 후회와 다짐만이 가득할 뿐. 오늘도 다를 것은 없지만 쓴다. 아니면 영영 안 쓰게 될 것 같다.


백수일 때도 일상이 자주 무너졌지만, 그럴 때면 언제든 나만의 굴로 도망칠 수 있었다. 조용하고 예쁜, 평일이라 사람도 많지 않은 내 최애 카페에 가서 다시금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니 쉽지 않았다. 오늘 내 일상과 정신이 붕괴되어도 내일 아침 당장 출근해야 한다. 모레도, 글피도, 그글피도. 덕분에 5개월 간 회복되지 못한 대미지가 착실히 누적됐다. 회복하는 감각은 잊어버렸고, 망가진 상태로 내버려두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렇지만 인스타그램이든 주변이든, 건강하고 활기차게 사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그만큼 스스로가 더 초라하게 느껴지기 쉬운 환경에서, 나는 별 수 없이 지겨운 다짐을 하고 목표를 세우기를 반복했다. 당장 주 4일 근무제가 시행될 것도 아니니 평일 저녁 시간과 주말 내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와 주변을 정성껏 돌봐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끔이나마 일기도 쓰고, 옷이나 화장품도 이것저것 사며 취향과 외관을 가꾸고, 이전부터 다시 배우고 싶었던 뮤지컬 레슨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들도 근본적인 해결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또 하나의 과제처럼 느껴져 스트레스를 주기까지 했다. 지속적으로 수행할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취미가 아니라 우선 체력 키우는 데 올인해야 될 것 같았다. 체력이 없으면 앞으로도 지난 5개월 간의 악순환을 반복할 게 뻔했다. 지금이야 따뜻한 날씨와 푸르른 녹음에 생명력을 수급받고 있어 괜찮지만, 장마가 오거나 이후 가을, 겨울이 오면 또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도.


게다가 어쩌다 보니 일터에 운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탄탄한 근육에 활기찬 에너지를 가진 그들을 보니 코어 근육도 없이 흐물거리는 내 몸뚱이가 더욱 하찮아 보이기도 했달까. 여러모로 튼튼한 체력과 탄탄한 몸을 가꾸는 게 가장 시급한 것 같았다. 그래서 올해 방향성을 모범답안도 애매한 정신적 성숙을 추구하기에 앞서, 단순하고 확실한 근육을 만드는 것으로 수정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언제나 둘 다 놓치고 말았으니, 남은 하반기는 확실하게 신체 건강에 집중하려고 한다.

 

건강한 정신을 담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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