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페르난도 보테로: 형태의 미학> 전시에 다녀왔다.
풍만함으로 완성한 조형 언어, 보테리즘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2023)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고전회화를 연구하며 '보테리즘'이라는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완성한 작가이다.
이번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4월 24일부터 시작했으며, 8월 30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방문한 날은 노동자의 날인 공휴일 오후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 전시장 입장 전까지 오랫동안 줄을 서야 했다. 그러니 한적하게 관람하고 싶다면 평일이나 오전 시간대를 추천한다.
전시 공간은 총 6개 관으로 나뉜다. 1관 변주, 2관 라틴아메리카, 3관 종교, 4관 정물, 5관 투우, 6관 서커스.
단순한 오마주가 아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눈길을 사로잡은 건 그가 오마주한 작품들이었다.
<벨라스케스를 따라 그린 시녀들>과 <얀 반 에이크를 따라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등 1관에 있는 그의 작품들을 마주하면, 보테로의 오마주가 단순한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된다. 고전 작품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는 부드러움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던 권위는 인간적인 온기로 변해 있었다.
특히 <얀 반 에이크를 따라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는 원작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것으로 변주해 인상이 깊은데, 그는 이렇듯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고전 미술을 훨씬 가깝고 재미있게 경험하게 만든다.
보테로가 오마주한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이러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유쾌함 뒤에 감춰진 것들
처음엔 이 전시가 가볍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보테로는 유쾌함에만 머물지 않는 작가였다.

그의 창작 작품 중 하나인 <바 위의 발레리나>는,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이어야 유연할 수 있다는 발레리나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깨는 작품이다. 보테로는 이 그림을 통해, 미적 아름다움의 기준이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태도와 존재 방식에 있음을 설명한다.
이 작품이 걸려 있는 '라틴아메리카'관은 보테로가 콜롬비아에서 보낸 유년기와 청년기의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된 공간이라, 그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더 가까이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 가치관을 가장 잘 담아낸 작품이 <축제>라고 생각한다.
그림의 배경은 콜롬비아의 대표적인 문화 중 하나인 카니발로, 화면 속 인물들은 저마다 가면을 쓰고 있다. 흥겨운 축제의 한복판에서도 그들의 시선은 어딘가 먼 곳을 향해 있다. 보테로는 이 그림을 통해, 현실이 고될수록 오히려 더 즐기려 하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해냈다.
풍만한 형태로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는 삶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시선을 돌리고 몸을 움직이는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이 조용히 깔려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축제의 풍경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진다.
결국 우리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품고 묵묵히 살아가고 있으니까.
쉽고, 따뜻하고, 깊다
앞서 몇 작품만 소개했지만, 실제 전시에서는 무려 112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보테로는 이런 말을 남겼다. "형태에 대한 나의 깊은 열정은 실제로 만질 수 있는 입체적 볼륨을 구현하게 했다. 나의 그림은 미적 즐거움을 선사하고 예술을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없다. 숨겨진 의견도, 해석해야 할 것도 없다. 나는 고미술이 그러했듯, 즉각적이고 그 자체로 설명이 가능한 예술을 지향한다."고.
처음엔 그 말대로 가볍고 유쾌한 전시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모든 거장이 그러했듯, 그의 그림에도 자신만의 색이 조용히 녹아 있었다. 그것은 따뜻했고, 때로는 특유의 유쾌함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은 생각을 꺼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린다.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테로의 작품은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많은 의미를 쉽게 품어내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그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유가 아닐까?'라고.
미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가족과 함께하는 관람객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다.
특히 미술에 막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볍게 시작하기 좋은 전시로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