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걸작은 우리에게 반드시 목격할 것을 요구한다” - Little White Lies
보통 긴급 구조 요청이 들어오면 구조대는 곧바로 필요한 인력을 투입하며 가능한 신속하게 움직인다. 위급 상황에서는 시간이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는 그 과정이 곧바로 시작되지 않는다. 구조 요청이 들어오면 먼저 ‘조정’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화를 받은 적신월사 구조대는 국제구호기관과 군부대 사이에서 이동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허가가 언제 떨어질지, 실제로 현장까지 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허가가 나더라도 구급차는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폭격으로 흐트러진 도로를 지나가야하기 때문에 이동 속도는 느릴 수 밖에 없고, 지뢰와 폭격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서 환자에게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그 조정 과정 속에 홀로 남겨졌던 여섯 살 소녀 힌드의 실제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2024년 1월 29일, 가자지구에 대피 명령이 내려진 날 구조대에는 한 통의 신고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받은 구조대원들은 곧 상대가 아주 어리다는 걸 알아차린다. 왜 이렇게 어린아이가 직접 구조를 요청하고 있는지, 어른은 어디에 있는지 묻는 사이 상황이 조금씩 드러난다.
가족과 함께 피난하던 중 차가 공격을 받았고, 함께 타고 있던 가족들은 이미 모두 총격을 맞은 상태였다. 힌드는 그 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 구조대원들이 충격을 감추지 못한 채 몇 반인지 묻자, 힌드는 “나비반”이라고 답한다. 아직 학교도 가지 않은 유치원생, 여섯 살 아이였다.
그 순간부터 구조대의 목소리도 달라진다. 아이가 혼자 남겨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통화는 점점 더 다급해진다.
구조대원들은 힌드의 위치를 최대한 파악하기 위해 계속 질문을 던지며 통화를 이어간다. 수화기 너머로는 간헐적으로 총소리가 들리고 있기 때문에 계속 전화를 이어가며 차 안에서 아이가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차 안이 어떤 상태인지, 주변에 누가 있는지 묻는 질문에 힌드는 가족들이 눈을 감고 있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 말만으로도 상황은 이미 충분히 전달되었다. 구조대원들은 아이를 진정시키려 다들 자고 있는 거라고 말하지만, 힌드는 “아니에요, 다들 죽었어요”라고 답한다. 전쟁이 여섯 살 아이에게 너무 빨리 죽음을 알게 한 것이다.
6살 힌드는 이미 전쟁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전쟁 때문에 좋아하는 바다에 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옆에 있는 가족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힌드는 구조대가 왜 아직 오지 않는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전쟁 때문에 발생한 조정이라는 절차는 구조 요청이 들어오면 바로 구급차가 출발하는 여섯 살 아이의 상식에서는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와요?”를 반복하는 목소리 안에는 지금 벌어진 일을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누군가는 곧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고 믿는 아이의 마음이 남아 있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구조대는 가까스로 조정에 성공하고 구급차를 출발시킨다. 단 8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구조대가 실제로 출발하기까지는 거의 반나절이 걸렸다. 구급차가 힌드의 현재 위치에 거의 도착했다는 무전이 들릴 즈음, 무전은 갑자기 큰 폭발음과 함께 끊긴다. 곧이어 힌드와의 통화도 종료된다. 이후 폭격이 멈춘 뒤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힌드 가족이 타고 있던 차량에서는 400발이 넘는 총알 자국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무장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 타고 있던 차였는데도 말이다.
영화는 실제 통화 음성과 당시 현장 영상을 그대로 사용한다. 별도의 설명이나 과장된 연출 없이도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무력했는지가 그대로 전해진다. 그리고 실제 음성과 영상은 현실의 상황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
얼마 전, 이란과 미국 전쟁의 휴전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전역에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54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는 헤드라인을 봤다. 뉴스 속 전쟁은 숫자로 전달된다. 사상자의 수, 차지한 면적, 사용된 폭탄의 수, 전쟁으로 오르내리는 유가와 환율 등등... 하지만 그 숫자 안에는 각자의 일상이 있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던 시간, 평소처럼 학교에 가던 하루, 바다에 가고 싶다고 말하던 아이의 마음 같은 것들이다. 전쟁은 그런 평범한 시간을 너무 쉽게 파괴해버린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뉴스 속 숫자들이 예전처럼 지나가지 않는다. 구조대를 기다리며 계속 “언제 와요?”를 묻던 힌드의 목소리처럼,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비슷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을 것 같아 고통스럽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4월 15일에 개봉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힌드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숫자 뒤에 가려진 한 사람의 시간, 지구 반대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