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국과 이란이 2주간의 휴전에 합의했다는 뉴스가 들어왔다. 협상 시한 90분을 남기고 극적으로 타결된 합의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게 몇 년 전이고, 그 전쟁도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늘 전쟁이 진행 중이고, 뉴스는 그걸 숫자로 전달하다가 어느 순간 다른 헤드라인으로 넘어간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
〈힌드의 목소리〉는 2024년 1월 29일 가자지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다룬다. 가자지구에 대피 명령이 내려진 날, 피란 중이던 하마데 가족이 탄 차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았다. 독일에 있던 친척이 먼저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콜센터에 신고했고, 직원 오마르가 현지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처음 받은 건 힌드의 사촌 언니 라얀이었다. 구해달라는 목소리 뒤로 기관총 소리가 들렸고, 곧 통신이 끊겼다.
어렵게 다시 연결된 전화를 받은 건 여섯 살 힌드 라잡이었다.
"나한테 총을 쏘고 있어요. 제발 데리러 와 주세요."
구조대와 힌드 사이의 거리는 8분이었다. 하지만 구조 차량이 출발하려면 이스라엘군에 안전 통로 승인을 요청하고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 절차가 5시간 동안 이어졌다. 영화는 그 5시간을 따라간다.
카메라는 서안지구 적신월사 콜센터 안에 고정되다시피 머문다. 폭발 장면이나 교전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화면에 나오는 건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직원들의 얼굴, 이스라엘 측에 승인을 요청하는 통화, 그리고 무한 반복과 기다림이다. 영화의 긴장감은 액션이나 편집이 아니라 그 기다림 자체에서 나온다.
보는 내내 무언가 해결될 것 같은 감각을 주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흐르는 힌드의 목소리는 배우의 연기가 아니다. 실제 통화에서 녹음된 힌드 라잡의 목소리다. 적신월사 직원 라나 역을 맡은 배우 사자 킬라니를 포함해, 배우들은 이어폰으로 그 실제 음성을 들으며 연기했다. 그 방식 때문에 화면이 재연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경계가 흐릿해진다.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적인 극영화도 아닌 묘한 감각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영화는 끝내 구조 성공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라면 극적인 구출로 끝났겠지만, 현실은 그보다 지독하다. 힌드와의 연락은 끊겼고,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뒤 12일이 지나서야 적신월사가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차량에서는 총탄 355발과 힌드를 포함한 시신 여섯 구가 발견됐다. 힌드를 구하러 출발했던 구조대원 두 명도 그 자리에 있었다. 5시간의 기다림 끝에 구조는 시작됐지만, 끝내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누구를 위한 기다림이었는가. 누구를 위한 구조였는가.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슬프다는 말로는 정확하지 않다. 무언가 더 근본적인 곳이 건드려지는 느낌이었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은 무력함과 먹먹함이 뒤섞인,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감정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왜 반복되는 걸까. 인류는 그렇게 많은 전쟁을 겪고도, 왜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서로를 겨누고 있다. 정치, 분쟁, 권력, 국가 간의 이해관계등 우리는 늘 거대한 단어들로 전쟁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 단어들 아래에서 실제로 가장 많이 무너지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이다. 누군가에게는 하루였고, 누군가에게는 전부였던 세계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들도 각자의 삶에서는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하루를 살고,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그러나 국가가 충돌하는 순간, 그 세계는 너무 쉽게 부서진다.

그리고 그 뒤에는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세계를 통째로 잃어버린 채,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전쟁은 끝나도, 그들의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도대체 누구에게 이럴 권리가 있는가. 이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뉴스 속 숫자로만 존재하는 일도 아니다. 같은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사건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뒤에, 6살 나비반 소녀의 목소리가 드리운다.
2026년 4월 15일 개봉. 유료 관람 티켓 1장당 129원이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에 기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