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어디예요?”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나는 잠깐 멈칫하게 된다. 서울에서의 주소를 말해야 할지, 아니면 내가 자라온 곳을 떠올려야 할지. 대답은 늘 정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서울에 올라온 지도 어느덧 5년이 되었고, 생활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을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어딘가 망설여진다.
그래서 나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말을 꺼낸다.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데…” 하고 운을 띄운 뒤, 결국에는 내가 자라온 곳 이야기를 덧붙인다. 아마도 나에게 ‘집’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지금 머무는 공간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인 것 같다.
나에게 집이란
나는 서울에서 버스를 네 시간 반 정도 타고 가야 도착하는 작은 도시, 그곳에서도 나는 유난히 더 안쪽, 산 쪽에 가까운 곳에서 자랐다. 길 하나를 따라 집 몇 채가 띄엄띄엄 서 있고, 밤이 되면 가로등보다 별빛이 더 또렷하게 보이던 곳. 계절이 바뀌는 걸 몸으로 먼저 느끼고, 창문을 열면 바람 냄새로 날씨를 짐작할 수 있던 곳이다. 그곳에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우리 집이 있다.
나는 서울살이를 하면서 지금 사는 집에는 큰 애착이 없다. 세 번의 이사를 했고, 세 번의 동네를 옮겨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마음을 붙여 놓지도 않고,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도 집 계약이 9월에 끝나는데, 곧 새로운 동네를 알아볼지, 아니면 그곳에서 계약을 연장할지 계속 고민 중이다. 집을 찾으러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부동산과 연락했고, 매물을 찾아다녔는데 그 과정이 그렇게 유쾌하지 않다 보니 나의 온전한 집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반면에 내 본가는 다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애써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되는 곳.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지치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곳을 떠올리게 된다.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는 게,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서울에서는 늘 무엇인가를 해내야 할 것 같고, 어제보다 나아져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스스로를 밀어붙이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그런 기준들이 조용히 사라진다. 그저 밥을 먹고, 누워 있고,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가 된다. 그 단순한 시간이 나를 다시 숨 쉬게 만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공간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이제 한 학년에 손에 꼽을 정도의 학생만 남았다고 한다. 넓었던 운동장은 그대로인데, 그 위를 채우는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릴 적 친구들도 하나둘씩 더 큰 도시로 떠났고, 익숙했던 얼굴들은 점점 멀어졌다.
남아 있는 풍경은 여전히 비슷한데, 그 안을 채우던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본가를 방문할 때면 사라져 가는 무언가의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돌아갈 때마다 편안함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이 함께 따라온다.
나를 붙잡는 것들에 대하여
그래도 집은, 집이다.
우리 집에는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커다란 액자 속 어린 시절의 내 사진이 있고, 솜씨 좀 뽐냈다며 자랑스럽게 차린 음식을 보여주는 엄마도, 묵묵히 내 캐리어를 끌어주는 아빠도 있다.
다 사라졌지만 딱 하나 남은 문방구도, 맨날 나를 보며 아직 대학생이냐고 물으시는 옆집 할아버지도, 1년에 몇 번씩 보는데도 10년 넘게 나를 보며 늘 짖는 진돗개 한 마리도 있다. 그런 것들이 다 나를 붙잡는다. 그런 온기와 추억이 나에게 힘을 불어 넣어 준다. 멀리서 나의 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완전한 느낌과 함께.
아마 취업하면 더 자주 내려가지 못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돌아갈 곳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공간이라는 게 참 좋다.
아 ㅡ 집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