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도시, 서울 [공간]

그릭 요거트같은 도시
글 입력 2023.04.0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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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교 진학과 함께 상경했다. 스무 살 이전의 서울은 나에게 관광도시 및 수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두세 번의 방문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도시는 거의 없다. 서울 또한 그랬다. 자취방을 구하는 것부터 대학생활에 적응하기까지만 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사실 대학에는 지금도 적응 중인 것만 같다. 몇 년간의 경험으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완벽히 파악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그래도 나와 같이 분투 중인 사람들에게 조금의 위로 혹은 흥미가 되고자, 내가 본 서울을 몇 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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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꾸덕한 그릭 요거트 같은 도시


 

고등학생 시절, 사회 시간에 '용광로 이론'과 '샐러드볼 이론'을 배운 적이 있다.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도시가 어떻게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는지에 관한 이론들이다. 도시의 사람들은 용광로처럼 모든 정체성을 녹여 융합된 도시를 만들기도 하고, 샐러드볼처럼 다양한 재료들을 섞어내어 각 채소의 맛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기도 한다. 두 이론 모두 장단점이 있다. 전자는 사람들이 본연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할 수 있으며, 후자는 도시가 제대로 융합되지 않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서울은 어느 쪽일까? 나는 서울의 형태가 샐러드볼 이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도시.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다툼도 많고, '서울사람'이라는 정체성도 흐릿한 편이다. 이 도시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채소들이 입장하고 또 입장한다. '말은 제주로, 사람을 서울로'라는 오래된 격언을 따르는 것일까? 서울은 누가 보아도 사람들이 한바탕 어울리는 샐러드볼이다.

    

그러나 나는 서울이 그 샐러드를 담는 그릇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서울에 살면서 어떠한 그릇 같은 울타리가 나를 지키거나 정의한다고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은 오히려 드레싱에 가깝다. 그 중에서도 그릭 요거트가 가장 가깝다.

 

사람들은 일자리, 문화생활, 대학, 편리한 생활의 영위를 위해 서울에 모여든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짜내고 또 짜내어 새로운 일자리, 문화, 대학생들, 사회 기반이 다져진다. 서울 뿐만이 아닌 우리나라 전부의 노동력이 집약된 도시, 서울은 그렇기에 크림과 같이 묽은 드레싱이 될 수 없다. 서울의 매력은 아주 꾸덕한 그릭 요거트 같은 도시의 집약성이다.

       

샐러드를 섞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릭 요거트, 개중에서도 샐러드 드레싱으로 올라가는 것들은 유난이 꾸덕꾸덕해서 채소와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 분명 한 그릇에 있는 재료들인데도 계속 따로 논다. 섞고 또 섞어야지만이 조금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야속한 것은, 그릭 요거트의 식감과 맛이 정말 확실해서 조금이라도 요거트가 없는 부분을 먹으면 '아, 제대로 안 섞였네!'라는 생각이 곧바로 든다는 것이다. 섞는 것에만 한 세월 걸리는 비빔면도 아니고, 이럴 때마다 샐러드가 정말 얄밉다는 생각을 한다.

    

서울이 그렇다. 지난 몇 년간 부단히 노력했지만, 나는 상대적인 서울 사람이 되었을 뿐, 서울은 아직 나의 진정한 터전이 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반절이 넘게 고향 사람이고, 서울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아직 나와 섞이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민등록증을 보아도, 동네를 탐방해도,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아도 뿌리를 내렸다는 감각이 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나에게서 서울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 귀퉁이에 찔끔 그릭 요거트가 올라간 채소를 씹은 기분이다.

 

    

 

사람은 채소가 될 수 없다


 

서울의 비극은 우리가 채소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덜 섞인 샐러드를 씹은 사람이 그다음에 할 행동이 무엇이겠는가? 샐러드를 다시 섞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맛이 날 때까지 드레싱을 더 집어넣고, 드레싱이 과하다 싶으면 채소를 더 추가한다. 그렇게 샐러드는 '한 바가지'가 된다.

 

우리는 계속 '서울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더 유리한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전시회를 다니고, 계속해서 어떠한 공동체에 속하려고 노력하며, 구직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샐러드를 섞는 사람임과 동시에 서울이라는 도시의 톱니바퀴, 그릭 요거트를 한 귀퉁이에 올린 채소가 되는 것이다.

 

언제쯤이면 이 도시를 한입 가득히 맛볼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간 서울의 흐릿한 경계선 바깥으로 걸어 나가게 될까? 내가 사는 땅에 온전히 발 디디고 있지 않다는 감각은 계속해서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다. 어쩌면 서울은 혼란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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