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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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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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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비효과란 미국의 한 기상학자가 연구하며 사용한 용어로,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기 시작할 때는 설렘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내가 정말 발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간이 지나서 뒤돌아보면 어느새 성장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늘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질 때면, 나비효과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지금의 작은 변화들이 쌓여 결국 태풍과 같은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나비효과의 개념을 담은 영화를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대표적인 예로 2019년에 개봉한 영화 <말모이>가 있다. 1940년대, 일본의 민족말살 통치 속에서도 우리 말을 지켜내기 위해 나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네 놈의 한 발자국이 더 낫지 않겠어.


여러 사람이 나아간 한 걸음이 모여 결국 우리 말을 지켜냈다. 최근 이처럼 미래세대를 위해 한 걸음 나아간 여성들의 서사를 담은 영화가 개봉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는 2023년 이탈리아에서 개봉한 영화로 한국에는 지난 3월 4일 메가박스에서 단독으로 개봉했다. 영화는 이탈리아의 여성 투표권이 처음 시행되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요즘에는 보기 드문 흑백 영화다. 그 시대 여성의 삶을 비추며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예상과는 다른 결말을 통해 큰 울림을 전한다.

 

 


델리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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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은 '델리아'로 이탈리아에 사는 한 가정의 평범한 엄마다. '델리아'에게는 세 아이가 있고, 남편 '이바노'는 폭력적인 사람이다. 영화 초반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뺨을 맞는 모습은 현재 델리아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짧지만 강력하게 드러낸다.


그녀는 집안일부터 시아버지 간병, 우산수리, 빨래, 수선 등 여러 가지 일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돈을 모두 남편에게 줘야 한다. 델리아는 영화 내내 남편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무슨 일을 겪든 참고 산다. 그런 델리아에게 자신과 떠나자고 하는 인물이 있다. 카센터 직원 니노는 델리아의 옛 연인으로, 과거에 그녀를 붙잡지 못한 것을 여전히 아쉬워하며 지금이라도 함께 떠나자고 말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델리아가 계획을 묻자 니노는 말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그렇다면 글로라도 써보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후 델리아에게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델리아는 배달부에게 자신은 그런 거 잘 모른다며 남편에게 전달하라고 하지만 배달부는 직접 받는 게 좋을 거라고 한다. 이후 의문의 편지를 읽은 델리아는 마치 첫사랑에게 연애편지를 받은 것처럼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편지를 받은 이후에도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다가오는 그날을 준비한다. 남편 몰래 열심히 돈을 모으고, 친구인 마리사에게 그날 너의 집의 주사를 놓으러 갈 것이라고 자신의 남편에게 말해달라고 하며 자신의 알리바이를 부탁한다. 하지만 당일이 되자 시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나게 된다. 그녀의 계획은 무너지고 결국 떠나지 못했다. 마리사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묻자 델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아직 내일이 남아있다고.

 

 


반전의 결말


 

다음날 델리아는 딸의 방에 지금까지 모은 돈을 봉투에 담아 선반 위에 올려놓고 집을 나선다. 남편에게는 마리사네 집에 주사를 놓으러 다녀오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집을 나서자마자 쫓기듯 달려간다. 그리고 몰래 사서 수선했던 옷으로 갈아입고, 결연한 눈빛으로 립스틱을 바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니노와 함께 도망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델리아가 실수로 두고 간 편지를 이바노가 발견하게 되고, 그는 델리아를 잡기 위해 뒤쫓아 나선다. 이바노가 나간 뒤 잠에서 깬 마르첼라는 선반 위에 놓인 봉투를 열어본다. 그 안에는 "이 도느로 하꾜 다녀"라는 서툴지만 진심 어린 엄마의 한 마디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델리아는 니노를 만나러 간 게 아니었다. 델리아는 투표를 하러 간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투표소 앞에서, 델리아는 자신이 종이를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뒤로 밀려나던 순간, 딸 마르첼라가 나타나 델리아에게 종이를 건넨다. 덕분에 그녀는 무사히 투표를 마칠 수 있게 된다.


투표를 마치고 뒤쫓아온 이바노와 마주하게 되지만, 델리아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똑바로 바라본다.


영화는 결말의 방향을 마치 델리아가 니노와 함께 떠날 것처럼 암시하지만, 마지막에 그녀가 선택한 것은 도망이 아닌 ‘투표’였다. 물론 지금 당장 그녀의 선택이 폭력적인 남편과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딸 마르첼라만큼은 그런 세상을 살지 않게 하기 위해, 델리아는 큰 용기를 내딛는다.


결국 이 결말은 영화의 제목인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와 가장 맞닿아 있는 엔딩을 완성한다.


 

 

딸과 엄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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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마르첼라’는 매번 참고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엄마는 그런 딸의 말에 상처를 입지만, 그럼에도 늘 딸을 생각하고 응원한다. 이러한 마음은 특히 딸의 약혼 이후, 델리아의 행동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르첼라의 남자친구는 처음에는 다정했지만, 약혼 이후 점점 태도가 달라진다.


마르첼라에게 “너는 내 것”이라 말하며, 결혼하면 일을 모두 그만둬야 한다고 강요한다. 또 립스틱을 지우며 자신을 만날 때 외에는 화장을 하지 말라고 하는 등, 점점 권위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델리아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이바노 역시 처음에는 다정했지만, 결혼 이후 점점 변해갔기 때문이다.


결국 델리아는 자신이 알던 미군에게 부탁해 약혼자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폭탄을 터뜨리고, 그로 인해 집안이 무너지면서 이바노가 반대하게 되어 딸의 약혼은 깨지게 된다. 이 장면에서는 딸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어떤 선택도 감수하는 엄마의 모습이 드러난다.


또한, 원래 마르첼라의 웨딩드레스를 맞춰주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을,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딸의 교육을 위해 쓰라고 건네는 장면 역시 인상적이다. 이는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딸만큼은 같은 삶을 살지 않게 하려는 엄마의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마르첼라가 엄마에게 종이를 건네며 보내는 눈빛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진다. 그 눈빛에는, 이제는 자신 또한 엄마를 이해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독특한 연출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흑백영화라는 점이다. 영화의 일부가 흑백으로 연출된 작품은 본 적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흑백으로 연출된 작품은 처음이라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연출이 작품과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그 시대의 분위기와 사회상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고, 인물들의 표정 역시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연출은 남편 이바노의 폭력 장면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에 흥겨운 음악이 흐르며 두 사람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됐다. 이는 작품의 폭력성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경쾌한 음악과 대조되며 이바노의 폭력성을 한층 부각시켰다.


투표 종이를 봉할 때 립스틱을 지우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립스틱이 묻으면 무효 처리가 된다고 하자 여성들은 바른 립스틱을 지운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전에도 등장한다. 마르첼라가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 그는 일할 때 왜 화장을 하냐며 자신을 만날 때만 화장하라고 말하며 마르첼라의 립스틱을 지워버린다. 앞선 장면이 여성의 선택을 억압하는 사회를 보여준다면, 델리아가 스스로 립스틱을 지우고 투표용지를 봉하는 장면은 마침내 여성의 권위가 올라가고 선택권을 가지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도망이 아닌 선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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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남편과 시아버지로부터 폭언을 듣고, 늘 자신을 후순위에 두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니노와 떠나서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모두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행복보다 다음 세대를 더 먼저 생각했다. 결국 우리가 누리는 것 역시 누군가의 그런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1946년은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던 해다. 엔딩 크레딧에 따르면 당시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선택이 없었다면, 영화 속 흑백 장면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비단 여성 서사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수많은 것들 역시, 누군가의 작지만 용기 있는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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