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최수인
연극 「삼매경」은 공연 시간 15분 전부터 시작된다.
30분 전, 극장 입장이 시작되며 들리는 것은 다소 힙한 비트와 함께 깔리는 불경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방내외 안위제신진언, 나무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지미 사바하…
그러다 시작 15분 전이 되면, 스태프에 의해 무대 가운데에 있던 전구 소품이 치워진다. 배우들은 객석의 불이 꺼지기도 전에 등장한다. 그들은 새 소리, 물 흐르는 소리, 풍경 소리, 불경 읊는 소리를 낸다. 어쩌면 자연 그 자체가 된 듯하다. 어린 도념은 가부좌를 틀고 무대 중앙에 앉아 있다. 바로 「동승」의 무대가 되는 암자다.
그렇다. 이 프롤로그 격의 씬은 「삼매경」 속 극중극으로 나타나는, 「동승」의 모습이다.
![[국립극단] 삼매경(2026) 포스터.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18160840_cogrzobc.jpg)
「동승」은 함세덕의 희곡이다. 이 작품은 1991년 지춘성 배우를 주연으로 하여 연극화된 바 있다. 「삼매경」은 동승을 원작으로 하였지만 완전한 재창작 작품으로, 작년 여름 국립극장서 초연된 이후 반년 만에 돌아왔다.
동승의 주인공 ‘도념’으로 표기되는 지춘성은, 34년 전 과거의 ‘도념’ 역할의 불완전함에 얽매여 완전한 삼매경에 빠지는 순간만을 원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서 삼매경이 무엇인고, 허니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자면.
잡념(雜念)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對象)에만 정신(精神)을 집중(集中)하는 경지(境地). 이 경지(境地)에서 바른 지혜(智慧ㆍ知慧)를 얻고 대상(對象)을 올바르게 파악(把握)하게 된다.
‘연출’의 말대로 자아를 버리고 도념 그 자체가 되는 것. 도념이라는 하나의 대상에, 순도 100%의 믿음을 가지고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 극 속 지춘성은 ‘도념’에게 정신을 집중하기는 했으나, 이 과정에서 바른 지혜를 얻고 도념을 올바르게 파악했는가? 묻는다면 또 그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렇기에 찾아온 번뇌와 후회가 그를 괴롭힌 것이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08.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18160953_metihglf.jpg)
세월은 유수와 같아, 극 중 시간적 배경은 휙휙 뒤바뀐다. 동승의 도념을 연기하던 과거, 이에 대해 집착하는 현재, 삼도천을 건너려 하는 미래까지.
‘무상’이라는 말이 있다. ‘없을 무’에 ‘항상 상’자를 쓴 이 단어는 불교용어로, 항상 같은 것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인생무상’이라는 말은 사실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이 아닌, 삶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뜻한다.
설령 그것이 기억이더라도, 변하는 것은 다름없다. 극 중 지춘성이 어린 도념을 죽고 죽여도 이상하게 변질되어 재등장하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계속해서 변화시켜 가며 이에 대해 집착한다. 그러나 이제는, 완벽함이란 없다는 것을, 미완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해탈해야 한다.
시간예술의 특성상 연극은 매 회의 연기가 다르다. 삶이 변하듯, 연극도 변한다. 이에 따라 매번 다른 아쉬움이 있겠으나, 미완의 아름다움도 존재한다.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연극 또한, 그야말로 무상 아니겠는가.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15.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18174359_qawnprts.jpg)
극이 후반부에 다다르자, 지춘성 배우는 홀로 도념과 주지스님 역할을 수행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미망인 역할까지 소화한다. 자막 또한 동일하게 ‘도념’으로 나오지만, 우리는 지춘성 배우의 무르익은 연기를 통해 1인 3역을 목소리 톤과 맥락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지춘성은 그렇게, 도념뿐 아니라 동승이라는 연극 그 자체가 되는 듯하다.
연극 내내 무대 뒤편, 녹빛으로 눈에 띄던 비상구 등. 존재함으로써 배우들이 언제든지 그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관객에게 가져다주는 그곳. 마지막 씬에서 지춘성 배우는 결국 그곳으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 커튼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전구 소품이 등장한다. 전구에 불이 켜지는 순간, 입장 때 나왔던 음악이 다시금 재생된다.
그렇게 연극은 완전히 끝난다.

사진 ⓒ최수인

사진 ⓒ최수인
주인공의 발뒤꿈치를 물고 놓아주지 않던 뱀, ‘이까짓 것’. 도념과 연기, 연극, 배우.
재창작과 연출을 맡은 이철희 연출가는 프로그램 북에서 이를 들며, ‘관객 각자의 삶으로 치환하여 ‘나의 삶에서 내 뒤꿈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사유를 불러일으킨다’라고 했다. 각자의 이까짓 것들에, 후회를 가져다주기도 하는 그까짓 것들에 우리는 항상 갇혀 사는 것이다.
혹여 ‘이까짓 것’에 빠져 본 적 있는가? 그럼 삼매경을 보자. 이 연극 속에서, 당신의 ‘이까짓 것’을 꺼내어 마주 보자. 그리고 해탈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