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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삼매경: 잡념(雜念)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對象)에만 정신(精神)을 집중(集中)하는 경지(境地).

 

     

[국립극단] 삼매경(2025) 홍보사진12.JPG

 

 

국립극단이 7월 17일부터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삼매경>을 올렸다. 국립극단의 <삼매경>은 한국 낭만주의 희곡의 시작이자 완성으로 평가받는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다.

 

「동승」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열네 살의 어린 승려 도념은 친어머니의 생사도 모른 채 깊은 산 속 사찰에서 생활하고 있다. 자기 핏줄인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산 아래 세속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는 도념은 절 안에서의 고립된 생활이 지겹기만 하다. 그때 일찍 떠난 아들의 100일제를 지내기 위해 서울에서부터 절을 찾아온 미망인은 도념을 서울로 데려가 의붓아들로 삼고 싶어 한다. 주지 스님의 완강한 반대를 겨우 이겨내고 반년 동안의 서울행을 허락받았지만, 그동안 도념이 언젠가 만날지 모를 어머니에게 목도리를 선물하기 위해 토끼를 6마리나 잡아 법당에 숨겨놓은 사실이 발각된다. 살생의 죄를 저지른 도념은 서울로 갈 수 없게 되고, 결국 자신의 자유를 찾기 위해 홀로 절을 떠난다.

 

<삼매경>을 감상하는 데 있어 이처럼 「동승」의 기본적인 서사를 미리 알고 있는 것은 작품의 다층적인 재해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삼매경>은 1991년 박원근 연출의 <동승>에서 도념 역을 맡았던 배우 지춘성이 3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라, 그 시절의 ‘도념’을 현재의 자기 자신으로 되비추는 메타적인 구조를 취한다.

 

<삼매경>에서의 지춘성은 34년 전, 도념으로서 무대에 서던 그때 완전히 몰입해서 도념 그 자체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현재까지도 괴로워하며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 미련이 만들어낸 환상이자 자신의 분신인 어린 ‘도념’을 떨쳐내지 못하며 아직도 당시의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시절의 연극을 회상하던 중 분신에게 칼에 찔리고 저승길로 떠나지만, 여전히 34년 전으로의 회귀를 꿈꾸며 삼도천을 이탈한다.

 

그리고 마침내, 도념은 1991년의 연습실로 돌아간다. 다시 연기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이번에도 완전한 몰입에 실패하고, 자신만의 공간인 ‘허공’을 만들어 스스로를 구원하려 한다. 하지만 허공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오히려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삼매경>과 원작 「동승」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산속 사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필자는 <삼매경>을 감상하며, 이 연극이 품고 있는 깊은 주제 의식이 불교 사상과 깊이 연결될 수 있는 여지를 지니고 있음을 느꼈다.

 

 

 

삼매 (三昧, Samādhi) - 하나의 대상에만 마음을 집중시켜 일심불란한 경지


 

극의 제목에도 포함된 ‘삼매’는 명상이나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깊은 몰입의 경지이다. 이 상태에서는 주관(나)과 객관(대상),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고요하며 평등한 마음이 지속된다. 흔히 ‘삼매경에 빠지다’라는 표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삼매는 수행자가 번뇌를 끊고 지혜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관문이다.

 

<삼매경>의 도념은 과거 자신이 연기한 배역(동자승 도념)에서 완전히 몰입하지 못했다는 회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과거의 실패에 갇힌 채, 현재의 자신조차 과거의 그림자로 살아간다. 그는 현실과 연극,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무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으로 설정된다.

 

불교에서 삼매는 궁극적으로 몰입을 통해 집착을 초월하는 경지이다. 그러나 현실의 수행자, 특히 초심자는 몰입과 집착을 혼동하기도 하며, 삼매의 이름 아래 오히려 거기에 머물거나 매이게 되는 위험도 동반한다. <삼매경>의 도념은 바로 그러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는 예술가로서 완벽한 몰입을 원하지만, 그 열망은 곧 자기 회한과 집착의 덫이 된다.

 

연극에서 도념은 과거 역할에 대한 갈망, 완벽함에 대한 미련, 실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삼매에 빠진 수행자처럼 자신만의 기억과 심상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이 모습은 불교 삼매의 이상적인 몰입과는 다르지만, 흔히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집착’을 동반한 심리 상태와 연결 지을 수 있다.

 

즉, 도념의 끝없는 몰입과 미련·집착은 ‘삼매’가 수행과 해탈의 경지일 뿐 아니라, 자기 집착의 덫이 될 수도 있음을 예술적으로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삼매경>에서의 ‘삼매’는 ‘예술이 삶을 잠식할 때”와 “몰입이 해탈로 전환되는 순간”의 양면성을 표현하였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19.jpg

 

 

 

업(業, Karma)과 윤회


 

불교에서 업(業, Karma)은 존재가 스스로 지은 행위(생각·말·몸짓)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원리다. 선한 행위는 선한 결과를, 악한 행위는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으며, 그 축적된 업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윤회(輪廻)의 고리를 만든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은 이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자신이 지은 행위의 결과를 다시 살아내야 한다.

 

<삼매경>의 주인공 도념은 과거의 실패를 '마무리되지 않은 업'처럼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는 1991년 자신이 연기한 동자승 도념 역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역할로 간주하며, 그 실패의 감정을 현재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리고 그 회한은 집착이 되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진정으로 살지 못하게 만든다. 그는 끝없이 반복되는 무대 속으로 회귀하고, 같은 대사를 다시 외우고, 같은 공간에 머무르며 스스로 만든 ‘업’의 고리 안에서 윤회한다.

 

연극은 물리적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심리적·영적 윤회를 따라간다. 도념은 저승길조차도 거부하고 34년 전으로 돌아가기를 택하며, 반복된 실패를 ‘이번에는 다르게’ 해내려 하지만, 결과는 결국 같거나 더 허무하다. 이는 불교 윤회론에서 말하는 해탈하지 못한 영혼의 반복과도 유사하다. 주인공은 바로 그 윤회의 중심에 있다.

 

<삼매경>이 보여주는 이 반복과 순환은 단순히 개인의 기억을 넘어, 예술가의 내면에 각인된 업과 윤회의 정서적 구조를 형상화한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죽으며, 스스로 만든 캐릭터의 업을 다시 연기한다. 이처럼 연극 <삼매경>은 예술 그 자체가 하나의 윤회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배우는 해탈 또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06.jpg

 

 

 

무아(無我) – 자아의 해체


 

무아(無我)는 고정되고 실체적인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집착하는 자아란 끊임없이 변하고 상호의존적인 허상에 불과하다는 불교의 근본 교리다. ‘나’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기억과 경험, 감정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고 변화하는 유동적인 과정이다. 무아는 자아를 없앤다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이다.

 

<삼매경>의 핵심은 ‘도념을 연기한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서 역할과 현실, 연극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는 구조에 있다. 이는 불교의 무아(無我) 사상과 맞닿아 있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배우 지춘성이 아닌 극중 도념이라 여기고, 실패한 배우라 여기고, 1991년의 <동승>을 아직 마음 속에서 끝내지 못했지만, 결국 그 모든 자아를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단계로 향한다.

 

이처럼 <삼매경>은 무대를 통해 주인공의 자아가 해체되고, 각기 다른 ‘나’들이 충돌하고, 궁극적으로는 받아들여지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는 곧 불교의 무아가 지향하는 해탈의 실천적 의미, 즉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를 향한 예술적 표현으로 읽힌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23.jpg

 

 

 

고(苦), 집착, 해탈의 지연


 

<삼매경>은 과거의 실패, 예술가로서의 완성에 대한 갈망을 집착처럼 끌고 가는 인물의 고(苦)를 중심에 두고 진행된다.

 

불교가 말하는 고(苦)는 집착에서 온다고 한다. 이는 <삼매경>의 주인공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는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비롯된 깊은 ‘고’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는 젊은 시절 도념이라는 배역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자기혐오 속에서 살아간다. 예술가로서의 완성, 메소드 연기와 몰입에 대한 강박, 그리고 연극 자체를 지나치게 이상화하며, 그 모든 것이 현재의 삶을 무화(無化)시키는 고통의 근원이 된다.

 

그는 이미 실패한 기억이 자신을 규정해 버린 세계 속에 갇혀 있으며, 이 고를 끌어안은 채 삼도천을 건너는 저승길에서조차 망설이고 결국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 장면은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집착으로 인해 해탈의 기회마저 스스로 늦추는 중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11.jpg

 

 

 

무상(無常)과 불완전의 아름다움


 

극의 마지막에서, 지춘성 배우는 이렇게 말한다.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완성."

 

이는 불교의 ‘무상(無常)’이라는 사상과 맞물린다. 무상(無常)은 ‘이 세상 모든 것은 일정한 모습을 영원히 유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라는 사상을 의미한다. 즉, 모든 현상과 존재는 순간순간 변화하고, 한순간도 동일한 상태로 남아있지 않으며, 영구적인 실체나 변치 않는 완전한 상태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불교 교리에 따르면, 이 세상의 그 어떤 현상도 ‘완전하다’라고 할 수 있는 고정불변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으며 현실세계의 모든 사물, 현상, 심지어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자아조차도 변화를 거듭하는 일시적인 조합일 뿐이다. 변화하기 때문에 '영원한 나', 즉 변치 않는 본질적 주체도 없으며, 그렇기에 ‘완전성’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극에서 말하는 ‘미완성’은 곧 지금 이 순간의 나, 변화 중인 존재로서의 나를 인정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아름답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결핍조차 받아들이고 존귀하게 여기는 관점을 보여준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 깨달음이란 완전함을 얻는 게 아니라, 집착과 무지, 번뇌를 완전히 벗어나 미완성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자신의 미완성을 제대로 마주하고, 작별 인사를 나누며 59살의 도념은 마침내 무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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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의 <삼매경>은 배우들의 열연 외에도 관객과의 거리감이 매우 가까운 무대와 조명, 유연한 무대장치의 사용 등으로 관객의 몰입감을 극대화한 연극이다.

 

<삼매경>은 무대 위 배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누구나 품고 있을 미완의 기억과 자기 집착에 대한 은유이자, 스스로를 구원하고 해탈에 이르기 위한 긴 여정에 관객을 초대한다.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완성”이라는 마지막 인사처럼, 이 연극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인간의 내면과 예술의 본질에 대해 되묻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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