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인간 존재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철학적 사조
연극은 실존적인 예술이다. 공연이 세 번 이루어진다면 세 번의 공연 모두 다른 공연이 나온다. 같은 연극이란 존재할 수 없다. 필사적인 공연 도중 피부에 서서히 올라오는 열기, 전신에 맺히는 땀,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의 숨, 관객들의 호기심 어린 또는 지루함 어린 눈빛. 그 모든 것이 공연의 요소가 된다. 그렇기에 연극은 실존적 매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 누구보다도 연극을 통해 실존을 감각하는 한 인물이 있다. 연극 [삼매경]의 도념, 아니지, 연극 [동승]의 도념, 아니지.
연극 [삼매경]과 연극 [동승]의 지춘성이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홍보사진0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3101457_uuwrqscf.jpg)
한국 낭만주의 희곡의 초석, 함세덕의 [동승]을 재창작한 이철희의 [삼매경]은 2025년 국립극단이 관객 앞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창작극이다. 스물여섯에 도념을 연기하며 '영원한 동승'이라고 불려온 배우 지춘성이 다시 한 번 도념 역을 맡아 세월을 입은 도념을 보여준다.
시놉시스
초로의 배우가 아직도 찬 겨울 깊은 숲에 있다. 34년 전. 자신이 분했던 역할을 실패라 여기며, 그 연극의 시공간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이곳이 현실인 양 살고 있는 것이다. 이때, 과거 자신의 분신이 나타나 그를 죽여 저승으로 보내지만 이때도 그는, 여전히 34년 전으로의 회귀를 꿈꾸며 저승길에서 이탈한다. 마침내. 그토록 소원하던 1991년의 연습실. 하지만 실패의 만회는커녕 또다시 완전한 그 역할이 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실패의 가중은 더해 간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은밀한 방으로 이 연극을 끌어들여 스스로를 구원하려 하지만 등장인물은 오히려 그에게 다른 말을 걸어오는데...
이 연극은 유니크해
연극 [삼매경]은 희곡 속의 인물과 배우의 자전적 이야기가 섞여 새로운 흐름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연극을, 대본을, 심지어는 배우의 인생을 재구성하며 창작극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다. 이미 [삼매경]은 이 연극의 가장 큰 특성이자 매력을 알고 있는 듯 대사로 자신감을 보여준다.
"이 연극은 유니크해."
![[국립극단] 삼매경(2025) 홍보사진09.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3101753_cgnhopeu.jpg)
[삼매경]의 도념은, 배우 지춘성은 스물여섯에 자신이 연기했던 [동승]의 '도념'을 마주 보며 "난 네가 될 수 없었다"고, 자신의 연기는 실패였다고 돌이킨다. 그때를 후회하며 죽기 전 마지막으로 무대를 서고 싶다는 그의 외침은 그의 의지가 가상하다는 듯 삼도천에 뛰어든 예순살 지춘성을 순식간에 그 시절 지하 연습실로 보내버린다. 강압적인 분위기, 물이 새는 천장, 끝나지 않는 새벽 두 시의 연습. 그 모든 것은 예순 살 지춘성을 스물여섯 지춘성으로, 도념으로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갑작스러운 시공간의 변화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돕는 연출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그는 진정한 '어린 도념'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는 자신을 두고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어린 도념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독백하곤 비로소 도념을 이해했다며 자신의 슬픔에 온전히 집중하기보다는 도념에게 광적으로 집착한다. 도념과 물아일체의 상태가 되기 위해 자신의 자아를, 자신의 인생을 비우고자 하는 것이다.
대본의 글자를 찢고 나오는 이들
그 과정에서 연극 [삼매경]은 과거와 현재, 상상과 현실, 심지어는 대본과 연극 그 모든 것을 넘나든다. 예순 살 지춘성은, [삼매경]의 도념은 자신의 자아가 이끄는 대로 [동승]의 대본을 뜯어고친다. 물이 새는 지하 연습실에서 연출에게 자아를 버리고 그 인물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진정한 배우가 된다며,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던 조언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다. [동승]에서의 자신의 연기를 형편없었다 욕하고, [동승]의 인물들에게 메타 독설(?)을 퍼붓고, [동승] 이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중압감, 변하지 않는 자신의 연기, 삶 그 모든 것에 비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점차 폭주하는 그에 상호작용 하듯 연극 속 인물들 또한 하나둘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한다. [동승]의 인물들은 두 번째 어린 도념, 세 번째 어린 도념이 되어 [삼매경]의 도념에게 포효한다. 그들은 원래 도념의 외로운 내면을 직접 드러내 주는 하나의 자연이었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그들은 슬링, 쉬익, 등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자연의 소리를 내어 도념의 무대를 꾸며주었다. 하지만, 도념이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대본을 인정하지 않자 그에 맞서듯 대본의 글자 하나하나를 찢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도념의 온전한 연기 삼매경은 실패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괴로워한다. 대본의 지시문, 글자 하나하나를 헤집어도,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방해하는 또다른 나를 죽여버려도, 강제로 극을 진행시켜도 '진정한 배우'가 될 수 없다니!
하지만, 도념은, 지춘성은 결국 모든 번뇌를 끊고 한 대상에 몰입하여 정신이 고요한 상태, 삼매경에 도달한다. 인물들을 받아들이고 대본을 받아들여 자신 또한 극의 일부가 된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3113728_mfokhsvg.jpg)
연극이 뭐라고!
필자가 이번에 대학교 창작극 연출 일을 하며 끊임없이 생각한 말이다. 대체 연극이 뭐라고. 대체 연극이 뭐라고 나를 갈고 너를 갈고 우리 모두를 이렇게 갈고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필자의 생각에 [삼매경]의 도념이, 배우 지춘성이 대답하듯 말한다.
"난 연극에 중독됐어. 이게 그토록 내가 날 괴롭히는 이유야."
또한, 연극이 끝난 후 무대에 다시 올라와 관객들을 바라보는 모든 배우들의 눈빛이 대답해 주었다.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복합적인 감정이 섞인 표정을 지은 그들을 보고 있으니 필자의 마지막 공연이 끝났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이상해지는 듯했다.

배우 정주호, 홍지인, 윤슬기, 이강민, 조의진, 조영규, 지춘성, 곽성은, 심완준, 서유덕, 고용선, 김신효, 정흥구, 조성윤
ⓒ 장수정
겨우 몇십 년 살아가는 인생에서 날 뜨겁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축복이자 저주임이 틀림없다. 배우 지춘성은 극의 후반부 거의 쉬어버린 목으로 대사를 끊임없이 토해낸다.
'"이까짓 것? 네들은 이까짓 것에 단 한 번이라도 뜨거워져 본 적 있어?"라는 대사처럼, [삼매경]을 보는 두 시간은 타인의 뜨거움을 보며 나의 실존을 감각하는 기묘하고도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삼매경]의 도념은 34년 전 미완의 연기를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구지만, 적어도 필자의 시선에서 배우 지춘성의 연기는 완벽하게 실존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