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3번'
중학생 때 친구 집에서 자주 하던 게임이 있었다. 바로 ‘프린세스 메이커’였다. 크레이지 아케이드 같은 PC 게임에 익숙했던 내게, 콘솔 게임은 또 다른 세계였다. 어린 공주의 아버지가 되어 공주의 성장을 이끈다는 설정은 단순하면서도 묘하게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늘 ‘바르고 똑똑한 아이로 키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시키며 캐릭터의 근본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하지만 이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 하나로 그동안의 노력이 순식간에 뒤집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럴 때마다 나는 주저없이 새 캐릭터를 집어 들었다. 게임에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생은 어떨까?

살다 보면 인생이 게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나를 플레이어처럼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칠 때가 있다. 특히 내 사고와 행동이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을 때면 그런 상상은 더 또렷해진다. 얼마 전, 평소보다 훨씬 긴 시간을 달려야겠다는 충동이 들었을 때도 그랬다. 마치 ‘체력 스탯이 떨어졌으니 보충해야 한다’라는 식의 알 수 없는 명령처럼 느껴졌다.
삶이 풀리지 않고 정체된 것처럼 느껴질 때면, 이런 생각은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나를 플레이하는 누군가가 이미 나를 ‘망캐’로 판단하고 방치해버린 건 아닐까? 어쩌면 이 세상의 수많은 포기와 단절도 그런 상황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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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근본 없는 월드클래스’의 채연은 그런 맥락에서 ‘망캐로 보이는 캐릭터’와 닮아있다. 채연은 마치 치트키처럼 완성도 높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들고 조별과제에 등장한다. 팀원들에게 돈을 걷고 A+을 보장하겠다는 당찬 선언과 함께. 그러나 그 자신감은 교수님의 한 마디로 사그라들고 만다. 바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을 랜덤으로 선정하겠다는 말이다.
그 결과 채연에게 주어진 인물은 김덕배였다. 축구 금지 국가에서 전직 축구선수를 찾아야 하는 상황. 알래스카에서 김상덕씨를 찾는 과정만큼이나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그 순간부터 채연의 여정은 본격적인 하드모드로 접어든다.
게임이었다면 이런 캐릭터를 쉽게 버리고 다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채연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직 하나,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든 돌파하는 것뿐이다.
김덕배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채연은 축구협회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마주하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들을 넘어선다. 그 과정에서 한 때 실패처럼 보였던 순간들이 뒤늦게 다른 의미로 이어진다. 과거 미디어 소녀로 소비되었던 경험은 조롱에서 응원으로 돌아오고, 도움이 될 것 같았던 인물들은 오히려 새로운 장벽이 된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묻는다. 이 캐릭터는 정말 망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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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메이커에서 스탯의 증감은 성공과 실패 두 갈래로 나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은 분명히 손해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엔딩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실패처럼 보이는 경로가 오히려 유일한 길이 되기도 한다.
김덕배가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이어가듯, 한때 소비된 존재였던 인물이 시간이 지나 다시 평가받듯, 삶은 좋고 나쁨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망하고 성공하고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손쉽게 망캐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근본 없어 보이던 누군가가 월드클래스가 되고, 월드클래스였던 사람 또한 흔들린다. 이 소설은 그 사실을 태도로 받아들이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태도는 리셋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없이 중요한 감각으로 와닿는다.
우리는 망캐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을 자주 지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미 쌓여버린 선택들 위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하는 태도가 바로 근본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실패처럼 보였던 장면들이 훗날 전혀 다른 의미로 이어지듯, 지금의 이 상태 역시 하나의 경로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인생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쉽게 단정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캐릭터의 앞날을 응원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