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을 때, 흔히 주고받는 질문이 있다. ‘인생책이 뭐예요?’ ‘인생책’이란 보통 인생에 큰 영향을 줄만큼 인상 깊었거나, 단순히 제일 재밌게 읽었던 책을 의미한다. 그래서 누군가 인생책을 물을 때마다 답하는 책이 있다. 책을 읽기 전과 후, 나의 일상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준 책. 바로 윌 스토의 ‘이야기의 탄생’이다.
이 책의 부제는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이다. 한마디로 ‘뇌과학’과 ‘스토리’,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다른 학문의 주제를 결합한 책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영화과 학생으로 재학 중에 ‘이야기란 대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스토리텔링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 플롯의 구조, 글을 잘 쓰는 방법 등 ‘창작’에 초점을 둔 책들이 많았다. 그러나 본서는 ‘스토리’를 뇌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며 ‘창작’보다 ‘이해’에 비중을 싣는 유일한 책이었다.
한마디로 이야기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이야기 속에서 탄생한 인간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가 책의 전반에 깔려 있다. 이야기에 대해 배웠더니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니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는 상호작용이 이 책 안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바깥’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사실 머릿속에서 구축한 현실의 재현으로, 스토리텔링 뇌에서 일어나는 창작의 결과다.
첫 번째 챕터, ‘만들어진 세계’의 중심이 되는 문장이다. 여기서 ‘만들어진 세계’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자 우리의 뇌가 이야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구축된 세계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뇌가 일련의 창작과정을 거쳐 생산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책은 ‘세계 모형’이라 설명하고 있다.
세계 모형이 만들어지는 시기는 주로 유년기부터 청소년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우리는 가정,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생존하는 법을 학습한다. 한마디로 우리의 뇌가 ‘특정 생존 욕구’에 맞게 세계를 창작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부를 잘하거나, 외적으로 뛰어나고,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대우를 받는 환경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이를 폭력이나 차별이라 여기지 않는다. 단지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자 우리의 이상으로 내면화할 뿐이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동급생 친구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학교 선생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 ‘생존 조건’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기 시작한다. 결국 유년기부터 청소년 시기를 거쳐 내면화된 사회의 관습은 한 개인의 세계 모형으로 굳어진다.
문화는 현실에 대한 환각을 구축하는 신경 기제의 일부를 형성하며 우리가 삶을 경험하는 렌즈를 왜곡하거나 좁히는 식으로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요컨대 내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란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진 환영일 뿐,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잠재의식 안으로 들어간 사랑의 조건들을 하나씩 충족하기 위해 생의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소속감, 인정욕구와 같은 달콤한 유혹들을 뿌리치지 못해 나를 속이는 일도 많다.
영화 '트루먼쇼'는 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중 하나다. 주인공 버뱅크는 태어날 때부터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리얼리티쇼의 주인공으로, 그가 살고 있는 작은 해안도시, ‘헤이븐’은 거대한 세트장이다. 하지만 버뱅크는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지고, 길에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을 말이다.
앞서 확인한 문장에 의하면, 우리의 뇌가 만들어낸 세계는 버뱅크가 살고 있는 섬, ‘헤이븐’과 같다. 우리의 의지대로 만들 수 없는 환각의 세계이자, 내가 아닌 타인이 감독이 되어 나를 조종하는 세계. 그리고 대부분은 주인공 버뱅크가 그랬듯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지는 장면처럼 견고한 세계에 균열을 낼 사건이 필요한데, 그 기점이 되어준 것이 이 책과의 만남이다.
책을 읽으며 무의식적으로 했던 말과 행동,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어떤 시스템 안에서 생산된 것인지, 이유 모를 무기력과 미워하는 마음들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배울 수 있었다. 이야기의 탄생이란 곧 인간의 탄생이듯, 이야기를 통해 나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사랑이란 상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내가 나를 잘 알아야 나를 미워하지 않는 법도, 나와 화해하는 법도 익힐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 인생책을 묻는다면, 주저없이 '이야기의 탄생'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