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책과 음악을 페어링하는 방식


  

책을 읽을 때면 습관처럼 가장 먼저 책의 뒤표지를 살핀다. 뒤표지에 실린 문장들을 읽다 보면 그 책을 관통하는 분위기와 온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그렇게 파악한 온도를 바탕으로 책에 어울릴 법한 노래 한 곡을 고른다.


그렇게 선정된 곡은 마지막 장이 넘어갈 때까지 무한 반복 재생된다. 오직 한 권의 책과 한 곡의 노래만이 같은 시간 안에 머문다.


하나의 책에 대해 하나의 곡만을 반복해 듣는 방식은 강력한 기억을 선사한다. 또한 이야기에 파고드는 속도가 달라지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음악이 스며든다. 곡의 멜로디는 장면의 명암을 또렷하게 만들고, 곡의 가사는 감정의 결과 정교하게 조율된다. 책 속 인물의 심리와 에어팟 속 가수가 내뱉는 메시지가 같은 호흡을 갖는 순간, 노래는 책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경험의 매력은 독서가 끝난 후에도 드러난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될 때, 책의 장면들이 파편처럼 떠오른다. 인물들의 이야기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읽어 나가던 순간의 감정까지.

 

흔히 향으로 공간, 사람을 기억한다고 말하듯, 나의 경우는 음악으로 책을 기억한다. 즉, 노래는 더 이상 하나의 노래로만 존재하지 않고, 책과 그 책을 읽던 당시를 호출하는 매개체가 된다.


책은 노래를 배경 삼아 더욱 또렷해지고, 노래는 책 속 이야기를 입어 그 곡만의 서사를 지니게 된다. 같은 곡을 들어도 이전과 달리 감정이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노래 하나를 정해 함께 듣는 독서. 독서의 깊이를 더하는 이러한 방식의 독서를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래 그 이야기를 간직할 수 있는 이 방식은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당신을 다시 그 책의 첫 문장으로 데려다줄 테니까.


 

 

에디터의 페어링



(1) 소금 아이 - 하현상 <허밍버드>

 

<소금 아이>는 뒤표지의 문장들에 매료돼 아무 정보 없이, 그러나 주저 없이 골라낸 책이다.

 

‘두 아이의 외로운 삶 앞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들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기적의 비밀은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사람 때문에 쓰러진 아이를, 사람이 일으켜 주었다. 사람이 건넨 손은 뜨거웠고, 몸의 무게를 실어 기댄 어깨는 든든했다.’


사람. 내가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는 바로 사람이다. 우리는 늘 사람에 의해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사람에 의해 다시 웃음을 찾고 행복감을 느낀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치유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큰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콘텐츠에 담아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 그렇기에 사람의 힘을 믿는다는 내용의 문장을 보고 이 책을 외면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렇게 첫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선곡한 노래는 바로 하현상의 <허밍버드>였다.

 

 

 

 

어떤 하루도

어떤 이유도

변하지 않았지만


다시 나 태어나도

세상 속에 버려질래요


부러진 날갯짓도

어쩌면 오래된 나였다는 걸

여전히 하늘엔 닿지 않는 걸

여전히 미워한 적 없다는 걸


어제가 아물지 않은 그 새는

멀리에

멀리에

어디에

 

 

같이 듣기에 적합한 책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아껴 두고 듣지 않았던 곡이었다. 그리고 <소금 아이>를 마주한 순간, 이 곡과 함께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그렇게 이번 독서는 이 곡과 함께했다.


곡의 가사와 멜로디가 높여 준 몰입감에 책 한 권을 다 읽는 데에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스포일러가 될까 싶어 책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줄이겠지만,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이 노래가 책의 내용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를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허밍버드>를 재생하기만 해도 이수의 이야기가, 세아의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이 노래를 잊지 않는 한, <소금 아이> 역시 나에게서 잊혀질 일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2) 지구에서 한아뿐 - 하현상 <3108>

 

외계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예 현실과 동떨어진 것만 같은 그런 이야기.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드라마 역시 외계인이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은 <핫스팟: 외계인 출몰 주의!>라는 드라마였으니 쉬이 파악되는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지구에서 한아뿐>은 주인공 ‘한아’에게 반해 ‘한아’의 남자 친구 ‘경민’과 거래 후 ‘경민’이 되어 한아의 앞에 나타난 외계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정세랑의 소설이다. 외계인에 관한 이야기임을 인지한 후 고른 책이었기에, 선택과 동시에 함께 들을 곡 역시 쉽게 정할 수 있었다. 하현상의 <3108>.


어째 책을 읽을 때면 하현상의 곡을 자주 찾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책과 함께 찾은 하현상의 곡이 10곡 가까이는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하현상의 <3108>은 빛의 속도를 의미하는 숫자를 제목으로 설정해, 빛보다 빠른 속도로 과거로 달려가 내가 그리워하는 그 시절의 너와 나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 외계 행성에서 지구의 ‘한아’에게 반해 지구로 달려간 외계인 ‘경민’의 이야기와 이보다 잘 어울리는 노래가 있을까?

 

 

 

 

빛을 건너 그날의 널 볼 수 있다면

지금 너와 난 영원을 속삭였을까

Let me catch the light

Let me catch the light

깜깜한 어둠을 건너

안타까운 시간을 돌려

한 번 더 너를 안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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