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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정신이 저항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 팬레터

뮤지컬 팬레터 리뷰

by 진금미 에디터
2026.01.28 11:28

 

 

2025 팬레터_포스터.jpg

 

 

"안녕. 나의 빛, 나의 악몽"

 

1930년대 경성.

 

카페에서 쉬던 세훈은 히카루라는 죽은 작가의 마지막 소설이 출간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녀의 진짜 정체도 밝혀진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세훈은 유치장에 갇혀 있는 소설가 이윤을 찾아가 유고집 출간을 중지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이윤은 출간을 중지해야 할 정확한 이유를 밝히라며 소설가 김해진이 히카루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까지 꺼내 자랑한다.

 

세훈은 결국 히카루에 대한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내는데...

   

뮤지컬 <팬레터>는 제목에서 드러난 대로 편지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부잣집 도련님 세훈은 민족과 자신을 억압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고통받고 있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존경하는 작가 해진에게 팬레터를 보내는데, 해진은 그 편지를 러브레터로 받아들인다. 문학 집단 ‘칠인회’에서 급사로 일하며 해진을 옆에서 지켜보는 세훈은 병세가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쓴 편지 때문에 울고 웃는 해진을 보며 진실을 밝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

 


[팬레터] 공연사진_10 김리현_제공 라이브(주).jpg

 

 

뮤지컬 <팬레터>와의 인연도 어느새 5년째다. 시작은 2020년 코로나 시기에 이뤄진 무료 중계 영상이었다. 영상으로만 봤는데도 이야기 자체의 흡입력이 강해서 화면에 빨려들 듯이 집중하며 감상했다. 그 후로 2022년에는 두 눈으로 직접 봤고, 2026년 세 번째로 <팬레터>를 봤다.

 

처음과 두 번째 감상에서는 장르적 재미를 위주로 봤다. 처음 봤을 땐 세훈의 또 다른 자아 히카루가 세훈을 잠식하는 과정이 극적이어서 그 부분에 집중해서 봤다. 두 번째 봤을 때는 환상을 붙잡아야 겨우 살아낼 수 있는 해진 선생님의 감정선이 마음에 들어왔다. 최근에 이뤄진 세 번째 감상에서 비로소 그들과 함께 문학 활동을 하는 칠인회의 심정이 들어왔다. 나라가 사라진 시대에 순수한 정신으로 저항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순수문학은 말 그대로 문학의 순수성을 지향하며 문학을 현실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지 않는 경향의 문학을 말한다. 어릴 땐 순수문학의 입장보다 암담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저항, 참여문학의 입장에 좀 더 공감했었다. 현실적인 작품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였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현실에 참여하는 것만큼이나 순수한 정신을 지켜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정신이란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현실과 무관한 작품을 씀으로써 오히려 현실에 지지 않는 정신을 보여주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삶의 풍파에 정신이 훼손된 지금 뼈저리게 와닿았다.

 

그 뼈저린 깨달음을 안고 극을 감상하기 시작하니 <팬레터> 자체가 정신을 지키려는 발악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훈에게 히카루는 필명으로 시작해 페르소나를 넘어 자신의 선택을 모두 좌지우지하는 또 다른 자아가 되었다. 해진에게 히카루는 자신의 작품을 사랑해주는 팬으로 시작해 연인을 넘어 삶의 이유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히카루는 허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훈과 해진은 그 허상 없이는 이 차가운 현실을 견딜 수 없기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그 허상을 놓지 못한다.

 

 

[팬레터] 공연사진_18 에녹_제공 라이브(주).jpg

 

 

순수문학이 지키고자 했던 순수한 정신도 실체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그렇기에 훼손되기 쉽고, 무시 받기 쉽다. 하지만 적어도 칠인회의 정신은 거짓이 아니다. 세훈이 집착했던 히카루와 히카루로 맺은 해진과의 관계는 거짓말의 산물이다. 진실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고, 세훈도 이를 알기에 극 내내 계속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 허상이 나를 살게 해준다고 해도 진실을 부정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쓰인다면 결국 도래하는 건 비극적 결말일 뿐이다. 칠인회가 지키고자 했던 순수한 정신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조선인으로서의 자신이기도 했다. 자신을 부정하는 허상과 자신을 지키는 정신이 같을 리가 없다. 설령 그 허상이 내 존재를 인정해주는 유일한 존재라고 해도 말이다.

 

정신이 저항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내 답은 ‘그렇다’이다. 그렇다면 거짓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다. 순수문학의 정신은 현실을 외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부정하는 거짓이 어떻게 나를 지키겠는가. 나를 지키기 위해선, 거짓보다 진실을 택하기 위해선 우선 나를 긍정해야 한다. 이것이 세 번째 본 <팬레터>가 연약한 정신을 붙들며 살아가는 내게 준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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