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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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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은님께.

 

안녕하세요 상은님, 이렇게 지면으로 연결되어 반가워요. 제가 상은님에 관해 전해 받을 수 있는 정보값이라곤 이름 석 자와 그간 쓰신 글들 - 그러니까 오직 활자들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활자를 건너 마주한 사이이기 때문에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것들이 있죠.


앞선 순서이신 현승님께 편지를 쓰시며, <하나 그리고 둘> 그리고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시사회에서 어쩌면 마주쳤을지 모른다고 놀라워하셨던 게 기억나요. 그 대목을 읽으며 저도 조금 놀랐는데요, 저도 똑같이 <하나 그리고 둘> 그리고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시사회에 갔었답니다!

 

상은님이 현승님과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떠올리며 글을 쓰셨듯 저도 상은님과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어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이의 사람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들이니, 찾아다니는 장소와 향유하는 취향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걸까요? 상은님이 쓰신 글을 읽어내려가며, 같은 필름을 보고 상은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헤아려 보는 작은 재미가 있어요.

 

*

 

밤 9시 이후에 떠오르는 삶에 대한 생각을 믿지 말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셨죠. 저도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종종 곱씹어 보는 문장인데, 실은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말이기도 해요.

 

누구에게나 불현듯 삶의 버거움이 밀물처럼 덮쳐 오는 시간이 있잖아요. 저는 주로 새벽에 퍼뜩 잠을 깨었을 때, 아니면 일요일 오후 세 시부터 해질녘 사이의 시간이 그래요. 그 시간대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저를 저 질척이는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거든요. 상은님께도 그런 시간이 있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 친구의 용산 자취방을, 집으로 내려가는 1호선 지하철을 오갔던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던 시절의 상은님은 ‘삶의 버거움'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피부로 여실히 체감하고 계시지는 않으셨나요.

 

아이러니하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이런 덮쳐 오는 경험과 근본적인 고독은 저를 저로서 존재하게 하는 구성 요소이기도 해요. 상은님께서 ‘타지에서 혼자가 되는 경험과 고독이 역설적이게도 독립성을 자라게 만든 토대가 되었다'라고 말씀하셨듯이요.


한 사람은 그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싫어하는 것, 말하자면 ‘취향'으로 많은 부분이 설명된다고 생각해요. 상은님이 어떤 분이실지 궁금해서, 상은님이 쓰신 글에 궤적처럼 남은 자취를 따라가며 상은님의 취향이 무엇일지를 떠올려 보았어요.


고유성을 갖춘, 자기 세계가 확고하고 단단한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지난 주까지는 백예린의 Love를 자주 들으신다고 하셨는데, 그게 이번 주에도 여전히 해당되는지 궁금했어요. 요즘은 무슨 노래를 즐겨 들으실까요 - 백예린의 곡들과 느낌이 비슷한 잔잔하고 감각적인 류의 노래를 좋아하시려나요, 인디밴드를 즐겨 들으시려나요, 그도 아니면 팝송이나 오래된 노래들을 좋아하실까요.

 

<아이 칼리>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시애틀 도심의 모습을 보고 아메리칸 드림을 가져 보셨다고 했는데, 여전히 시애틀은 가고 싶은 도시 중 1순위인지, 나중에라도 한 번쯤 시애틀을 가 보아야겠다 하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저는 이 년 전쯤 시애틀을 다녀왔는데, 제가 상은님처럼 <아이 칼리>를 보고 자랐더라면 그 도시에 느끼는 감상이 지금과는 조금 달라졌겠죠.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이 다음으로 염두에 두신 목적지는 어디일지 여쭙고 싶어요. 저도 여행을 좋아하니 언젠가 우연처럼 여행지에서 만나뵙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무언가를 수집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하셨죠. 필사를 취미로 가진 지 삼 년 정도가 되셨다고도요. 요즘 필사를 시작하신 책이나 문장이 있나요? 상은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문장은 뭘까요. 답을 바로 듣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다시 마주쳐 상은님께 직접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

 

얼굴을 모르니 온전히 이름만을 곱씹게 돼요. 이유는 모르지만 상은님의 이름에서는 여름의 느낌이 조금 나는 것도 같아요. 옅은 햇살 그리고 옅은 녹음을 닮은 어감의 이름이에요. 언젠가 찾아올지 모를, 예상보다 느리게 또는 예상보다 이르게 찾아올 만남의 그날에 직접 묻고 싶어요. 요즈음은 행복하신지, 여전히 밤에는 잠 못 들어 설치는 때가 가끔씩은 있는지, '골몰하는 청춘'은 여전한지, 오늘은 무슨 노래를 들으셨는지를요.


반가웠어요. 만남의 그날까지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

 

그리고 유은님께.


유은님께서도 <하나 그리고 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시사회에 다녀오신 모양이에요. 역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이의 사람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겠다고 선뜻 나서는 부류의 사람들은 비슷한 것에 이끌리는 게 맞나 봐요.

 

가볍지 않은, 그럼에도 결코 불친절하지는 않은 영화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짐작해 보았어요. 영화를 바라보시는 유은님의 명료하고 예리한 시선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활자 너머의 ‘사람’을 보실 때 유은님의 시선은 어떨지 더불어 기대가 됩니다. 지면으로 만나뵙길 고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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