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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

이 글은 도서 『그림 읽는 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림 읽는 밤』은 미술 에세이스트 이소영이 사랑해 온 명화와 책을 통해 만난 문장들을 연결해 큐레이션한 책이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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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만난 게 12월 31일이었다.

 

도착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3분쯤, 현관문 옆 벽에 살짝 기댄 채로 비스듬히 서 있던 너는 밤늦게서야 집에 도착한 나를 대략 5시간 가까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날은 2025년의 마지막 날인 바람에, 나는 집을 비운 채 가족들과 함께 명동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네가 오늘 도착한다는 소식이 문자로 날아들자마자 ‘오, 꽤 빨리 오네?’ 싶었지만, 금세 패딩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는 잊어버렸다.


이날은 새로운 목도리를 하나 사겠다는 중대한 목표를 수행하고 있었다. 짙은 파랑의 단색 목도리를 찾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나지 못했다.

 

상점을 몇 개 돌다 결국 잘 어울리는 평을 받은 민트색 목도리를 목에 두른 채, 고단하지만 나름의 수확이 있는 반나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만난 너는 꽤 우아한 모양새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집 앞에 놓인 형광 오렌지색 택배는 문 옆 바닥에 덩그러니 누워 있었는데, 너는 어째선지 벽에 살짝 끝선을 기대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희한하다 싶었는데, 겉포장지에 ‘양장본이라 조심히 다뤄 달라’는 식의 주의 문구가 남겨져 있었다.

 

책 한 권이 배송된 것뿐인데 그 말 한마디가 적혀 있으니, 나도 괜히 조심스럽게 가위질을 했던 기억이 난다.


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도톰했고, 꽤 예뻤다. 뭔가—새 책이라는 느낌이었다. 방금 꺼내어진 먼지 하나 없는 공예품 같았다. 표지를 마주하자 너의 이름부터 다시 살폈다.

 

『그림 읽는 밤』이다. 이름과 눈을 맞춘 뒤에는, 너를 한 손에 쥔 채 책상에 앉았다. 잠깐, 다가올 네 밤을 건너기 전, 우리 이렇게 칭하기로 하자. 내 손에 들어온 책, 너는 ‘너’로. 그리고 이 책을 엮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저자는 ‘당신’으로.


다시 돌아와서— 나는 ‘그냥 쉬어 가보자’는 마음 한 줄을 머릿속에 띄워 두고, 두터운 하늘색 표지를 넘겼다.

 

하얀색과 옅은 갈색, 살짝 먹구름을 닮은 색이 담긴 페이지를 지나 연보라색의 ‘프롤로그’가 나타났다. 너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까지 나를 이끌어 줄까. 살짝 심드렁한 상태로—오늘은 그냥 맛만 봐야지 하는 심산으로—페이지를 넘겼다.


막 외출에서 돌아온 참이 아니던가. 핫팩 하나, 민트색 목도리, 부른 배 하나로는 온전히 추위를 막지 못해 평소에는 없던 두통이 둥—둥—관자놀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너의 첫 마디와 또 다른 문장, 그리고 하나의 단어가 나의 피로를 잠시 멈춰 세웠다. 무엇일까?

 

‘나는 오래도록 읽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리고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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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잠시 펼쳐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나 샤프 하나를 찾았다. 사람이 직감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동안의 짧은 독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나는 너를 속독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고작 연보라색 프롤로그에서 얻었다.


서랍장 위에 놓인 종이함에서 필기구를 꺼내 들어 나를 멈춰 세운 문장 아래에 진회색 선을 쭉—그었다. ‘공명’에는 옅은 회색의 원을 두세 번 새겨두었다. '공명' 옆에 놓인 문장에는 너의 것이 아닌 나의 것으로 단어를 바꿔 넣어 읽었다.


너는 

‘그렇게 사랑하게 된(그림)들을 틈틈이 저장했다.’ 

말했고,

 

나는 

‘그렇게 사랑하게 된(음악)들을 틈틈이 저장했다.’ 

읽었다.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곳에서 너는 내게 이렇게 전했다. 

 

‘눈보다 손이 깊게 읽는다.’ 

 

맞다. 너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네가 말한 대로 읽는 것이고, 쓰는 것이기도 하다.


‘눈으로 스쳐 지나간 것들이 손끝을 거쳐 종이 위에 내려앉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이 문장을 읽고서는, ‘아, 이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네가 그림을 눈으로 스쳐 지나간 흔적들이 손끝을 거쳐 끝내 글자의 형태로 종이 위에 내려앉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야 했겠지만, 이기적이게도 나는 너의 문장을 통해 지나온 나의 시간들을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다. 너의 말대로 사라질 것을 굳이 붙잡아 하얀 페이지에 얹어 놓으면, 그때 당장은 모르지만 되돌아봤을 때 그것들은 모두 내 것이 된다. 그때의 나는 이 말을 완성하진 않았지만, 저만한 길이의 문장만큼이나 긴 공감을 스스로에게 내려놓았다.


한 페이지를 더 넘겨 프롤로그를 끝내자마자, 직감했다. 나는 너를 꽤 느리게, 혹은 여러 번, 그리고 한밤중에 읽게 되겠구나. 


느리게 읽는다는 것은 관심 없는 내용을 손쉽게 스킵해 버리는 내 습관을 접어 두겠다는 것이고, 여러 번 읽는다는 것은 반드시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긴 이후 마음에 들어 접어 놓은 페이지로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한밤중에 읽는다는 것은 당신의 글을 내 주변이 가장 고요해지는 시간 안에서 만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첫 만남도 괜찮았고, 첫인상도 마음에 들었으니 나는 너와 꽤 괜찮은 산책을 하게 되겠구나. 그렇게 될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며 책을 덮었다.

 

 

 

첫 번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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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르손의 「부엌, 집으로부터」에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곧장 오른편의 글자들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당장 네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어리석게도 그림보다 글자 읽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당신께서 큐레이팅해 놓은 그림을 글자보다 먼저 살펴보는 편이 좋았겠지만, 딱 봐도 다정해 보이는 해설지가 그림 옆에 딱—놓여 있으니. 자꾸만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문장에 한 번, 그림에 한 번 번갈아 살펴보니, 내가 집중하지 못하고 가장자리로 밀어 놓기만 했던 영역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그려진 것에 몰두하기보다, 그림이 붙잡아 놓은 ‘순간’들—이를테면 챙겨 주는 중, 붓을 들고 기다리는 중, 너무 꾸미지도 그렇다고 너무 어질러져 있지도 않은—을 라르손이 포착해 냈다는 당신을 따라, 나는 ‘순간’이 남아 있는 장면을 하나씩 음미했다.


아, 창문 위에 달린 커튼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구나. 고양이가 저기 있었네. 언니의 치맛자락 아래에 작은 꼬마 동생의 손이 감춰져 있네. 그래, 이런 순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집이고, 부엌이지.


한 페이지를 마저 넘기니 여백과 함께 당신께서 여러 책들에서 모아 놓은 ‘문장 서랍’ 속 문장들이 오른쪽 페이지 상단에 놓여 있었다. 이 책을 네 번 정도 되짚어 온 지금, 나는 저 문장들에 마음을 오래도록 빼앗겼음을 미리 예고하지 않을 수 없겠다.


나는 이어지는 그림들에도 첫 번째 그림을 살펴본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림보다는 글자를 먼저 보고, 글자를 살핀 뒤에는 그림을, 그림을 살핀 뒤에는 다음 페이지의 명언을 살피는 순서를 지켜 갔다. 물론 오른손으로 샤프 한 자루를 쥔 채, 내 다음 회독을 위한 작은 표식을 남겨 두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프란츠 폰 슈투크의 「유성들」을 살펴볼 적에는, 내가 느리게 읽게 되겠다는 처음의 다짐과는 다르게 문장과 그림을 넘겨 가는 속도가 꽤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는 게, 이 책의 문장들은 브런치를 끝마친 뒤에 주문한 푸딩을 닮아 있었다.


분명 여유를 오래 즐기려던 디저트였는데, 너무 달지 않고 입안에서 녹아내려 결국 한숨에 먹어 치우게 되는—그런 텍스처였다. 매 페이지가 부드럽게 넘어가, 자꾸만 읽는 속도가 붙었다.

 

애초에 걸림돌이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림을 읽어나가게 만드는 디딤돌 같은 문장들이 착—착—놓여 있어서, 좋은 의미로 곤란했다. 그러니 한두 번씩은 일부러 그림을 살펴보는 순간에 여유를 더 두기도 했다.


어디에서 그랬을까. 딱, 프란츠 폰 슈투크의 「유성들」 36페이지였다. 까만 밤하늘에 별이 박혀 있고, 그 아래에 두 사람이 있는 그림 앞에서였다.

 

남자와 여자가 일정하지만 꽤 다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네. 별들을 보고 있구나. 대화를 하고 있는 걸까. 침묵 안에서 어떤 감정을 나누고 있을까.


이 장면이 부럽기도 하고, 가만 바라만 보기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 그림 속 그들보다 살짝 뒤에 주저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마침, 나도 밤의 한가운데였다.

 

그렇게 1분쯤 머무른 뒤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내게는 선물 같은 단어 하나가 놓여 있었다.


너는 말했다. 사랑은 이렇게 매 순간 새롭게 그려지는 ‘선’이라고. 내가 클래식 안에서 줄곧 따라다니던 ‘선’이라는 단어가 이곳에도 놓여 있어 괜히 반가웠다. 하마터면 그날 밤, 운명론자가 될 뻔했다.


피에르 보나르의 「글 쓰는 젊은 여인」에서 만난 문장들 앞에서는 세 번의 밑줄을 그었다.

 

 

‘때로는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는 그 망설임의 시간 자체가 사랑이 아닐까?’


‘잔잔한 실내의 공기 속에서 그는 외로움과 그리움, 말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들을 잡아내 화폭에 옮겼다.’


‘진심은 쉽게 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특히 ‘내가 있던 그곳에 무슨 일이 벌어졌었다’는 주제를 다루며, 글이든 노래든 무용이든 연주든—그 모든 예술이 결국 사람에서 사람으로 끝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원래도 내려놓기 어려웠던 글자 몇 개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1908년의 붉은 테이블 위에서, 얼굴을 보여 주지 않은 채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여자의 옆모습 앞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그 장면을 무언가를 견뎌 내며 마음을 정리하는 순간이라고 짚어 주는 2025년의 문장 앞에서, 나는 그 멈춤을 그대로 붙든 채 생각했다.


아—종이 위에서 견뎌 내는 일이란, 꺾이지 않으려는 우리의 배짱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그리해야 할 것 같다는 정체 모를 이유 하나가 들이닥쳤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저 그림과 너의 문장을 만난 2026년의 나는, 역시 운이 좋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두 번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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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너무 빨리 읽어 버릴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밤에 1장에서 멈춰 선 게 무색할 만큼, 두 번째 밤에는 2장과 3장을 한꺼번에 건너왔다.

 

2장의 시작인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의 「슈거링 오프」 그림 옆에 놓여 있던 말 하나에 두 번의 회색 원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지스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미국의 어두운 시기를 모두 겪었음에도 의도적으로 삶의 밝은 면을 화폭에 옮기려 했다. 이는 현실 도피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선택하는 용기로 봐야 할 것이다.
 


저 말을 만나기 전, 나는 전날 관람했던 영화 〈국보〉 한 편이 내게 남긴 감정들을 에세이 안에 토닥토닥 남기고 온 참이었다. 가부키라는 세상을 항해하던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외면’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그 단어 아래에 세 문장을 그어 냈다.


 
넘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가질 수 없는데 이제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그 안에 너라면 어떻게 눈을 맞출까. 당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계속 말을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 서야 한다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하며. 
 


어둠 속에서도 의도적으로 밝은 면을 들여놓은 이와, 가질 수도 멈출 수도 없으나 아무렇지 않게 무대 위에 서야 하는 이. 처음의 것이 희망을 선택하는 ‘용기’였다면, 후자는 무엇일까.


용기라 부르기엔 너무 차갑고, 체념이라 부르기엔 너무 단정한 어떤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외면’이라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하니까. 적어도, 당분간은.

 

 

 

세 번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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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술술 읽히는 바람에 금세 책이 끝나 버렸다. 그럼에도 별다른 아쉬움이 들지 않았던 것은, 어차피 나는 곧 첫 페이지로 되돌아가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밤에는 너를 조금 다르게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내게 뭐라 했던가. 

 

‘눈보다 손이 깊게 읽는다.’


나는 독서대 위에 있던 너를 책상 위로 내려놓고, 표지 위를 손가락 두세 개로 가볍게 쓸었다.


매끄러운 표면은 아니길래 스탠드 조명에 대고 가까이 들여다보니, 반짝이는 것들이 사선으로 박혀 있었다. 작은 점들로 수놓아진 표지 아래에서, 하단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손끝에서 만나는 그림과의 대화.’


너는 나와의 첫 악수마저도 다정하게 준비해 두었구나, 싶었다. 별이 박힌 책 한 권이 눈앞에 놓여 있으니, 자꾸만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네 번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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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 그러니까 몇 가지의 문장과 몇 개의 장면이 온전히 내 것이 되던 밤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되짚었다.


내가 내게 남겨 둔 회색 이정표가 있으니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고, 문장 서랍에서 건져 올린 것들 위를 지날 때는 너를 다 읽고 나면 이 책들을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마지막, 라이오넬 파이닝거의 「겔메로다 9」에 다다랐을 때는 어쩜 처음의 약속을 이렇게 잘 지켜 내는 조용한 이별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네가 나에게 건넨 첫 인삿말이 무엇이던가. 샬롯 브론테의 「저녁의 위안」에 나온, ‘고독한 사색의 시간들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지 않았던가.


딱—시간들을 닮은 끝맺음이었다.


아주 고요했다. 기다란 여운 없이도, 그대로 정적 안에 멈춰 설 수 있게 만드는 종결부였다. 그러니 나는 손쉽게 책을 덮었고, 또 가볍게 책을 펼쳐 들었다. 너의 문장 안에서 다음 책을 골라 내야 했거든.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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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 걷는 밤을 지나온 오늘의 나는, 너의 문장 서랍 속에 있던 책 몇 권을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


하나는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였고, 두 번째는 정지우의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그리고 세 번째는 헬레나 애틀리의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이었다.


세 번째 책은 처음 마주한 것이었다. 앞선 두 권을 고른 뒤, 함께 산책을 나온 엄마가 책을 고르는 사이 서가를 거닐다가 발견한 책이니. 이 세 권을 다 읽고 나면,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를 읽기로 마음속에 계획을 세워 두었다.


이 책 또한 당신의 문장 서랍 안에서 눈맞춤한 책이니, 나는 작은 감사를 표해야겠다.


내가 너를 통해 명화에 완전히 매혹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다만 당신의 글자 위에서, 그림 앞에 선 내가 바라봐야 할 풍경이 이만큼 따뜻할 수 있구나, 내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문장들을 건져 낼 수 있구나, 내가 그림과 공명할 수 있는 지점은 언제든 존재하는구나—하는 생각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그림보다 당신의 글자에 더 홀렸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황홀한 색채 위보다도, 까만 글자 위를 네 번이나 건너온 밤이겠다.


영화를 보아도, 책을 읽어도, 클래식을 들어도 이 모든 것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으니.


내가 어찌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은,

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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