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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근대의 예술은 많지 않다. 학생 시절 문학, 한국사, 미술과 같은 교과 수업을 통해 근대라는 시대와 그 예술을 몇 가지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지금은 기억이 흐릿해졌고, 미술사보다는 시와 같은 문학예술 쪽이 더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알고 있던 근대 화가 역시 나혜석과 이중섭 정도였다.


현대 미술에 대해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나라 미술보다는 외국의 미술에 더 관심을 가져온 편이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까지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외국 예술가들의 작품만 접해왔기 때문인 듯하다. 그 결과 정작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미술이 어떤 모습인지는 잘 알지 못한 채 지나쳐왔다.


이처럼 한국 미술에 대해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우리나라 미술이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작품 자체를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서사', 즉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내가 몰랐던 한국 미술과 그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내내 새로움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 저자 우진영에 대해 먼저 말하고 싶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단순히 미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술 자체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느껴졌다. 저자는 한때 예술가를 꿈꿨지만, 재능이 없다고 느껴 포기했고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다 '예술과 사상'이라는 수업을 계기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전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 연구원으로 일하며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끝까지 곁에 두고 살아온 삶처럼 느껴져 인상 깊었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에는 저자뿐만 아니라 근대와 현대의 예술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정서가 담긴 미술을 놓지 않았던 예술가들, 그리고 여러 변화가 가득한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예술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의 작가들까지. 이 책은 예술 작품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잇는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나와 당신의 도시'는 경성과 서울이라는 두 도시의 풍경을 통해 근대와 현대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도시를 바라보는 복합적인 감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공간은 달라졌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과 정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 깊다.


2부 '경계선 위의 존재들'은 외지인, 여성, 장애인 등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이 장에서는 예술이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삶을 드러내는 창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을 통해 만나는 이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우리 사회'를 떠올리게 만든다.  3부 '계절을 통과하는 감각'에서는 계절이라는 감각을 매개로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본다. 같은 계절을 두고도 근대와 현대의 작가들이 어떻게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표현하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도 각자의 삶과 감정이 어떻게 다른 언어로 기록되는지가 섬세하게 드러난다.


4부 '내면의 소용돌이'와 5부 '삶에 흐르는 이야기'는 예술가의 욕망과 불안, 그리고 사랑과 연대처럼 삶의 본질적인 감정들을 다룬다. 또한 이 책은 근대와 현대 예술가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예술가와의 인터뷰를 함께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작품 너머의 생각과 고민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예술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장은 2부와 3부다. 2부 중 '떠나온 이들의 시선'이라는 부제 아래 소개된 두 작가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의 작품으로 소개된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3·1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격동의 시대에 그려졌을 작품임에도 그림 속 풍경에서는 묘한 평온함이 느껴졌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뻔했다.


키스의 회고록에 등장하는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했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인들은 초라해 보였다"라는 문장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나라를 빼앗긴 상황 속에서도 떳떳함을 잃지 않았던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 역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소개된 현대 예술가 김현철 작가의 <제주 바다> 역시 쉽게 넘길 수 없는 작품이었다. 제주에 가본 적은 없지만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무를 만큼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3부에서는 이내 작가의 <기억–마음에 담은 별>이 기억에 남는다. 점으로 표현된 수많은 별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깊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잠시 미술을 멀리했던 시간 속에서도 그림을 이어온 작가의 이야기는 예술을 계속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이는 책을 읽는 내내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이다. 예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계속 이어가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혹은 현실의 무게 앞에서도 예술을 놓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통해 우리나라의 근현대미술을 더 알고 싶어졌고 지금까지 너무 멀게만 느껴왔던 한국 미술이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또한 나 역시 그림을 그리면서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주저앉곤 했지만 그럼에도 계속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잘하는 것보다, 완성하는 것보다, 계속 이어가는 것 자체가 예술일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술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태도까지 함께 전해주는 책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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