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안녕하시게. 오늘은 매설방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네.

   

아, 왜 있지 않은가. 저잣거리에 '춘섬'이라는 여인이 운영하는 주막. 거기가 사실 매설방이라네. 이야기를 파는 방. 그래서 매설방!(賣說房)


요즘 흉흉한 세상을 풍자하는 패관소설이 하두 퍼져서, 관아에서 새책가를 중심으로 소설들을 모두 거둬 불태워버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이야기가 다 사라져 버린 마당에, 조선에서 유일하게 세상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네. 거길 가면 산받이의 흥겨운 장단에 맞춰 이야기판을 벌이는 전기수를 만날 수 있네.

 

 

제목을 입력해주세요. (4).jpg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전기수들을 소개하겠네! 바로 '호태'와 그의 제자 '달수'일세. 호태는 일급 규방의 전기수라네. 달 떠오르는 밤이면 여인네들이 쓰개치마를 뒤집어쓰고 그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몰려들 정도라네. 달수는 사실 양반가 자제라네. 근데 과거 시험에는 별 관심이 없고 세상사에 더 관심이 많은 친구라네. 어느 날 새책가 앞에서 '이덕'이라는 여인을 우연히 보고 반해 그녀가 향한 매설방 앞에 당도하게 되었다고 하네. 그 후 호태를 만나 금지된 이야기의 맛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어, 그자의 제자가 된 것이라네. 이 자의 노래 솜씨는 아주 끝내준다네! 특히 "새가 날아든다"라는 노래에서 나는 짜릿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네.

 

 

판 뻐꾸기.jpg

 

 

매설방에서 나 같은 관중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바로 '뻐꾸기'. 우리 뻐꾸기들은 한낱 관중에 지나치는 존재가 아닐세. 호태는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특기인데, 이때 뻐꾸기들이 각자 뻐꾸기불을 흔들어 다수결로 이야기 유형을 정할 수 있네. 그리고 뻐꾸기들이 던지는 기상천외한 단어들을 엮어 제한 시간 2분 만에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네. 대단하지 않은가?


아, 물론 그자도 사람인지라 이야기 짓는 걸 실패할 때도 있다네. 내가 지난번에 다녀왔을 때 그랬다네. 이야기의 유형은 '호러'였고, 뻐꾸기들이 던져준 단어는 '파혼'과 '선생님'이었다네. 이야기 제목은 "김요한 이야기"였네. 김요한은 선생이었는데, 결혼을 앞두고 자꾸 안 좋은 일이 생겼다네. 그래서 무당집에 찾아갔더니 무당이 파혼을 하라고 했네. 그래서 파혼을 했는데도 자꾸 안 좋은 일이 생겼다네. 이렇게 끝이 났네. 싱거운 이야기지만, 어떻게든 조급한 걸 숨기지 못한 채 어떻게든 이야기를 살려보려고 머리를 굴리는 호태의 모습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네. (요즘에 호러가 너무 많이 뽑혀서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있다고 하네. 그러니 호태를 위해 자네가 매설방에 가서 이야기 유형을 정할 때, 두 번째 패에서는 웬만해선 뻐꾸기불을 흔들지 말게나.)


 

판 무대.jpg

 

 

매설방의 '판'은 전기수의 이야기와 함께 국악 연주, 꼭두각시 놀음, 인형극, 가면극까지 펼쳐진다네. 이렇게 다재다능한 매설방의 이야기꾼들이 가장 잘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풍자라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시대의 상황과 세태를 반영한 재치 넘치는 풍자가 뻐꾸기들에게 깊은 공감과 통쾌함을 선사한다네. 나는 보다가 이러다 잡혀가는 거 아닌가 싶어서 조마조마했네. 근데 관아가 요즘 새책가 검열을 늘렸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매설방이 통 영업을 안 하고 있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걱정이 되는구만.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야기꾼들의 노랫가락처럼 슬픔은 잊고, 기쁨을 읽게 된다네. 그리고 이야기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네. 내가 뒷산 무당집에서 들은 얘기인데, 미래에는 어디에서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누구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하네. 세상 모든 곳이 매설방이고, 세상 모든 사람이 한 권의 책인 셈이네. 나는 이 조선도 언젠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네. 마음껏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세상, 자네도 그립지 아니한가?


그럼 우리 언제 같이 매설방에 가서 제대로 한 판 놀아보는 거 어떤가? 씨구야!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명함 임솔지.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