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조각은 우아하고 기품이 있지만, 청동으로 된 조각은 위압감과 힘이 있다. 로댕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칼레의 시민>은 청동으로 주조된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본 작품은 세계에 11개 주조되었으며, 프랑스 파리 로댕 미술관 정원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이 가장 유명하고 국내에서는 2025년 리움 미술관 소장품전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칼레’는 본래 지역의 이름이다.
프랑스 왕의 왕권 계승을 빌미로 시작된 프랑스와 영국 간의 백년 전쟁 당시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를 점령하기 위한 길목인 항구 도시 ‘칼레’를 포위한다. 하지만 칼레의 시민들은 순순히 영국군에게 그들의 마을을 내주지 않았고, 그들은 저항 끝에 1년 후 항복하게 된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시민들의 항복 후 1년간의 저항에 대해 자발적인 6명의 시민이 목숨을 끊으면 나머지 주민들의 목숨은 살려줄 것을 약속한다. 이때의 6인이 로댕의 ‘칼레의 시민’ 조각의 피사체이다.
자원한 6명의 시민은 당대 높은 신분과 지위를 갖고 있던 인물들로 그들의 용기와 희생정신과 더불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설명하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그들은 귀족의 의무를 지고 공동체에 그들이 필요할 때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이행한 것이다.
칼레의 시민은 이렇듯 여러 방면으로 사회의 본보기가 될만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후 로댕이 의뢰받아 본 조각을 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조각을 실제로 본 많은 시민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일화 속 인물들은 고귀한 희생정신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의 모습이었지만 로댕의 작품 속 6인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혼란스러움, 체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땅바닥을 보고 있거나 팔로 머리를 감싸는 등 기꺼이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죽음을 부정하는 모습에 가깝다.
그 때문에 일화의 명성에 비해 조각은 칼레 시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칼레의 6인에 대한 로댕의 사실적인 묘사는 필자와 대중에겐 새로운 관점을 불어넣었다. 영웅은 ‘탄생하기를 다르게 태어나서 숭고한 뜻과 의지로 운명을 이고 나아가는 자’라기보다는 ‘자신에게 닥친 책무의 두려움을 안고 이행하는 자’라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처럼 ‘선’과 ‘영웅’도 실제로는 아주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 깃들어 있으며 고뇌 속을 행군하는 모두가 사실은 영웅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파리의 로댕 미술관에서 칼레의 시민을 보았을 때 매우 복합적인 인상을 받았다.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죽음으로 향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향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오히려 웅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리움 미술관에서 다시 만난 칼레의 시민은 내부에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감상이 다소 달랐지만, 오히려 실내의 정돈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는 장점도 있었다. 특히 청동은 자연광이 아닌 조명 밑에서 더욱 빛나기도 했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강조되었다.
칼레의 6명의 숭고한 시민들이라는 이야기는 사실 일화일 뿐 어디까지 사실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것이 로댕이 그들을 과하게 영웅화시키지 않고 평범한 인간처럼 묘사한 이유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것 역시 추측된 이야기 일뿐이다.
사실에 주안점을 두고 감상하기보다는 청동으로 주조된 조각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인간의 현실적인 감정과 숭고한 책임 사이의 간극을 좁힌 작품이라는 다른 방향의 시사점을 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인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