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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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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미덕은 압축에 있다. 길지 않은 분량 안에서 한 인물의 삶 전체를 설명하기보다, 삶의 한 단면을 슬쩍 보여주는 것. 『우연한 작별』은 바로 그 단편의 특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앤솔로지다. 김화진, 조우리, 최진영, 허진희, 이꽃님, 이희영. 최근 한국문학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여섯 명의 작가가 ‘작별’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며, 서로 다른 삶의 순간을 펼쳐 보인다.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은 모두 비교적 짧다. 그러나 그 짧음은 결핍이 아니라 하나의 독서 경험으로 작동한다. 독자는 한 인물의 삶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순식간에 누군가의 삶에 잠시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감각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방문은 대개 작별의 순간과 겹친다. 『우연한 작별』이라는 제목은 서사의 주제일 뿐 아니라, 독자가 이 책을 읽는 방식 자체를 설명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전반부에 배치된 작품들은 작별을 비교적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룬다. 김화진의 「우연한 작별」에서 작별은 관계의 종결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변화로 나타난다. 인물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기보다, 더 이상 이전의 자신으로 머물 수 없음을 깨닫는다. 조우리의 「에버 어게인」은 상실 이후의 감정을 넘어, 그 이후에도 지속되는 사회적 시간과 구조를 응시한다. 작별은 개인의 슬픔을 넘어, 삶이 계속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로 확장된다. 최진영의 「휴일」 역시 작별을 선언적인 사건으로 만들지 않는다. 과거는 완전히 정리되지 않지만, 인물은 그 자리를 떠난다. 작별은 단절이 아니라 이동이며, 선택의 문제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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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휴일」 중에서

 

 

전반부의 작품들이 다루는 작별은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감정과 선택에 머무르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작별들이 발생하는 배경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미 사회는 그 안에 스며들어 있다. 「에버 어게인」에서 상실은 결코 사적인 비극으로만 남지 않는다. 위험에 노출된 노동, 그것을 감추는 구조, 그리고 애도의 언어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이 인물의 작별을 규정한다. 「휴일」 역시 사소한 일상의 장면 속에서 이동과 안전, 지역과 성별의 문제가 미묘하게 감각된다. 이 작품들에서 사회는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대신 개인이 느끼는 불편과 주저, 망설임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전반부의 작별들은 아직 ‘문제’로 명명되기 이전의 상태에 가깝다. 개인의 감정으로 인식되지만, 사실은 이미 사회적 조건과 맞닿아 있는 순간들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앤솔로지의 후반부로 갈수록, 작별이 점점 더 명확하게 동시대의 조건과 충돌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허진희의 「너에게 맞는 속도」는 경쟁과 비교가 일상화된 교육 환경을 배경으로, ‘정상’이라는 기준과의 작별을 그린다. 이 작품에서 작별은 실패나 탈락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지 않는 세계의 속도를 거부하는 선택이다. 개인의 문제로 보였던 작별은 이 지점에서 분명한 사회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꽃님의 「에이저」는 기술과 평가 시스템이 인간의 가능성을 재단하는 세계를 그린다. 점수와 데이터가 사람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을 때, 작별은 누군가와의 이별이 아니라 자신을 규정해온 기준 자체와 결별하는 행위가 된다. 이는 AI와 자동화가 일상 깊숙이 들어온 지금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호출한다. 기술은 효율을 약속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의 가치와 관계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희영의 「페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장 노골적으로 현재화한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 비대면과 기술 의존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관계는 연결된 듯 보이지만 동시에 소외된다. 이 작품에서 작별은 명확한 이별이 아니라, 이전의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인식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해가 지고 어둠 속으로 그림자가 사라지는 순간이 가장 조심해야 할 때라고. 외부의 힘이 우리 존재의 가치를 못 박으려 할 때 횃불을 높이 들고 당면한 모순을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고. 그런 말들을 담았습니다.

 

- 허진희(「너에게 맞는 속도」)

 

 

무엇보다 『우연한 작별』을 관통하는 가장 인상적인 흐름은, 각 작품이 작별을 대하는 태도가 점차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야기 속 작별은 단순히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 확장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전반부의 인물들이 작별을 겪은 뒤 그 의미를 해석하고 감정을 정리하려 애쓴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들은 그런 사유의 시간조차 충분히 허락받지 못한 채 작별을 통과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서사의 배열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속도를 반영한다. 세계를 뒤엎은 전염병, 기술의 급격한 진화, 기존 질서의 흔들림 속에서 작별은 더 이상 곱씹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조건이 된다.

 

작별을 해석할 시간과 작별을 통과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어긋나고 있는 지금, 이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매일 어떤 종류의 작별을 겪고 있는지, 또 세상은 그 작별의 속도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이 질문들은 소설을 덮은 뒤에도 남아,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변화와 이별을 충분히 사유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건너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 것이다. 얻게 될 것과 잃게 될 것, 그럼에도 여전할 것들과 영영 변하게 될 것에 대한 아주 본질적인 고민들. 이 뚜렷한 물음표들은, 매일 마주하는 숱한 작별들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소설을 읽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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