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과 실명으로 여러 편의 글을 쓰는 내내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있었다.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최근 1~2년 동안 그 동기가 약해진 걸 느끼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했다.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솔직한 글에서 느낀 고마움을 나 또한 글로 갚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책을 만들고 싶은 이유는 불명확한가? 글이 한 데 묶여 물성을 입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만으로는 실행력을 응집시키기 어려워 몇 년 째 책을 내고 싶다는 말뿐으로 그치는 걸까? 씁쓸하게 자문하는 텀도 길어지는 요즈음, 나만의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드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바로 임승수 작가의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이다.
임승수 작가는 성인이 되고 마르크스 <자본론>을 접한 후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공대생이었던 작가는 과제로 A4 반 장도 채우기 힘들었을 만큼 글쓰기와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 자신의 이상을 발견한 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상의 특징과 이점을 알리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등의 책을 냈다. 정치, 철학 분야 외에도 교양미술서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에세이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등을 집필했다. 임승수 작가는 전업 작가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새 저서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를 출판했다.
책은 총 3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 ‘작가가 된다는 것’에는 작가가 글을 통해 독자와 만날 때 가져야 할 자세, 좋은 책을 쓰기 위한 조건 등을 다룬다. 2장 ‘책이 되는 글쓰기’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기준점과 ‘글쓰기 실전 팁’ 등에 대해 말한다. 3장 ‘책이 세상에 나오려면’은 예비 작가를 위한 출판사 투고 노하우, 출판 계약서에 들어가는 내용 등 출판 과정에서 알아둬야 할 지식을 알차게 전한다.
임승수 작가는 이 책에서 글을 말하듯이 쓰고 있다. 책을 읽는 것인데도 말을 워낙 청산유수로 잘하는 사람이 내 귀에 대고 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1장에는 작가 본인의 경험담이 가장 많이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글의 ‘말하는 듯한’ 특성이 더 강해 1장은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과거 작가는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즈에 대한 책 <차베즈, 미국과 맞짱 뜨다>를 출판한 계기로 베네수엘라에 직접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에서 원래 묵기로 했던 숙소 예약에 문제가 생겨 더 호화로운 숙소에 묵는 예상치 못한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작가가 이 일화 중간중간에 넣는 문장이 재미있었다. ‘난 그저 책 한 권을 썼을 뿐인데…’ 작가의 일화를 읽으며 어쩌면 내가 책을 내고 싶은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호화 호텔에 묵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라 내가 쓴 책으로 내가 예상하지 못 했던 경험을 해 보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보고 싶다는 말이다.
책 출판에서 뻗어나가는 새로운 경험의 전제는, 저자에 의하면 책의 쓸모에 있다. 책의 파급력은 결국 그 책을 읽고 사는 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어떤 서비스, 상품이건 간에 타인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자신의 시간과 바꿔 힘들게 버는 돈이 아닌가. 사람들은 자신에게 뭔가를 줄 수 있는 사람에게로 모인다. 그리고 작가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줄 수 있는지는 여러 층의 수요 가운데 어떤 부분을 공략하는가에 달려 있다.
p.38
내가 가진 지식이나 지혜 중에 남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일까? 그 지식과 지혜가 설령 최고 수준은 아닐지라도, 그걸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쓸모는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정보의 깊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누구에게,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닿느냐이다.
p.39
쓸모는 저절로 생가지 않는다, 설계하고, 다듬고, 조율한 끝에 도달해야 하는 ‘관계의 성취’다.
‘글은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에서 나온다’라는 문장에 큰 공감이 갔다. 확실히 글은 마음이 괴로울 때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 반복의 권태 속에서, 혹은 안정 속에서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잘 자극되지 않는다. 살아내는 삶에서 경험은 하나하나 의미를 가지고, 의미가 곧 글의 재료가 된다. 글을 쓸 때 인큐베이션 효과와 마음방황(mind wandering)이 도움이 된다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글이 풀리지 않을 때 공백의 지면을 하염없이 보는 것보다는 잠깐잠깐 다른 활동을 하고 났을 때 글 진도가 나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뇌에게 생각이 자랄 시간을 주는 것이다. 머릿속에 ‘안건’을 던져두고 샤워나 집안일, 산책 등의 소일거리를 하는 것이 다음 생각으로 이어지기 쉽다.
오랜 공을 들인 글이어도 타인에게 작가의 가치관을 강요하거나 무작정 들이미는 글은 좋은 글이라 하기 힘들다. 수십만 시간을 살아오며 각기 다른 가치관을 형성한 독자들이다. 글 한 편으로 독자의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를 하기 보다는, 독자가 살아온 시간을 존중하며 잠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더 유익하고 현실성이 있다. 저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결국 글쓰기는 사려 깊은 소통이다.
조금 뜬금 없는 얘기일 수 있겠지만 왠지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가 떠올랐다. 세상 이면의 진리를 아는 신비로운 소년 데미안도 자기와 같은 표지를 가진 싱클레어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기꺼이 동류가 되러 스스로 찾아올 때까지 오랜 시간을 들였다. 하물며 각자 다른 표지를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존중 속에서 공명의 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최선일지도.
2장에서 저자는 잘 쓴 글의 기준으로 글 쓴 사람의 목적이 달성되었는가를 꼽는다. 제품 사용 설명서는 올바른 제품 사용법 전달에 그 글의 목적이 있고, 논설문에는 독자를 설득하려는 목적이 있으며, 시는 일상적 문법과 표현을 깨면서 언어 자체에 도전하고 새로운 표현을 빚는 데에 목적이 있다.
p.83
좋은 글을 쓰려면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을 한시도 잊지 않아야 한다. 확실한 목적의식이 글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
글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좋은 글이란 가독성이 좋은 글이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글이 난삽하면 이해가 어렵다. 임승수 작가는 글의 가독성을 배가시키는 몇 가지 요령을 소개한다. 장문보다는 단문을 사용하고, 문장의 주술 호응을 지키며, 수동태 표현을 피하고 되도록 능동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글에서 불필요한 중복과 지시어 남용을 피하고, 글의 호흡을 고려하여 단락 나눠야 한다. 문맥에 맞는 접속사를 활용하면 글이 더 매끄러워진다. 각각의 요령들을 지키면 좋은 이유는 책 본문에 친절하게 나와 있다. 글을 쓰는 동시에 7가지 조건을 모두 상기하며 지키긴 어렵다. 그래서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궁극의 비법을 소개한다. 바로 ‘소리 내어 읽기’다. 글은 말에서 왔기 때문에 말이 잘 되는 글이 좋은 글이다. 소리 내어 읽기는 다른 글쓰기 수업에서도 자주 듣던 조언이다. 소리를 내 읽으면 글의 호흡이 너무 긴 부분, 어색한 표현 등을 바로 잡아낼 수 있다. 실제로도 퇴고 최종 단계에서 이 방법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글에는 목적 전달 기능 외에도 글맛이 살아 있어야 한다. 문학성 강한 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임승수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려면 독자의 오감을 자극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감정은 오감으로 감지되는 외부 자극으로부터 촉발된다. 예쁜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갑자기 튀어나온 큰 벌레를 보면 공포심을 느끼듯이 말이다. 결국 심상을 잘 활용하는 글이 독자에게 더 생생하게 와닿는다.
한편 단행본 분량의 긴 글을 쓸 때는 목차 구상이 필수다. 목차는 작가가 긴 작업 중 길을 잃거나 작업을 중도 포기할 위험을 줄여준다. 원고가 일정 이상 준비되었다면 이제 기획서를 써서 샘플 원고와 함께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낼 때다.
3장은 ‘출판사에 간택 받을 확률을 높이는 투고 방법’, 출판기획서에 흔히 들어가는 항목들과 각 항목별로 어떤 내용을 채워야 하는지, 어떤 점을 어필하면 좋은지 등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3장에서는 출판 과정에서 작가가 알아두면 좋을 정보들을 다룬다. 계약서에 들어가는 내용과 계약 시 주의점, 편집자와 어떤 관계를 구축해 나가면 좋을지 등이다.
출판사는 책의 기획 단계에서 출판 여부를 판가름한다. 출판사는 원고의 잠재력을 보고 기획 의도에 맞게 글을 쉽게 수정해나갈 수 있는 경우를 더 선호한다. 이미 완성된 것은 수정 작업이 크고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임승수 작가가 언급한 여러 예비 작가들의 착각처럼 나도 완성된 원고를 갖고 있는 것이 투고의 기본 준비 상태거나 유리한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래서 경력자의 글을 꼭 찾아 읽어야 한다.
출판사는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사람’보다, ‘해당 주제를 책임지고 다룰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는 말 또한 중요하게 느껴졌다. 원고를 완성하고 출판까지 가는 데에 바로 이런 자세가 필요했다는 것을 직시하고 깊게 새겨본다. 프로 작가도 투고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다고 하니, 작가 지망생 또한 몇 번의 투고 과정에서 거절 당했다고 좌절감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에도 우리는 지원서를 여러 곳에 넣어보지 않는가. 역시 자기 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는 ‘중꺾마’ 정신이 필요하다.
마침내 출판사로부터 같이 책을 만들자는 연락이 온다면 다음 과정은 계약과 협업이다. 양질의 글을 써서 출판사 두 곳 이상에서 연락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임 작가는 단순히 출판사 규모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기획력과 홍보 역량 등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출판사의 출간 목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생각보다 출판사 선택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신중하게 계약서를 작성했다면 편집자와 상호 신뢰를 쌓으며 협업을 해나가야 한다.
나는 글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싶다. 여기에는 독자 뿐만 아니라 책을 만들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분들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 나는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내향형 인간이다. 그러나 글을 쓸 때 느낀 조율의 즐거움을, 글을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확장하여 느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바로 이 지향성이 나로 하여금 계속 책을 만들고 싶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임승수 작가의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를 읽으며 내가 책을 만들고 싶어 한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출판 과정의 실전 정보를 알아가며 작가 지망생이 빠지기 쉬운 몇 가지 착각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현장을 아는 직업인의 글은 이렇게나 유용하다. 예전에 책으로 내고 싶었던 글의 주제는 지금 나와는 얼마간 멀어졌지만 다시 그 감각을 몸에 붙일 수 있다. 새롭게 연재하고 싶은 글감도 있다. 앞으로 나는 글을 통해 세상에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익함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해 봐야 하겠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꾸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