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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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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극 <안산, 황금용>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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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안산의 한 식당이다. 정확히 말하면 안산의 다문화거리에 위치한 타이-차이나-베트남 식당 ‘황금용’의 주방이다. 비좁은 주방에서는 동남아와 티베트에서 온 5명의 요리사가 이리저리 부딪히며 쉴 새없이 음식을 요리하고 있다. 비좁다. 덥다. 바쁘다. 그때 베트남에서 온 새로운 청년 ‘꼬마’가 이가 아프다며 울기 시작한다.


독일의 극작가 롤란트 쉼멤페니히의 원작 <황금용>을 한국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접목해 윤색한 연극 <안산, 황금용>이 서울 씨어터 쿰에서 펼쳐진다. 공연은 연극의 정치적·사회적 비판 능력을 강조하는 포스트 서사극으로, 7개의 파편적인 에피소드를 48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48개의 장이 이리저리 순서 없이 섞여 관객이 집중해 이 서사에 주목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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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용 식당의 주방 안, 여전히 바쁘다. 이가 아프다고 우는 꼬마를 병원에 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황금용 주방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한국 정부에서 불법 체류자로 판단하는 이들이다. 어쩔 수 없다. 이를 뽑아야 한다. 요리사들은 파이프 렌치로 이를 뽑아내기로 결심한다.


이와 동시에 황금용 식당의 이웃 한국인들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할아버지와, 덜컥 아이를 가지게 된 어리고 가난한 연인들, 술에 취한 남자, 장거리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승무원들. 그들의 이야기는 병렬적이지만, 극이 후반부로 달해갈수록 점점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로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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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산, 황금용>에서는 여섯 명의 배우가 17개의 역을 교차하여 연기한다. 황금용의 주방으로부터 그곳을 찾은 손님이나, 이웃 주민, 그리고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까지. 관객은 뜬금없이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는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들은 왜 등장하는 걸까? 베짱이는 정말 베짱이인 걸까?


파이프 렌치로 썩은 앞니를 뽑아낸 꼬마는 멎지 않는 피에 점점 의식이 흐릿해져 간다. 황금용의 주방은 여전히 바쁘다. 덥다. 팔팔 끓는 육수와 기름은 뜨겁다. 피가 흐른다. 베짱이는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개미의 소굴에 들어간다. 개미는 베짱이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받는 거라며, 멋대로 일을 시키기 시작한다. 개미들은 베짱이를 물건 다루듯 ‘사용’하고 ‘구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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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는 사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불법 체류자로 분류되는 미등록 이주민 중에서도 약자의 처지에 놓인 여성 이주민이 처한 성 착취 문제의 피해자가 투영된 인물이다. 마을 사람들은 불법 체류자가 이 동네의 일자리와 사람들의 행복마저 앗아갔다고 욕하고, 베짱이를 ‘구매’하여 그 마음을 달래려고 한다.


꼬마는 점차 흐릿해져 가다가 결국엔 목숨을 잃었다. 요리사들은 슬픔을 마주하면서도, 황금용에 내놓을 요리를 해야 한다. 가게 영업시간이 끝난 밤, 그들은 꼬마를 강에 던져주기로 한다. 베짱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그를 ‘구매’하고 ‘사용’하려던 술에 취한 남자의 손에 잔인한 죽음을 맞는다.


연극은 노동력 부족과 고용 허가제 등을 통한 이주민의 증가,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도시와 국가의 실정과 이주민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치료받지 못해 죽어버린 꼬마도, 악의 손을 잡아야만 했던 베짱이도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궁지에 몰린 이주민들의 얼굴이다. 이웃 주민들인 한국인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 같지 않은 사람은 가차 없이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주 기이하고 화난 얼굴을 그대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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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황금용>이 독일의 원작 <황금용>을 윤색하는 과정을 통해 안산시를 배경으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안산의 반월국가산업단지와 시화국가산업단지 등 이주민들이 근무하고 거주하는 곳이 밀집된 다문화음식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극의 배경지는 안산이지만, 우리가 어디에 있던 우리 주변에 이곳과 비슷한 장소는 많다. 앞으로 더 많아질지언정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연극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고자 신청하며, 행동을 끌어내고자 하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우리가 황금용의 다섯 요리사 중 한 명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자주 가는 식당에서, 삶의 공간에서. 수많은 이주민을 마주칠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우리 앞에 우리가 태어난 곳이 부여한 ‘한국인’이라는 속성이 과연 우리에게 위계(位階)를 부여할 수 있을까? 답을 해야 할 차례다.

 

 

사진 출처 창작집단 상상두목 제공 / © 윤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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