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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유은님, 안녕하세요.

   

서간문으로 처음 인사드리네요. 저는 유은님과 비슷한 시기에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게 된 예은이라고 합니다. 아, 제 필명은 '루루'인데요. 혹시 왕가위의 영화 〈아비정전〉을 보셨나요? 거기서 배우 유가령이 맡았던 인물인 '루루'에서 이 이름을 가져왔답니다. 투명하게 드러나는 솔직한 감정 표현과 마음 가는 대로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모습에 반해버렸기 때문이죠.


저도 글에서만은, 그런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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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인데 갑자기 필명 얘기로 시작해서 당황하셨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꼭 한번은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영화와 전시를 좋아하시는 것 같고, 그런 작품들을 매개로 본인의 분석과 감상을 매끄럽게 제시하는 유은님의 글이 무척 반가웠거든요. 홀로 발견한 공통분모로 인해 순식간에 스며든 내적 친밀감이라고나 할까요.


게다가 처음 접하게 된 유은님의 대표글이 파블로 라라인의 〈마리아〉라니! 저도 올해 스크리너를 통해 컬러와 흑백을 오가는 그의 외롭고도 영화로운 전기를 지켜본 적이 있답니다. 저는 이렇게 한 줄 평을 남겼었어요. "열린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마지막 날갯짓의 아리아"


이렇게 쓰다 보니,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끼는 영화 중 하나인 〈스펜서〉의 리뷰도 함께 공유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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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이후로도 유은님이 쓰신 오피니언과 리뷰 중, 아직 안 봤거나 아껴두고 있는 영화를 제외하곤 모든 글을 읽어봤어요. 물론 600년의 서양 미술사를 기념비적으로 훑은 전시 리뷰도 포함해서요. 그중에서 제가 제일 감명 깊게 읽었던 두 구절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계속해서 읽히던 유은님의 세심함과 더불어 유난히 통찰력이 빛나던 부분이랍니다.

 

[Opinion] 물처럼 밀려오는 시련 따위, 흐름에 몸을 맡기고 야옹 [영화]

고양이의 여정은 결국 우리 삶의 은유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때로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가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떠밀려 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낯선 존재들과 부딪히고, 또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때로는 혼자가 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그러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그 안에서 길을 찾는 것이 우리의 선택일지도 모른다.(...)결국 삶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Opinion] 삶의 시작과 끝은 누구에게나 같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모두 다르니 [영화]

(...)그녀가 남기는 “이 집이 난 정말 좋았어.”라는 고백은 단순한 장소에 대한 애착이 아니다. 그것은 공간이 인간의 삶에 담아내는 감정과 시간의 깊이를 실감하게 하는 한 마디이다. 마가렛의 말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때로는 터전을 떠나려 하고, 새로운 것을 꿈꾼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곳이 우리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가족과의 작은 다툼, 함께 웃었던 식탁 위의 저녁, 평범했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리운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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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소란스러운 세상의 바깥에서 고요하게 지켜보는 것만 같아요. 유은님의 시선이요. 그렇게 악착같이 아등바등하며 살 것 없다고, 당장 이골이 나더라도 되돌아보면 정들어 있을 거라고, 나지막이 얘기해 주는 듯합니다. 삶과 집에 대해서. 가장 가까이에서 머물고 운용하기에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시공간의 의미를 되새김질해 주는 거죠.


덕분에 잃어버렸던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바로 이런 순간 때문에 글과 영화를, 문화와 예술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비록 찰나일지라도 분명히 어떤 흔적을 남기곤 하니까요.


유은님도 동의하시려나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러실 것 같다고 제 멋대로 상상을 해봅니다. 그동안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들로, 수많은 작품들을 거쳐 유의미한 결론에 도달하신 발자취를 회고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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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편지를 닫는 마지막 사진은 가장 최근에 기고하신 글에 등장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이자, '반쪽짜리 진실'이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열심히 포착하던 '양양'으로 골라봤어요. 어쩌면 끊임없이 어떤 것을 써 내려가는 저희의 태도가 이 아이의 마음가짐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살피고자 하는 허기, 닿고자 하는 욕구, 주변에 대해 부정할 수 없는 애정까지. 물론, 여전히 막연한 제 짐작이지만요.

 

어느새 올 한 해도 다 지나가는 중입니다. 유은님에게 2025년은 어떻게 기억될 것 같으세요? 12월의 끝자락을 붙잡고, 안전하게 얘기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와 또 다른 누군가의 온기 어린 목소리를 만난 것 같아, 저는 나쁘지 않게 추억할 것 같습니다.


부디 계속해서 글을 써주시길 바라요. 또 유은님의 앞길에 평안이 깃들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P.S. 아마 이 글까지도 읽고 저에게 서간문을 써주실 수도 있겠죠? 미리 감사드립니다, 현승님. 현승님에게도 항상 평안이 함께하기를!

 

 

언젠가 또다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며,

예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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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을 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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