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에 나오는 심청의 아버지 심 봉사(심학규)는 우리 모두가 잘 알듯 눈이 먼 장님이다. 일반적으로는 그가 서른 살 전후에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었다고 보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냥 ‘갑자기’라니, 대체 이유가 뭘까? 그냥 문학적 허용일까? 아니면 다른 많은 고전소설 주인공들처럼 신적인 존재를 노하게 해서 천벌을 받았다거나?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심청전>에 그런 내용은 없다. 그래서 난 생각해 봤다.
심 봉사는 양반이다. 그 말은 즉, 온종일 책을 들여다보며 글공부하는 게 당시 그의 일과이자 의무였다. 하지만 몰락 양반이었던 그는 집안이 너무나 가난했고, 보통 양반이라면 평범하게 사용했을 등잔불을 기름값이 없어 극히 희미하게만 켜거나 아예 달빛에 의존했을 것이다. 어쩌면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말답게 반딧불이를 잡아 불을 비추었을 수도 있고. 먹을 것도 부족해 영양실조로 기초 체력과 시신경이 약해진 상태에서 매일 어두운 곳에서 글을 읽으니, 그의 안압이 계속 상승해 녹내장에 걸렸고, 그게 악화해 끝내 실명에 이르고 만 것이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혹시나 정확한 근거자료 내놓으라는 무서운 연락은 없길 바란다. 어디까지나 재미로 보는 이야기다(사실 백내장이라고 보는 견해가 더 많다). 하지만 재미없는 이야기 하나도 같이 하겠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요인들은 놀랍게도 지금의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현대인다운 불리한 특징까지 추가된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하고 있을지 모르는…… 누워서 읽기. 최소한 심 봉사는 앉아서 읽기라도 했다.
‘녹내장’은 간단히 말하자면 안압이 상승해 시신경이 죽는 병이다. 시각 정보를 전달하는 시신경이 죽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맞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녹내장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실명이다. 더욱 무서운 점은 시신경이라는 부위는 치아처럼 임플란트하거나 장기처럼 이식받아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도 아니라는 것이다. 높아진 안압이 약물로 잡히지 않는 일부 심한 경우는 처치 과정에서 수술을 병행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이미 결손된 시야를 회복해 주지는 않는다. 참고로 치료 과정이 아니라 처치 과정이라고 쓴 이유는 녹내장에는 치료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한번 발병하면 끝인 이 질환은 악화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런 건강 정보성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당장 내 일이 아니면 쓱쓱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도 안다. 당장은 건강하니까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진다는 거. 게다가 시야 결손이라니. 지금도 이렇게 멀쩡히 이 글을 읽고 있는데?
올 3월에 녹내장 진단을 받기 전까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전까진 백내장 정도나 들어봤지, 녹내장이란 건 뭔지도 잘 몰랐다.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 전혀 없었고. 안압? 정상 범위가 21mmHg인데 왼쪽 20, 오른쪽 19로 양측 다 정상이었다. 그냥 라식을 하려고 안과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갑자기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조용히 말했다. ‘저기, 녹내장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교실에서 선생님이 따로 불러내는 것보다 병원에서 의료인이 따로 불러내는 게 백배 천배 더 무섭다는 건 알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는 라식 검사를 하다 말고 녹내장 전문 검사를 했고, 오른쪽은 녹내장, 왼쪽은 고위험군이라는 의사 진단을 받았다(말이 고위험군이지 양쪽 눈의 안압이 급격히 차이 나는 경우는 없으니 보통 한쪽이 발병하면 나머지도 거의 무조건 같이 발병한다고 하셨다).
(사진 출처 - amc.seoul)
예전에는 ‘녹내장’이라고 하면 안압이 정상 범주 이상으로 상승해 시신경이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경우를 말했는데, 요즘은 무섭게도 안압이 정상인데도 녹내장이 발병하는 ‘정상 안압 녹내장’이 흔하게 발견된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경우였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남들보다 시신경이 약한 경우엔 버틸 수 있는 안압 수치도 낮아서, 19 정도면 보통은 정상 수치가 맞는데도 이런 사람들에겐 충분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요 증상이 시야 결손이라고는 했지만, 단번에 문제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외곽부터 천천히 좁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결손이 진행 중이어도 일반인이 스스로 징후를 알아차리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심한 통증과 함께 갑작스럽게 발병해 모를 수 없는 급성 폐쇄각 녹내장도 있긴 하지만, 녹내장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초기 발견이 어려운 원발성 개방각 녹내장이거나 정상 안압 녹내장이다(서울아산병원 질환 백과 참조).
그렇게 아무런 이상을 못 느끼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퍼뜩 깨닫는 것이다. ‘어라, 근데 내 시야가 왜 이렇게 좁지?’ 하지만 그걸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됐다면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크다.
정상 범위의 시야
녹내장으로 인해 손상된 시야
(사진 출처 - ko.wikipedia)
앞에서 말했듯 이미 발병했다면 치료할 방법은 없고, 다만 녹내장은 안압이 높은 게 전제되기 때문에 처치는 기본적으로 이 안압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각자에게 맞는 약이 있겠지만, 나는 ‘도티몰’이라는 의약품을 처방받아 매일 쓰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이렇게 약물을 쓰지만, 만약 효과가 없다면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나는 다행히 약이 잘 받아 지금은 9~11 정도의 낮은 안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심 봉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매일 어두운 곳에서 책을 들여다보던 심 봉사. 그리고 누워서 폰을 보는 우리. 이 두 가지가 현대인이 가장 많이 하는 녹내장 유발 위험 행위다. 불 끄고 잠자리에 누워서 자기 전에 아늑하게 인터넷 서핑하는 그 재미를 나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재미는 재미고, 위험은 위험이다. 웬만하면 하지 말자. 심지어 그렇게 열심히 놀고 왠지 다음날 눈이 침침한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더더욱.
주위에 이런 얘기를 하면 꼭 ‘그게 반드시 녹내장을 일으킨다는 보장은 없던데요?’라고 청개구리처럼 반문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없다. 이건 1+1=2 같은 공식이 아니니까. 하루에 술을 열 병씩 마시고 담배를 열 갑씩 매일 펴도 무병장수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사람들을 일반적인 기준으로 여기고 자신에게도 적용하지는 않는다. 건강은 확률싸움이다. 확률을 내리거나 지금 그대로 유지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편이 무조건 이득이다. 원래 갖고 있던 녹내장 발병 확률이 20%인데 그걸 굳이 엉망으로 생활해서 60%로 올릴 이유가 있나. 인생 단위의 홀짝 게임을 즐기는 타입이라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만악의 근원인 스트레스나 답도 없는 유전 얘기는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생활 습관 정도는 얼마든지 본인의 의지로 고쳐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불 켜고 앉기. 얼마나 간단한가. 이 외에도 안압을 올릴 만한 행위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여기부턴 믿거나 말거나지만, 내원하면서 듣기로는 수족냉증이 있어 신경의 끝까지 피가 잘 돌지 않는 사람이 좀 더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면 도움이 된다고도 하셨고(무산소는 안압이 올라갈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새해만 되면 일명 ‘갓생’을 살겠다는 다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그중 대표적인 게 독서다. 하지만 진짜 갓생을 살고 싶으면, 먼저 정밀 검진을 받아 보고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간단한 운동을 곁들인 뒤, 밝은 곳에서 바른 자세로 책을 읽자. 그렇게만 한다면 녹내장은 물론이고 어떤 위험도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