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itish Museum
낯선 도시의 여행자가 가장 편안해질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아침을 먹으러 들어간 베를린의 스타벅스에서 들려오는 K팝 한 소절, 크레마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강 작가의 책 한 페이지, 아비뇽에서 먹은 든든한 한식 한 끼. 감각을 바짝 세우고 있어야 하는 먼 땅에서 마주하는 익숙한 것들은 괜스레 반가운 ‘쉴 곳’이 된다. 특히 당신이 내향적인 미술 애호가라면, 이국의 뮤지엄이 가장 마음 편한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미술관은 곳곳에 그저 존재하는 익숙한 이름을 찾아내기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 달 간의 유럽여행 동안 우리로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인 기차로 국경을 넘으며 유수의 뮤지엄을 경험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세 달 전, 9월 15일 방문한 런던의 영국 박물관 (The British Museum)도 이 중 하나였다.
한때 대영 (Great Britain) 박물관이라고 불렸던 이 뮤지엄은 그 옛 영광의 이름만큼이나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쌀쌀하고 드물게 화창한 가을 날씨의 월요일 오후에 방문했음에도 박물관 안은 수많은 여행객들로 북적이었다. 이런 곳에서 으레 느끼는 감각은 압도됨에서 비롯된 감탄과 언제 여기를 다 둘러보지 싶은 막막함이다. 사흘을 꼬박 보아도 다 보지 못할 것 같은 이처럼 큰 박물관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영국이 제국 시절부터 전세계 곳곳에서 모아온 유물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다면, 조금 생경하면서도 반가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이곳의 상설 한국관을 권하고 싶다.
강익중, <삼라만상>(2013)
국립중앙박물관과 국제교류재단의 협업과 지원으로 2000년에 개관한 영국 박물관의 상설/영구 한국관(67호실)은 유럽 내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단독 국가로서의 전시실이다. 첫 번째도 마찬가지로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이니, 우리나라가 90년대부터 특히 영국과 활발한 문화 교류를 진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처음으로 방문한 한국실은 중국 도자 컬렉션과 연결된 작은 전시관이었다. “한국실”이라는 한글이 상단에 적힌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다름아닌 강익중 작가의 <삼라만상>(2013)이었다. 푸른 입구를 가진 달덩이를 하얀 꽃잎들이 가득 뒤덮은 채 흩날리고 있었다. 유리문을 지나 들어간 한국실은 비교적 고요하고 한적했다. 아주 익숙한 것들이 익숙한 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부에서 또 한 번 조선시대의 백자 대호, 즉 우리의 달 항아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날 ‘달 항아리’는 명실상부 한국의 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당당히 한국관에 자리한 백자 대호야 말로 그 방증이며, 인터넷 뉴스 속 ‘억’ 소리나는 진품 항아리의 금액과 유수한 달 항아리 예찬의 글, 그리고 다양한 인테리어 웹사이트에서 광고하는 오브제와 프린팅 액자들만 보아도 그렇다. 그렇다면 달 항아리는 언제부터 한국의 미를 상징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아니 전 세계는 ‘왜’ 이토록 달 항아리에 열광하는 것일까? 예술은 다양하게 얽히고 설킨 맥락 속에 존재하기에, 절대적인 이유를 찾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달 항아리로부터 관념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제국의 유물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우리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영국 박물관 한국실에 있었던 조선시대 백자 대호의 전시 캡션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은 그릇의 유백색과 구형 모양은 그것들을 달 항아리 (Moon Jar)라고 부르게 만들었다. 이 정도의 규모와 품질의 예는 거의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한 항아리는 조선 왕조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였던 유교의 원칙인 금욕, 검소함, 순결의 구체화로 여겨진다.”
물론 실제로 조선 왕조의 초기(특히 세종 시기)부터 왕실 내의 백자의 수요가 증가하여 많이 쓰였다. 하지만 이 짧은 캡션이 달 항아리의 다면적 매력을 설명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미술(Fine art)품과 공예/기술품을 성한 것과 속된 것이라 구분 지을 수 없듯이, 달 항아리에 우리 고유의 미의식이 ‘반영’ 되었다 해도 달 항아리를 그저 유교의 정신을 담은 전통성 그 자체이자 숭고한 정신적 대상이라고 단정지어 바라보는 것은 왜곡이다. 따라서 순수성, 소박미, (기술적) 어리숙함, 정신성과 같은 단 몇 가지의 미학적 개념에 집중하여 ‘한국의 미’를 설명하는 것은 아쉬웠다. 특히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질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우리 혹은 전 세계가 여전히 근대의 시선으로 우리 미술을 바라보고 있진 않은가, 걱정되는 것이다.
Bernard Leach
물론 영국 미술관의 한국실 개관은 세계에 널리 백자 달 항아리를 큰 계기로서, 한류 열풍과 맞물려 1990년대 ~ 2000년대 우리 나라의 ‘문화 외교’ 정책의 큰 성과이다. 1990년대에 문화 외교는 한국의 주요 대외 정책의 일환이었는데, 특히 세계 곳곳의 명망 있는 뮤지엄에 상설 한국관을 개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1990년대의 영국 역시 문화 정책에 무게 추를 올리며, 영국 박물관의 한국실 개관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때 아시아부를 담당했던 제인 포탈은 선대 영국의 도예가이자 조선의 백자를 사랑했던 버나드 리치가 제시한대로, 달 항아리를 ‘한국 미’의 전형으로서 전시의 전면에 내세웠다. (김수미, 2021) 이는 오늘날 달 항아리에 대한 세계적 인식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 외교의 성공은 우리 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이끄는 마중물이 되었지만, 동시에 오늘날까지 여전히 위 캡션처럼 지배적으로 남아있는 인식을 넘어선 우리만의 해석을 제시해야 한다는 고유한 숙제를 부여한 셈이다. 우리 나라와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도와 보편 지식의 정도는 2010년대와도 확연히 달라졌다. 고정된 해석에서 벗어나 근대의 장막을 걷어낸 달 항아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고민해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달 항아리의 여전한 인기와 세계적 사랑은 그저 문화외교에 의해서 이루어진 산물일까? 한편 알랭 드 보통은 저서 <영혼의 미술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도덕적 메세지, 다시 말해 보다 나은 자아로 거듭나라는 메세지는 애초에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듯 보이는 예술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백자 달항아리가 있다. 이 항아리는 쓸모 있는 도구였다는 점 외에도, 겸손의 미덕에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항아리는 표면에 작은 흠들을 남겨둔 채로 불완전한 유약을 머금어 변형된 색을 가득 품고, 이상적인 타원형에서 벗어난 윤곽을 지님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다. (…) 항아리는 궁색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에 만족할 뿐이다. (…) 예술은 이미 충분하다고 섣불리 추정해서는 안되는 균형과 선함을 시의적절하게, 본능적으로 깨닫게 해줌으로써 우리의 시간을, 삶을 구원한다.”
반성의 감정, 겸손의 미덕과 같은 인간 보편의 가치를 떠오르게 하는 대상이자 주체로서 달 항아리를 내세운 그의 해석은 아주 인상적이다. 물론 이것 역시 달 항아리에 대한 절대적인 답이 아닌 하나의 시선일 뿐이다. 다만 그의 말은 문화 외교가 이루어 낸 시류를 부정할 수 없지만, 누구나 달 항아리 특유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감응할 수 있을 만큼, 달 항아리의 아름다움은 진정으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호랑이와 까치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우리의 미술은 정말로 그렇다. 성스러움과 속됨, 소박함과 화려함, 사대부와 백성 등 이분법의 구조 아래 놓일 수 없다. 가장 대표적으로 민화가 있다. 민화 역시 달 항아리처럼, 오늘날 열풍이 부는 한국 미술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 역시 새롭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화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그림으로서, 눈과 손이 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걸려 그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상기하는 전통적인 수단이다 주체이다. (조자용, 1996) 이는 근대 일본의 미술사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제시한 ‘소탈하고 해학적인 민중의 그림’ 개념보다 더 넓은 차원을 이야기한다.
<달항아리, 색을 입다>(2025. 11.19 - 11. 30)
이처럼 달 항아리나 민화 등 우리 미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모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단면(형태나 기교)이 아니라 그 본질을 반영한 재해석이 시도될 때 살아나고 확장된다. 실제로 11월 22일 방문한 <달항아리 색을 입다 (11.19 – 11.30> 전시에서 이러한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정재연, <첫, 유연함>(2025)
정재연 작가의 <첫, 유연함>은 어린 시절의 꿈을 상징하는 보편적 매개로서 발레 토슈즈와 만개한 꽃, 옅은 푸른 빛으로 묘사된 달 항아리 – 민화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름인 ‘유연’을 따서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유연함이라는 단어는 입에서 물 흐르듯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그 말처럼, 우리 미학에서 말하는 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중’의 상태, 즉 물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듯 와닿았다. 작가는 ‘민화’, 혹은 ‘달 항아리’라는 대주제와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연한 예술을 창조해냈다.
사실 ‘민화는 이래야 한다’ 거나, ‘달항아리는 이래야 한다’는 완전한 공식은 없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과 관념에 대한 기초를 다지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민화란 무엇이며 달항아리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예술 갈래 속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할 것인가? 혹은 근대와 현대에 들어서 가려진 이 작품들의 본질을 다시 조립하고 오래된 오 개념을 해체하는 작업들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노력이다. 영국 박물관의 달 항아리를 넘어 정재연 작가의 <첫, 유연함>(2025)에서 이러한 작은 고찰의 실마리에 다다랐다. 오늘날 자신만의 방식대로 과거의 예술 갈래를 활용한 창작 활동을 하는 수많은 우리 작가들의 유연함을 수용하는 것도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미래를 가꾸어 나가는 하나의 방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