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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디즈니에서 한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었다. 차별과 편견이라는 심층적인 주제를 친근한 동물 캐릭터로 접근한 이 영화는 로튼 토마토 98%라는 평점을 받으며 향후 디즈니를 대표하는 새로운 작품으로 극 부상한다.
Try Everything, 모든 것을 시도해 보라는 뜻의 OST는 작품 속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다양한 동물들이 종에 구애받지 않고 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계인 주토피아는 동물들의 유토피아이자, 먹이사슬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포식자와 피식자 모두가 꿈을 꾸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많은 동물들의 이상향인 주토피아는 특히나 시골 촌구석 출신인 주디가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 왔던 곳이기도 하다. 초식 동물 중에서도 몸집이 작아 언제나 피식자 위치에 놓여 있던 토끼로서 최초의 경찰이 된 주디는 주토피아를 꿈의 종착지로 삼는다. 상상만 해왔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 그러나 몸으로 직접 부딪쳐 본 세계는 마냥 녹록지만은 않다.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차 단속이라는 시시콜콜한 일을 맡은 주디는 업무 도중 우연히 발견한 좀도둑을 쫓게 되고, 주토피아 속 암암리에 존재해 왔던 차별과 역차별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게 된다.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한 번쯤 고심해 보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에 드는 영화가 있다.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머릿속을 지나쳐 가는 영화 제목 한두 개 정도는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매번 선택지에 자리하는 몇몇 영화가 정해져 있었는데, 그중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후보군이 있었으니, 바로 주토피아였다.
영화를 보다 보면 숨이 턱 하고 막힐 정도로 뇌리에 박혀오는 장면들이 있지 않은가. 머리가 반응하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가슴에 꽂혀 버리는 순간들 말이다. 그렇게 반해버리고 나면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작품의 줄거리보다도 그 순간을 구성하는 찰나의 장면들이 고파지곤 했다. 스크린으로 보이는 그 잠깐의 시간을 위해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이고 재관람을 하다 보면 처음에 몰랐던 디테일을 눈치채게 되고, 캐릭터의 섬세한 감정선에 탑승하며 주인공과 합일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토피아 속 나를 사로 잡은 장면은 다름 아닌 주토피아의 실체가 처음으로 비춰지는 장면이었다. 주디가 탄 열차가 길고 긴 선로를 지나 마침내 주토피아의 전경이 펼쳐지면, 주디의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Shakira의 Try Everything이 영화관을 가득 메웠고, 형형색색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도시에 입혀졌다. 그 장면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을 반짝이며 입을 벌린 채 감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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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 속 일원으로 존재하고 싶어 몇 번이고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봤다. 그렇게 한 해, 한 해를 거치며 언젠가 나도 주디와 같은 나이가 된다면, 그리고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그녀와 같은 어른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목표한 바에 거침없이 나아가며, 어떤 핍박과 편견에도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쉽게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앞으로 다가올 나날들이 너무나 밝게만 느껴지는 탓에, 세상의 그림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말의 어려움 없이도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일종의 순리처럼 말이다. 아직 제대로 된 세상에 나가보지 못한 중학생의 시선에서 정의란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고, 현실에서의 타협과 포기는 멀게만 느껴졌으니까. 한 번 다짐한 마음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깨닫지 못했을 적의 이야기이다.
주토피아 1편의 OST 가사에서 반복해서 들리듯이, 모든 것을 시도해 보라는 “Try Everything”은 사실 반복되는 실패로부터 시작된다.
I won't give up no I won't give in
Til I reach the end and then I'll start again
No I won't leave I wanna try everything
I wanna try even though I could fail
Try everything
Try everything
Try everything
- Shakira의 [Try Everything] 중
주토피아 1에서 등장하는 주디의 나이는 25살이다. 무수한 노력 끝에 원하던 직업을 얻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자리 잡은 일명 “사회 초년생” 주디는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인 편견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들과 지내왔던 토끼 마을(Bunnyburrow)에서는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을 쾌쾌하고 좁은 방만이 그녀를 반기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향한 청사진을 그려나간다. 그러던 중 주토피아 시내를 중심으로 사기를 일삼던 닉을 만나 파트너로서 동반하게 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한국을 기준으로 11월 26일에 개봉한 주토피아 2는 1편의 미제 사건에서 중요한 해결사 역할을 맡은 닉 와일드가 본격적인 경찰이 된 후, 주디와 파트너로 지낸 지 일주일이 흐른 시점을 담는다. 주토피아 1에서 2로 넘어가는 동안, 영화 속 시간은 고작 7일이 흐른 것이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주토피아 2가 개봉한 지금, 나는 주디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현재 나는 주디와 마찬가지로 사회 초년생의 시기를 겪는 중이다. 운이 좋게 직장인이 되었고, 곧이어 삶을 자력으로 감당해 낼 수 있다는 안도감도 들었지만, 하루를 잠식하는 감정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무력감이었다. 모두가 한 번쯤 겪는 취업 준비 생활을 지나오는 동안 서서히 체감하게 된 것은 사회가 원하는 모양대로 나의 모난 부분을 깎아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모서리가 개성인지도, 흠인지도 알기도 전에 갈아나가다 보면 비로소 사회가 원하는 둥근 형태가 되어갔다. 남들과 최대한 비슷한 모습으로, 최대한 튀지 않고 파묻히도록. 거울을 바라보는 나의 표정이 더 이상 생기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라는 한마디로 현 상황을 무마하곤 했다. 그런 생활을 근근이 이어 나가던 중, 9년 만에 마주친 주디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주토피아 2에서 주디와 닉은 새로운 파트너 관계 속 경찰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적극적으로 수사를 주도한다. 그러나 의욕만 앞선 신입 2명은 크고 작은 사고를 저지르며 윗선의 눈총을 받고, 여기서 나아가 마약 단속이라는 기존의 목적에서 수사 규모를 확장해 나간다. 파충류가 존재하지 않는 주토피아 속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동안, 주디는 전편과 같은 용감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니, 어쩌면 이전보다 더 대담해졌을지도 모른다. 사건에 집요하게 다가서는 것은 물론이고,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가능성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그녀는 열정의 손길이 닿는 곳이라면 항상 발 빠르게 뛰어나간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내가 세운 목표를 향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만큼의 각오가 되어 있는 주디는 9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16살의 내가 기억했던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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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쯤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주토피아 2편의 전반적인 줄거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수 없다. 전편의 세계관을 그대로 확장해 나간 이번 영화에서 내가 느끼기에 가장 달라진 것은 캐릭터의 입체감이다. 앞서 말했듯이 주디는 포기를 모르는 용감한 토끼이다. 소동물 최초로 경찰관이 되기부터, 벨웨더 부시장을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내기까지 낙관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끝까지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은 때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한다.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법한 상황에 망설이지도 않고 뛰어드는 일은 부지기수,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덤벼들어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한다. 자기 말이 옳다고 고집하거나, 상대방의 말에 쉽사리 납득하지 않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이러한 모습은 은연중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주디의 속마음으로부터 기인한다. 소동물이기 때문에, 멍청한 토끼라고 놀림당하여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토끼 경찰은 없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편견에 주디는 정면으로 맞선다.
이처럼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주인공의 행동은 정의로운 캐릭터가 가지게 되는 필연적인 단점이다. 빛이 존재하기에 그림자가 생겨나는 것처럼 말이다. 물불 가리지 않고 타인의 일에 무턱대고 뛰어드는 성격은 캐릭터를 충동적으로 비추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미를 부여하여 관객이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스스로를 입증해 내고자 하는 포부와 타인을 향한 선천적인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그녀는 다른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한 부분에 도달하며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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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닉은 매사에 농담 따먹기를 빼놓지 못한다. 주디를 만나기 전까지 사기로 생계를 유지했던 그는 뒷골목에서 생활했던 시간을 통해 다른 동물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혔다. 마주치는 동물마다 넉살 좋게 다가가고, 이곳저곳에 자리 잡은 지인들로 고비를 넘겨 나가는 모습은 닉을 유머러스한 동물로 비추지만, 사실 그의 외면은 어릴 적 유년기의 트라우마로부터 형성된 자기방어적인 모습이다.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서투른 닉은 결국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로 주디를 상처입히고, 이를 계기로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른 이후, 그들은 숨겨놓았던 진심을 토로한다. 이때 닉은 주디를 만난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그리고 본인에게 주디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에 대한 진심을 내비치며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2시간 남짓한 영화가 끝이 날 때쯤, 엔딩 크레딧의 가장 마지막에는 주토피아 3을 암시하는 쿠키영상이 재생된다. 1편에서 포유류의 세계인 주토피아를, 2편에서 파충류 세계를 다뤘던 주토피아는 3편에서 조류의 세계로 다가온다. 주토피아 3이 개봉할 때쯤이면 아마 주디보다 훨씬 나이가 많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시리즈가 거듭되는 동안, 주토피아 속 시간은 멈추어 있을지 몰라도, 현실을 유한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영화를 관람하며 어떤 감상을 하게 될까. 나의 10대와 20대를 차지한 주토피아가 다음엔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이만 글을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