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를 나타내는 키워드 중 하나는 "정신질환"이다. 최근에는 정신병원에 방문하여 상담받거나 약물을 처방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뿌리 깊게 박혀있다. 특히, 다양한 매체에서 정신병동을 부정적으로 그려왔다. 나 역시 '정신병동'을 생각하면 막연한 두려움이 먼저 떠올랐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많은 공포영화들이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가해자로 묘사하며 그들을 위험하고 난폭한 존재로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신병동에서의 시간과 저자가 겪은 고통을 보여준다. 그러나 책에서는 정신질환을 겪는 이들을 대상화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애쓰며 상처에서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또한 자전적 기록과 함께 ‘광기’에 대해 문학적으로 탐구한다.
수잰 스캔런의 『의미들: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은 저자가 1990년대 뉴욕에서 대학생 시절 겪은 깊은 우울과 자살 시도, 그리고 약 3년간 정신병동에서 생활한 경험을 담은 회고록이자 문학적 에세이이다. 출판사의 소개말처럼,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여러 겹의 주제들이 겹쳐있는 콜라주 같다고 느꼈다. 다양한 문학과 그에 대한 인용이 등장한 문학비평서이기도 하며, 장기 입원 환자로서 정신 의료 체계 문제를 고발함과 동시에 고통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개인의 회고록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제들이 모여서 개인적 고통과 여성으로서 겪는 사회적 낙인, 그리고 문학을 통한 연대와 치유의 힘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책의 개인적 서사로 돌아가면, 저자의 우울증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무관심한 새어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스캔런은 외로움 속에서 성장했다. 저자는 상실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극심한 우울을 겪으며 남성 친구와 함께 자살을 약속하지만, 자신의 순간적인 망설임으로 친구와의 운명이 엇갈린다. 그 충격과 절망으로 인해 스스로 자살을 시도하고 뉴욕주립정신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된다.
나는 책이란 의사소통에 관한 것임을 몰랐다. 혹시 알았다 해도, 이때 이전까지는 그게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 권의 책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누군가에게 말하는 한 방식이다. 이 책은 나로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아감의 다른 방식들을.
- 184쪽
병원에서의 생활은 다양한 치료, 약물, 그리고 동료 환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찾으려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과 같은 ‘미친 여자들’ - 실비아 플라스, 버지니아 울프, 재닛 프레임 등 여성 작가들의 삶과 문학에서 위로와 연대를 느끼고 자신의 고통을 말로 표현하거나 해석할 실마리를 발견한다. 다양한 책과 연구를 인용하고 있기에 책을 읽는 내내 또 다른 책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누런 벽지』나 『연인』처럼 내가 알고 있는 작품이 등장할 때는 나의 감상과 작가의 생각을 비교할 수 있었고, 『공기 없는 공간들』처럼 낯선 작품이 나오면 호기심이 생겼다. 생존을 위해 문학을 뜯어보고 삼켜내는 저자의 노력은 고통조차 의미로 바꾸려는 인간의 본능처럼 다가왔다.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저자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과 고통을 재해석해 나가며 자신의 경험이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미친 여자들의 목소리, 즉 사회가 쉽게 단순화해 버리는 여성 정신질환의 진짜 내면과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시절, 예술은 하나의 빛이었다. 나에게 통곡과 그리움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경계선 위에서 혹은 경계선 바로 너머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256쪽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로 느끼는 세상은 뒤죽박죽이기에 책의 내용은 시간이 뒤섞여 병원 생활과 과거, 어머니와의 추억, 환자와의 관계, 회복 후의 삶이 교차하며 그려진다. 그래서 처음 줄거리를 이해할 때는 다소 헷갈렸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 방식은 작가가 솔직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기억을 날 것 그대로 복원하여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머리로 내용을 이해하기보다는 마음으로 작가가 느끼는 감정선에 집중하며 따라갔다.
『의미들: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을 읽으면서 비평이 무의미한 작품 같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고백이기 때문이다. 대신, 나 또한 글쓰기와 문학을 통해 치유받았던 경험을 떠올려본다. 문학은 다른 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이자, 흐릿했던 나의 감정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 현미경 같은 장치이다. ‘우울증’이라는 짧고 간단한 진단명 뒤에는 ‘형태 없는 슬픔’과 ‘슬픔의 소용돌이’가 있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는 미처 자세하게 볼 수 없는, 또는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 문학은 우리 마음의 가장 어두운 골짜기마저 언어로 비춰주는 빛이라는 것을 이 책이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