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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우연한 풍경 [여행]

자연 속에서 마주한 것들

by 오정원 에디터
2025.11.03 07:26

 

 

지상으로 내리쬐어 하얗게 번져가는 햇살, 그 빛을 머금고 일렁이는 청색. 일상적이지만 동시에 바쁜 삶 속에서 주의 깊게 듣지 못했던, 그리하여 비일상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잔잔한 소음. 나는 이런 경치를, 찰나를, 시간을 사랑한다.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열심히 곳곳을 여행하겠노라 결심했던 나는 그때부터 가급적 여러 공간으로 향해 보려 노력했다. 유명한 관광지는 물론, 이른바 맛집이라 불리는 음식점도 가보았으며, 거리를 거닐며 소소한 쇼핑도 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몇 번이고 붙잡은 것은, 여정이라는 긴 꿈을 그리워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연한 풍경’이었다.


경이로움은 늘 불현듯 찾아온다. 까치발이라도 디딘 듯이 조용히, 동시에 강렬히. 어떠한 기대도, 예상도 없던 장소에서 목도한 경이로움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다. 늘 그곳에 있었던 이들과 이방인과도 같은 내가 포개어져 이어진 우연. 그것이 그토록 좋았다.

 

 

 

전라북도 전주 - 전주천


 

여름에는 전주에 갔다. 더위에 지쳐가는 몸을 추스르며 카페에서 얼음을 띄운 차 한 잔을 마신 뒤, 어느 드라마에 나왔다는 터널을 찾아 걸었다. 지도를 빤히 쳐다보며 걷다 보니 제법 그럴싸한 장소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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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녹음, 마치 이곳에만 필터가 덧입혀진 듯했다. 어느 영화의 스틸컷 속에서 언젠가 본 듯한 모습. 우거진 나무의 형상을 어렴풋이 비추고 있었고, 나무는 기꺼이 그곳에 담겼다. 한참을 제자리에 서서 적막한 천과 다리 밑을 바라본 것 같다.


아직도 그곳이 정확히 무어라 명명되는지는 모른다. 아는 정보는 단지 전주천의 어느 일대라는 것. 그럼에도 좋았다. 이름도, 연고도, 그 무엇도 모르는 경치에 이토록 내 마음을 내어줄 수 있나. 자연과 조형물이 굳이 한 단어로 정의될 필요는 없다고, 대상을 사랑하는 것에 그런 건 그저 부수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한여름.

 

 

 

영국 런던 - 세인트 제임스 파크


 

올해 8월, 오래도록 꿈꿔왔던 유럽 한 달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런던이었으니, 날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런던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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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갔다. 특별한 기대도, 떨림도 없이 그저 쉬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을 품고 말이다. 공원의 초입에 다다를 때쯤 내가 느낀 것은 ‘벅참’이었다. 잔디를 마구 뛰어다니는 다람쥐와 저 멀리서 보이는 펠리컨 무리, 그리고 각종 조류. 여러 생명이 마구 박동하는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들뜨기 시작했다.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잎 사이로 투영되는 햇빛을 마시며 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주변에는 자유롭게 누워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고, 새들은 인간에게 다가오지도, 인간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간다.

 

어떠한 관여와 속박도 없이 그저 오늘을 보내는 이들의 사이에서 느꼈던 해방감. 모든 생명체가 공생하는 그곳이야말로 내가 바라왔던 공간이지 않은가.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이토록 평화롭게, 또 잔잔하게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탈리아 - 소렌토에서 포지타노로 향하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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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남부에는 소렌토라는 자그마한 지역이 자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차를 타면 1시간 내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남부 지역이 있는데, 바로 포지타노이다.


사담을 잠시 늘어놓아 보자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해당 작품 속에 담긴 이탈리아의 여름을 사랑한다. 그 영화를 처음 보았던 날, 여름 이탈리아의 풍경을 꼭 직접 보고야 말겠노라고 다짐했다. 나는 이런 환상을 품고 이탈리아에 갔다.


소렌토에서 보내는 이튿날, 바다 수영을 하고 싶은 충동에 버스를 타고 포지타노의 어느 바다로 떠났다. 포지타노로 향하는 길은 심히 구불구불하며, 평범한 도로가 아닌 거대한 절벽을 주행해야 하기에 꽤 험난하다. 그 때문에 혹여 멀미라도 할까 걱정을 한껏 품으며 버스에 탑승했다.


그러나 몇 분 뒤 걱정은 완전히 거두어지고 만다. 창밖에 펼쳐지던 드높은 절벽과 그 아래에서 찬란히 빛나는 바다. 경이롭다. 그래, 이건 경이롭다는 말이 아니고서야 표현할 수 없다. 어쩌면 그조차도 담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여행 내내 하미나 작가의 <아무튼 잠수>를 읽었는데, 책에는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미물일 뿐이라는 상투적인 말이 어떤 의미였는가를 그제야 몸으로 알게 됐다. (29p)


나는 이 말의 의미를 눈 앞에 펼쳐진 것들을 보고서야 비로소 온전히 알게 됐다. 어림잡을 수도 없는 세월 동안 깎이고, 흘러 만들어진 것들. 늘 그곳에 그렇게 있었던 것들. 그리고 그런 자연만이 줄 수 있는 감각을 경험했다. 이토록 우연한 풍경, 예고 없이 나에게 찾아와 속절없이 사랑에 빠지게 하는 순간들. 나를 내일로 향하게 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사소한 찰나였다.


당신에게 그런 풍경은, 순간은 무엇이었나. 나의 안에 남아 언제라도 생각나며, 그리하여 기꺼이 살고 싶게 하는 그런 날을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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