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천 여행기, 고즈넉함의 공간으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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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순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 순천 여행을 함께한 친구와의 인연은 군대 훈련소에서 시작되었다. 문득 군 복무 시절을 포함한 지난 2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경과했던 서로의 수많은 날들이, 그리고 그 속에서 나누었던 무수한 대화들이 하나의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우리는 훈련소에서 만난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백 번은 넘게 한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여행을 함께 가고 싶은 친구란 여행의 그 어떤 한 순간이라도 그것을 공유함에 있어서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사람이다.
예컨대 대부분의 사람들과 떠나는 여행의 경우, 서로의 시선이 같은 풍경, 같은 사물에 머물러 있더라도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바쁜 일상 속 시간을 내어 이렇게 멀리 여행까지 왔음에도 내가 이 사람과의 동행에서 무엇을 나누고 있는지가 분명치 않고, 심지어 그것을 개괄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다시 말해 그러한 여행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도 집중하지 못하고 타인으로부터도 불식간 멀어지고 만다.
그렇기에 이번 여행은 내게 큰 의미를 남겨주었다. 비록 단둘이 떠난 여행이기는 하지만 나와 상대 모두에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여행은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걷고 함께 풍경을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이 더 필요치 않다는 생각. 여행의 목적과 의미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거나 발견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것들이 내 안에 저절로 주어지는 느낌.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가능하게끔 만들어준 저변에는 바로 순천의 고즈넉함이 있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이 많지 않고 (물론 비수기, 평일 낮 등의 이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사실상 우리 둘 뿐이었다!) 고요함 속으로 흐르는 자연의 소리가 가득했다.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기에도 충분했고 서로가 깊은 대화를 나누기에도 완벽한 날씨와 공간이었다. 정말 푸르고 맑은 하늘, 선선한 바람, 기분 좋은 자연의 소리들. 여행 중 공유했던 모든 순간들이 어떤 특정한 소음과 누군가의 소란스러움에 묻히지 않았다는 것이 좋았다.
특히 내게 있어서 개인적으로 순천의 명소들은 낮과 밤의 매력이 확연하게 다른 공간이었다. 야경은 조용하게 흘러가다가도 문득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 번씩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힐링이라는 것의 의미를 온전히 느낀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어느 시점부터 때로는 의무감에, 때로는 조바심에 여행의 원래 목적이 밀려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 여행을 잘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순천 여행은 꼭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함께 흘러갈 수 있는 여행이었다고나 할까.
이러한 풍경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따금 이러한 풍경이 약간의 침묵을 만들어 스스로를 향한 집중의 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서 그 이상의 다른 무엇을 더 기대하지 않아도 좋았던 것 같다.
그 친구와 내가 이번 여행에서 매 순간 똑같은 것을 나누어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받아들였을 것이고, 내 이야기가 내 의도와는 다르게 대화의 단편 속에서 왜곡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떠한가. 우리에게는 다음 여행이 남았는데.
다음 여행을 기대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유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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