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영국 록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의 내한 공연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Music of the spheres)’가 진행됐다.
콜드플레이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밴드로, 해당 공연에는 수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했다. 방문자들의 기억 한 자리에 오래도록 머무를 순간이 되어준 공연. 하지만 그들의 공연이 자꾸만 생각나는 연유는 단지 화려한 무대 뿐이 아니다. 그러한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콜드플레이는 과연 무엇을 전하려 했을까.
환경과 공연의 공생을 꿈꾸며
콜드플레이는 2019년 월드투어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잠정적으로 투어를 중단했고, 3년 뒤 투어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 앞에 등장했다. 해당 공연은 저탄소형 친환경 월드 투어로, 앞선 투어보다 ‘탄소 배출량을 50%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그들은 공연장 내부에 일회용 물병의 반입을 금지했고, 공연의 시작에 앞서 스크린에 해양오염의 심각성과 같은 환경보호 캠페인 영상을 재생했다. 또한 일회용 팔찌 대신 식물성 자연 분해 소재로 제작된 ‘자이로 밴드(LED밴드)’를 배부했으며, 팔찌는 공연이 끝난 후 수거되어 재사용된다.
이때 자이로밴드의 국가별 수거율 역시 공연장 내 화면에 수시로 띄워졌다. 이로 인해 팬들은 SNS에서 자신의 나라가 더 높은 수거율을 달성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와 같은 여론은 4월 24일 한국 공연에서 무려 수거율 99%를 달성하게 했다.
인간의 경쟁심을 환경보호에 이용하며, 이로운 결과를 도출해낸 것이다.

그뿐일까. 스탠딩석 뒤편에는 재생 전력 생산 장치인 ‘키네틱 플로어’와 ‘파워 바이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해당 공간에서 관객이 뛰거나 춤을 출 경우 키네틱 플로어를 통해 에너지로 변환되며, 자전거의 페달을 돌리면 전기가 생산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진 에너지와 전기는 공연에 활용된다.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의 몸짓은 재생 에너지가 되고, 이는 탄소 배출량의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공연을 만들고자 했던 콜드플레이의 부단한 노력은 결국 ‘탄소 배출량 59% 감소’라는 결과를 도출했다. 수치가 늘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이로써 보여주었다. 환경을 생각하겠노라는 마음은 단지 허울이 아님을, 공연이라는 존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말이다.
소외 없는 세계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는 이방인이다'(Everyone is an alien somewhere). 이는 콜드플레이의 투어 테마로, 매 공연마다 스며들어 있는 문구이기도 하다. 어딘가에서는 이방인이 되는 저마다가 그들의 공연에서 만큼은 타자가 아닌 ‘우리’가 되어 무대 앞에 자리할 수 있었다.
먼저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스탠딩 구역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수어 통역사를 배치했다. 이들은 곡의 가사는 물론, 아티스트의 말과 현장 분위기까지 수어로 전달했다. 또한 농인 및 난청인에게 ‘웨어러블 조끼’를 제공했는데, 해당 조끼는 드럼이나 베이스의 낮은 음역을 진동의 형태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렇듯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는 팬들에게 콜드플레이는 청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경유해 다가간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계.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그야말로 그런 세계였다. 보컬 크리스 마틴은 ‘Something Just Like This’를 노래할 때는 한국 수어를 약 1분 간 선보이고, ‘People Of The Pride’에서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빛 깃발 ‘프라이드 플래그’를 흔들었다.
더불어 그들은 투어를 진행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아티스트를 게스트로 섭외해왔으며, 한국 공연에서도 트와이스나 블랙핑크의 로제, 한로로 등의 아티스트와 함께 무대를 꾸렸다.
크리스 마틴은 “한국에서 영어로 노래하는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라며 한국의 아티스트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캐나다에서는 선대 원주민에게 존경을 표하는 선언문을 읽고, 인도에서는 영국의 식민 지배에 대해 사과했다. 이처럼 그들은 지속적으로 각 국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므로 문화예술은

이 모든 순간을 한 단어로 압축해보자면 ‘포용’이다.
그렇기에 콜드플레이의 월드 투어는 단순한 공연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들의 공연은 팬들에게는 하나뿐인 기억을, 사회에게는 시사점을 남겼다. 이토록 소란한 사회에서 문화예술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지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콜드플레이는 지속 가능한 공연의 서막을 열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이어가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나아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연과 사회로 향하기 위해. 사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