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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에서 온 지구인의 중력 찾기 -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세실 - 2024 창작ing

by 이다혜 에디터
2025.10.21 21:22

 

 

작/연출 강훈구 

제작 공놀이클럽 

출연 김보경, 마두영, 박은경, 류세일, 이미라, 이승훈

장소 국립정동극장 세실 

일시 2024.11.03.-2024.11.22. 


개인적인 견해에 따르면, 사춘기의 발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내가 남들보다 뛰어난 줄 알았는데 사실 누구보다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우칠 때. 둘째는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모든 면에서 일반인과 동떨어져 결코 그들과 섞일 수 없겠다는 감각이 들 때다. 두 경우 모두 초중고에 이어 대학교, 심지어는 취직 이후까지 시기는 달라도 타인과 비교당할 수 있는 환경에만 노출된다면 누구나 체험한다. 전자는 자신 있는 분야에서 자신의 상대적 입지 혹은 능력이 예상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엔 다소 고통스러운 자기 인식 과정을 통과하지만, 절대다수인 평범한 이들과 어울려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한다. 그러나 후자는 자기 정체성 파악을 다수로부터의 설명 없는 배제로 시작한다. 국립정동극장 세실의 2024 창작ing, 그 아홉 번째 연극 <로켓 캔디> 속 우리의 주인공 ‘지구’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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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구인이 아닌가 봐, 오우무아무아


 

17살 소녀 ‘지구’는 8살 때 헤어진 아버지를 위해 달로 로켓을 쏘아 올리고자 설탕과 질산칼륨을 섞어 로켓 캔디라는 추진제를 제작한다. 지구는 로켓 캔디로 학교에서 로켓을 발사했고, 로켓 폭발로 학생들이 크게 다쳐 지구는 소년원으로 가게 된다. 면회에서 만난 어머니는 화를 내고 울기만 하다 돌아간다. 소년원 전담 상담 선생님은 지구가 폭발물을 왜 제작하여 터뜨렸는지 캐물으려고만 하고, 지구, ‘너’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AI 비서 ‘버디’는 그 일에 대해 질문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으며 사전처럼 질문에 대한 답만 내놓는다. 지구는 자신의 행위가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함이며 로켓 캔디는 절대 폭탄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는지 제대로 납득하지 못한 채로 소년원 생활을 이어간다.


지구는 남들처럼 학교도 잘 다니고, 부모님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데 어쩌다 보니 결과는 소년원이다. 자신이 무언가 다르다는 자각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모두가 지구에게 네가 잘못했다고 손가락질한다. 지구가 정말로 변명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자 입을 열 때마다 누군가 뻥! 하고 외친다. 로켓이 터질 때의 트라우마와 지구의 말을 거짓말이라며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내면을 부정당한 지구는 스스로 외면을 부정하기까지 한다. 소년원에서 사귄 친구 ‘혜성’에게 메이크업을 부탁하며 자신이 너무 못생겼다고 울음을 터뜨린다.

 

지구는 오우무아무아를 타고 처음 목표였던 달은 물론, 태양계를 떠나려 한다. 오우무아무아는 최초로 발견된 태양계 내부 천체이면서 태양계 바깥 외계에서 유입된 천체이다. 지구는 이곳 어디에서도 자신을 반기는 사람이 없다는 건 자신이 우연히 태양계에 불시착한 외계인이기 때문이니 우주 먼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 태양계를 벗어나 도착한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건 지구의 고향이 아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반복하면서 끝없이 멀리 도망치면서 살아갈 계획으로도 보인다. 지구의 무의식은 그가 ‘비정상’ 지구인임을 인정하고 지구에서 상처받으며 사는 것 대신, 어디서든 외계인임을 확인받을지언정 우주를 목적 없이 떠돌면서 고독으로 스스로를 감싸기로 한 것이 아닐까?


 


지구는 억울하다, ‘서술 트릭’


 

문학에서 독자는 작품 밖에 존재한다. 일부 작가들은 이 사실을 이용해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정보를 제한하거나 왜곡의 여지를 남기고 제공하여 독자가 작품 속 진실을 나중에야 파악하게 한다. 이를 ‘서술 트릭’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추리 소설에서 반전을 드러낼 때 사용하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연극에서도 비슷한 연출을 활용하기도 한다.


<로켓 캔디>에서는 크게 두 가지 서술 트릭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극의 기저에 깔린 지구의 정서다. 극의 초반부터 로켓 캔디 폭발에 휘말려 다치는 사람들의 비명보다 우주의 비명이 더 크다. 우주는 로켓 캔디의 안전성을 이야기할 때면 몹시 흥분하고, 사람들이 왜 자신을 막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 소리를 지르기만 한다. 관객은 지구에게 이입하여 연극을 관람하지만, 그 서사로 직접 들어가 본다고 상상하면 지구는 학교에서 몰래 만든 화학 물질로 폭발 사고를 일으켜 7명의 학생을 크게 다치게 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말이 통하지 않는 문제아로만 보인다. 누구든지 소년원 처분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 지구는 억울하다. 너무나도 억울해서 로켓 캔디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몰래 소년원에서 재료를 구하고 다시 한번 로켓을 쏘아 올리고자 한다. 그곳에서 만난 ‘우주’는 지구를 도와 로켓을 함께 제작하고, 로켓 캔디의 주재료인 설탕과 질산칼륨을 구하는 방법을 일러주기도 한다. 무대 위엔 지구와 우주를 연기하는 두 배우가 서로 호흡하며 대사를 주고받기에 우주가 실존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두 번째 서술 트릭이라는 점은 극의 후반부에서 우주가 지구에게 자신은 현실에 없으며, 지구 ‘너’ 자체라고 밝힐 때 드러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관객은 소년원에서 누구도 우주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을 뒤늦게 곱씹는다.


 


좋은 연출은 일상도 사이언스 픽션으로


 

공연이 열리는 국립정동극장 세실의 반구형 무대는 둥근 부분이 무대 안쪽으로 깊게 파여있고 그 둘레에 의자 여러 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있다. 무대 위의 의자는 배우들이 그 위에 앉아 소품을 활용하여 직접 음향 효과를 연출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한다. 관객이 지구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도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감각적인 조명 연출과 사이렌, 폭발음처럼 지구의 불안정한 심리를 대변하는 여러 소리의 영향으로 지구와 동화되기 때문이다.

 

결말에서 지구가 오우무아무아를 만나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은 무대 앞에서 무대 뒤로 빛을 비추는 휴대용 손전등 앞에 지구가 만든 로켓을 놓아 연출한다. 페트병 크기의 로켓이 빛 앞에서 벽 한 면을 꽉 채우는 천체가 되고, 허상일 뿐인 그림자에 매달리는 지구는 더욱 작은 존재로만 보인다. 어린아이처럼 뛰어오르며 오우무아무아에 올라타려는 지구는 ‘정상’에서 동떨어진 자신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사춘기 청소년을 닮았다.


 


붙잡는 만큼 나는 당겨진다


 

지구는 남들과 다르다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버리고 도망가기 위한 추진제인 로켓 캔디가 타인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는 폭발물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도 정식으로 사과한다. 피해망상과 자기방어의 수단이었던 로켓 캔디도 미련 없이 로켓과 함께 멀리 날려버리고 소년원 밖으로 나와 일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맨 처음 타인을 해쳤던 로켓이 결말에서 지구의 아픔을 모두 안고 떠나는 순환 구조에서 첫 장면과 정반대의 해피 엔딩을 찾을 수 있다.

 

고통스러운 현실일지라도 지구가 이 땅, 이 지구에 발붙여 살기로 선택한 것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으면 내 주변 사람들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년원은 전과 기록에 남지 않는 보호 처분이며, 상담사와 학교 선생님 모두 지구를 올바른 길로 지도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지구를 사랑하고, 지구의 행동에 놀라 울고 화내는 등 감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면회가 끝나기 직전에는 지구를 다독이는 보호자다. 돌이켜 보면 극 중 누구도 지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중력은 질량이 있는 두 물체끼리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내가 당기면 반대쪽도 정확히 똑같은 힘으로 당긴다. 내가 이 지구에서 먼지만큼의 존재감과 쓸모를 가졌더라도 지구는 나를 놓치지 않고 당겨준다. 지구 위에 존재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세상이 끊임없이 내가 뭔갈 잘못했다고 지적하고 내 행동을 고치려 하는 것도 어쨌든 지금 여기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내 발이 땅을 디딜 수 있도록 잡아주고 있다는 거다. 110분 동안 우리의 지구를 관찰하고 나면 때론 중력은 높은 곳에서 날 떨어뜨리고 내게 상처를 주지만 어떻게든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는 위로를 얻는다. 청소년이든 아직 갈피를 못 잡은 어른이든 방황하는 이 중 누구보다 먼저 외계가 아닌 지구 내부로의 탐험을 시작하는 ‘지구’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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