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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작가적인 시선을 가지되 거기에 매몰되지 말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작품은 작가의 손끝에서 태어나지만, 그것이 살아 숨 쉬는 곳은 언제나 관객의 세계다. 작품은 그저 ‘보여지는’ 순간부터 또 다른 생을 산다. 그래서 나는 어느늘 예술을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에 마음이 끌린다. 각자의 삶이 다르듯 감상의 여정도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누군가는 슬픔을, 누군가는 평화를 느낀다.

 

그런 차이를 품은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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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오랜만에 예술을 ‘보는 사람의 언어’로 다시 사유하게 만든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한때 화려한 커리어를 꿈꾸던 잡지 기자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겪은 후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듯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취직한다.

 

그가 선택한 일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오히려 삶을 버티게 하는 진심이 있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관람객이 오가는 전시실에서 그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예술을 마주한다. 렘브란트의 어둠 속에서는 상실의 얼굴을, 메리 카사트의 빛에서는 남은 온기를,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에서는 인간의 근면함을 본다. 예술 작품과 같은 공간에 있으며 사유하는 것만으로도,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얻는 것이다.

 

그는 예술을 감상하는 대신, 그 곁에서 살아간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예술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는 방식일 것이다. 처음엔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는 미술관의 고요 속에서 오히려 다시 삶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운다.

 

예술은 그에게 완벽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저 하루를 견디게 하고, 조금씩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삶은 휘청거리고 삐걱거리면서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가 책의 마지막에 남긴 이 문장은 예술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이유를 조용히 말해주는 듯했다.

 

예술은 삶을 바꾸지는 않지만, 그 곁에서 삶이 흔들릴 때 우리를 붙잡아 준다.

 

삶이 바빠 예술에서 잠시 멀어지더라도, 일부러라도 종종 미술관을 찾는 요즘이다. 세상과 단절되어있는 동시에 또 연결되어 있는 그곳에서 오롯이 작가의 생애와 작품에 집중하며, 평소에 스스로를 괴롭히던 고루한 생각들에서는 잠깐이나마 벗어나게 된다. 그 순간은 비록 짧더라도 분명한 위안이 되며, 미술관의 문을 나설 때에는 다시 삶을 지속해나갈 힘과 즐거움을 준다.

 

예술이란 늘 그랬던 것 같다. 삶이 예기치 않게 흘러가더라도, 세상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여전히 예술 앞에 설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게 된다.

 

*

 

패트릭 브링리(Patrick Bringley)

 

대학 졸업 후 《뉴요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뉴욕 한복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승승장구를 꿈꾸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어느 날, 암으로 투병하던 친형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는다. 이를 계기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독한 무기력감에 빠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놓아두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2008년 가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저자는 매일 다른 전시실에서 최소 여덟 시간씩 조용히 서서 수천 년의 시간이 담긴 고대 유물과 건축물들, 그리고 거장들이 남긴 경이로운 예술 작품들과 마주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동시에 미술관을 찾는 각양각색의 관람객들을 관찰하고 푸른 제복 아래 저마다 사연을 지닌 동료 경비원들과 연대하며, 차츰 삶과 죽음, 일상과 예술의 의미를 하나씩 발견해나간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고통 속에 웅크리고 있던 한 남자가 미술관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저자의 첫 책이다. 영미권에서는 ‘인생과 예술에 대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찬사를 받으며 40주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23년 발간된 한국어판은 출간 1년 만에 20만 부가 판매되며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201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떠나 뉴욕 도보여행 가이드로 활동하기 시작해 현재는 비정기적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브루클린에서 사랑스러운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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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공공공
"예술은 그에게 완벽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저 하루를 견디게 하고, 조금씩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참 좋은 말이네요. 요새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상에서 되새김하는 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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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5 10:27:27 1
둡생
좋은 말로 느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요새 뭔가를 즐기기에 너무 좋은 날씨인데, 살아갈 힘을 주는 예술을 만날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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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7 13:37:2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