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왕!
![[크기변환][포맷변환]KakaoTalk_20251007_164131151_0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0/20251007165020_trofpvnz.jpg)
일본 도쿄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첼리스트 정우찬이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다. 도쿄 미나토구 국제 음악 콩쿠르(Tokyo Minato City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는 도쿄 미나토구에서 열리는 국제 음악 경연 대회이다.
2025년에는 첼로 부문이 열렸고, 결선 지정곡으로 하이든,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 선정되었다. 이번 콩쿠르에서 정우찬 첼리스트가 1위와 청중상을 함께 수상했다.
와— 이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육성으로 ‘꺄악’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응원하던 연주자가 노력의 결실을 맺다니, 이보다 더 값진 소식이 있을까. 그의 마음은 얼마나 환했을까. 직접 눈으로, 말로 축하의 마음을 전할 수 없다는 게 괜히 아쉬웠다.
더군다나 정우찬 첼리스트가 누구인가. 내가 좋아하는 현악 4중주팀 ‘이든 콰르텟’의 멤버이자, 첼로와 첫인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연주가이기도 하다. 언제 내가 첼로와 제대로 눈인사를 했던가. 올해 4월 3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렸던 ‘아름다운 목요일: 금호 악기 시리즈 – 정우찬 Cello’ 공연이었다.
첼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밝았고, 예뻤고, 반짝였다.
첼로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높은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가끔은 바이올린 같았다.
첼로는 진중한 구역 안에서 아주 무게감 있게 휘몰아지는 진동체였다.
첼로는 아래쪽에서 심장 고동을 닮았고, 위쪽에서는 마음에 새겨지는 소리를 남겼다.
첼로는 통통 가볍게 날아오는 튕김보단, 둥둥 울려오는 심연의 피치카토를 가지고 있었다.
정우찬 첼리스트는 연두색의 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들었을 때, 너무 짙지도 옅지도 않은 녹색의 이미지가 형상화되었다. 신중한 연주였다.
신중하다는 건 그 연주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또 과하게 몰입하지도 않았다.
클래식 공연은 연주자 본인도 중요하지만, 그날 연주되는 ‘곡’이 진짜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연기를 잘해야 시청자가 빠져들지 않겠는가. 연주자는 작곡가가 의도한 주인공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정우찬 첼리스트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었고, 그래서 나는 그날 첼로의 소리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안녕? 안녕.
— 아름다운 목요일 <금호 악기 시리즈> 정우찬 Cello 관람 후
내게 이런 문장을 선물해 준 연주가가 바로 정우찬 첼리스트였다.
콩쿠르에 참여한다는 건 또 다른 ‘계기’를 만나기 위해 끝없이 연마하고, 스스로를 갈고닦는 길이다.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사람을 피말리게 하는 여정.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을 두고 순위를 매긴다는 것, 그 얼마나 숨통을 조이는 일인가. 이런 추상성과 싸우다 보면 차라리 정답이 있는 시험지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연주 영상이 남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다. 특히 이번 결선 곡 중 하나였던 하이든: 첼로 협주곡 D장조 제2번 1악장.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반복 재생했는지 모른다. “하이든이 첼로 협주곡도 썼구나!”(어머, 몰랐어.)
그냥 넘기기엔 아까워서, 계속 반복 재생하며 듣는 나를 또 반복했다. 아— 이번에도 글 쓸 생각은 없었는데, 손가락이 악장별로 따라가 버린다. 뭐 어쩌겠나. 이 기회에 하이든이랑 엘가랑 또 친해져 봐야지.
2. 2025 Cello Section Final
하이든, 첼로 협주곡 D장조 제2번, Hob. VIIb:2
(타임스탬프: 15:55-31:20)
Ⅰ. Allegro moderato — 빠르되 절제된 속도로
약간 듣는 이를 의기양양하게, 다만 교양 있게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우게 만드는 시작이 아닐까 싶다. 식기도 정해진 순서대로 착- 놓여 있고, 미트파이는 조심스레 잘라야 할 것 같다. 접시 하나에도 금테가 둘러져 있을 테니, 사방의 전경을 길게 묘사하지 않아도 그 풍경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그럼에도 듣는 데 부담감이 전혀 없어서 좋다. 물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콩쿠르 결선 무대지만, 내 귀에는 오로지 하이든과 첼로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만 존재할 뿐이다. 고개가 위아래가 아니라 왼쪽과 오른쪽으로 까딱까딱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었지만, 오늘의 첼리스트는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 안에서 자연스레 어우러지니, 듣는 사람까지 편안해진다.
정우찬 첼리스트는 참 특색 있다. 당신이 아는 첼로는 어떤 소리인가. 대체로 짙은 곡선의, 두텁고 진중한 음색을 떠올리지 않는가. 이 첼리스트는 그 선보다 조금 더 높은 선상에서 연주한다. 그리고 그 자체에 여러 ‘겹’을 지니고 있다.
‘겹’이란 물체의 면과 면, 혹은 선과 선이 포개진 상태를 뜻한다. 내가 많은 첼로 공연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났던 첼로 중에서는 가장 다채롭게 웃어주는 소리였다. 다른 첼리스트들이 두껍고 저음에 최적화된 소리를 깊게 끌어올린다면, 이 연주가는 그 선 하나가 네 겹으로 나뉘어 있다. 바닥을 깊게 파는 대신, 첼로가 줄 수 있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달까.
그가 노는 영역은 내가 좋아하는 높은 음에 가까이 있다. 그 색감은 맑은 이슬이 얹힌 연두빛 잎사귀를 닮았다.
특히 나는 새초롬한 소리에 매우 취약한 편이다 — 그런 소리를 잘 내주는 연주가를 만나면 마음이 약해진다. 원래 첼로에서는 짙은 고동색의 나무기둥 같은 소리만 날 줄 알았지, 가지 끝마다 초록의 형태가 달려 있을 줄은 몰랐다.
결국 ‘연두색의, 새초롬하고 맑은 기운의, 네 겹의 소리선’이라는 건, 내가 귀가 쫑긋해지는 바로 그런 소리다. 이런 소리는 하이든이나 바흐를 들을 때 특히 도움이 된다. 솔직히 이런 작곡가들의 곡 앞에서는 판단보다 배움이 먼저 마음결에 새겨지지 않던가. 그럴 때 이런 결의 연주자들은 나를 음악에 더 가까이 데려다준다.
클래식을 좋아하기로 했으니 다양한 곡을 접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곡이 10개라면, 아직 듣지 못한 곡은 1000개다. 결국 내 처음을 연주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지금처럼 말이다.
정우찬 첼리스트의 이 1악장은 어떤가. 지루하지 않고, 가라앉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어딘가 ‘밀키함’이 섞여 있다. 소리가 샤베트처럼 녹아내리는 건 아니지만, 정체성은 애플민트이며, 흐르는 결은 바닐라처럼 부드럽게 눌러온다.
부드럽게 흐를 때는 내가 아는 첼로보다 위쪽 선상에서 노래하고, 날아오를 땐 바이올린처럼 하늘을 톡- 치고 유유히 내려온다. 그러니 관악이 특유의 반복적인 노래를 이어가도 지루하지 않다. 때로는 상큼해지고, 때로는 부드러워지니 이 소리가 질릴 수가 있나.
아니, 지금 두 번째 듣다가 27:07로 다시 되돌아왔는데 —
거기, 잘게 계단을 오르다가 소리를 쫙 늘여놓고 높아지는 그 부분, 뭔데! 뭔데! 너무 좋은데!
엘가, 첼로 협주곡 e단조, Op. 85
(타임스탬프: 1:37:14-2:05:40)
![[크기변환][포맷변환]KakaoTalk_20251007_164131151_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0/20251007165037_casqkorc.jpg)
Ⅰ. Adagio – Moderato — 느리게. 중간 빠르기로
이 선, 상당히 유명하지 않은가? 내가 봤을 땐, 아예 낯선 곡보다 이렇게 대놓고 유명한 선율 자체가 연주자들에게 더 어렵게 다가올 것 같다. 정우찬 첼리스트는 어떤 첫음을 그어냈던가. 바닥을 ‘쿵–’ 짧고 굵게 내려찍기보다는, 지체하지 않고 눌러 내려앉아 제자리를 지킨다.
‘지금 내가 협연자로서 튀어보이겠다’는 선택지보다, ‘이 시간, 엘가의 콘체르토를 내 색으로 한 번 이야기해 보겠다’는 담백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시작이다.
저 봐, 내려앉은 소리를 내뱉는 길을 목격하라. 욕심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고, 첼로가 가져올 수 있는 이야기를 내밀하게 끌어내는 사람이 저기 있다. 소리를 내뱉는 길에 감정을 서서히 타오르게 할지언정 과장됨이 없으니 부담스럽지 않다. 타악기가 두드려질 때는 날카로워지다가 이내 자취를 감추어, 장대한 화음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애초에 음색이 높은 연주자를 나는 특히 좋아한다. 첼로도 이렇게 날 수 있구나. 몸을 띄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내려앉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파동선이 넓고 긴 사람일수록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결이 드넓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실로폰의 색감까지 들여놨으니 아, 그냥 듣기 좋다! 네 겹의 연두색 실로폰이라니. 내가 지금 엘가를 듣고 있는 건지, 이 색감을 음미하고 있는 건지.
Ⅱ. Lento – Allegro molto — 매우 빠르게
뭐지? 방금까지 진중한 분위기를 이끌던 오케스트라와 중심이 되어주던 첼로가 순간 역할을 교대했다. 정우찬이 담담하게 음을 두드려내면, 단원들이 1:45:24 지점에서 소리를 깨트리며 공간을 장악한다. 뭐야, 오케스트라 뭔데.
가냘프고 다정한 것들이 얇게 도도히 흐르는 순간이 있다. 그 잠시의 다정함이 몇 번이고 되뇌이다가, 갑자기 흐름이 자잘해지더니 조금씩 고조되기 시작한다. 첼로가 이렇게 다이내믹해질 수 있구나. 짙은 무게를 덜어내고 가볍게 뛰놀아주니, 듣는 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간다.
1:47:46 지점을 보시라. 이 미묘한 오고 감이 특히 매력적이다. 뒤로 살짝 빠져나가는 두 번의 길에서도 소리가 전혀 다르다. 이렇게 음표가 자잘하고, 지시가 ‘매우 빠르게’인데도 버겁지 않고 흥만 오른다니.
아니, 나는 지금 이 글을 도닥이며 하얀 페이지를 보고 있지 않은가. 소리만 들으면 연주자가 굉장히 심취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은데, 영상 속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오직 음표에 집중한다. 소리는 자글거리며 즐겁게 노니는데, 연주자는 담담히 몰입한다. 그 모습이 관객으로서는 아주 보기 좋다.
이 악장의 재미난 점은 연주자에게는 ‘관문’이겠지만, 청중에게는 ‘길목’이다. 소리의 즐거움은 듣는 이의 몫이다. 물론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 듣는 이는 긋는 자이겠지만, 그 소리가 청중에게 닿아야 비로소 완성되지 않겠는가. 연주자는 그 부담 속에 있지만, 화면 밖의 나는 그저 고개를 까딱이며 즐길 수 있다.
그래, 이 지점에서 나는 청자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권력을 누렸다. 아무런 계산 없이, 전문가의 자잘하고 정밀한 음표의 세기를 그저 즐길 수 있는 권력.
Ⅲ. Adagio — 느리게
아니, 꼭 이렇게 달렸다가 아득해진다니까. 도대체 작곡가들은 무슨 심경의 변화로 이런 급격한 전환을 두는 걸까? 그런데 또 듣고 있으면, 좋다.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좋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스캣을 함께 밟던 리듬 속에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긴 선을 붙잡고 따뜻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는 9월 함안 공연에서의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칸타빌레적인 현악의 흐름도 참 좋지만, 사람의 숨소리를 닮은 해석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연주자가 그날의 음악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가늘게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이런 3악장의 품이라면, 그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가 색칠놀이를 할 때 가볍게 색연필을 비스듬히 눕혀 칠하거나, 악력을 주어 공백 없이 진하게 채우지 않던가. 때로는 여백인 상태가 좋아 선만 남겨두기도 한다. 어떤 색을 택하고 어떤 그림을 완성할지는 내 몫이다.
여기는 입시 미술 현장도 아닌데, 무엇을 택했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 클래식 세계에서 나는 요즘,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의 연주들’을 자유롭게 수집하고 있다. 오늘의 첼로도 그렇다.
3악장의 첫 음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아,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연주가다. 악기를 앞세우되 겸손하며, 여백이 있고, 청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파동치며, 멀리 갔다가도 서서히 다가온다. 그 모든 요소가 하나로 모인 3악장의 시작이다.
거기 들려오는 결이 여러 겹인데도, 하나도 물러서지 않고 숨김없이 감정을 표명해 주니 속이 시원하다.
1:53:06, 첼리스트의 표정을 응시하시라. 얇디얇은 소리를 귀담아 들으시라. 그래, 저 목소리다. 나는 저 소리를 참 좋아한다. 1:54:15, 그 마음이 여기에 있다. 이만큼의 시선이 여기에 있다.
가끔 이런 소리를 만나면 참 난감하다. 이 정도의 기대치를 기본값처럼 인식하고 있다가, 다른 장소에서 이만큼의 진심이 없거나 성마른 얼굴을 지닌 연주를 보면 마음이 크게 속상하고,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라 스스로를 말릴 재간도 없다.
어쩌겠나. 듣다 보면, 다 보인다.
Ⅳ. Allegro – Moderato – Allegro, ma non troppo
— 빠르게. 중간 빠르기로.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아무래도 마지막은 화려하게 장식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엘가는 그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켜주는 음표들을 빼곡히 남겨놓았다.
1:55:37, 그 소리를 보라. 진하지만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
1:56:11, 두터운 선명도를 보라.
1:56:22, 끝의 날카로움을 응시하라. 이야— 잠깐 바이올린이 왔다 간 줄 알았다. 첼로를 어디까지 가지고 노는 걸까.
1:57:31, 저 얇아지는 길목을 지켜보라.
2:01:53, 잠시 내려앉는 공백이 있다.
2:03:14, 기다림의 여운이 스며든다.
2:04:09–2:04:51, 두말할 필요가 없다. 완벽하다.
맨 처음의 선이 되돌아왔다. 심연에서 도출된 소리 속에 이 악장과의 이별이 예고된다. 엘가도 수미상관을 보여주는구나. (나야 뭐, 좋지만.)
3. 엘가야, 앞으로도 우리는
![[크기변환][포맷변환]IMG_0905.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0/20251007165145_xfykuakn.jpg)
하이든과 엘가의 악장을 지나, 또 다른 장소에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 밖으로 나섰다. 7일인 오늘, 여전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추석 연휴라 관련 행사가 많을 텐데, 이렇게 날이 궂다니. 하늘도 무심하다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문득 내 발치에서 오늘의 연주가를 꼭 닮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흐흐, 말로 길게 설명할 것 없다. 진작에 산책 나올 걸. 나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그 ‘저 이슬’을 예쁘게(?) 담아보려 애를 썼다. 여간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우찬 첼리스트의 수상 소식을 접하고, 뜻깊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가 첫 국제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파이널 무대에서 연주한 곡이 이번과 동일한 엘가 첼로 협주곡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콩쿠르의 파이널에서, 또 한 번 엘가로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낭만적인 서사가 또 있을까? 클래식을 좋아하다 보면, 가끔 이런 운명적인 순간들이 찾아온다.
엘가 협주곡의 첫 악장이 열리는 선과 마지막 악장이 닫히는 선이 겹치는 것처럼, 그의 또 다른 세계에서의 첫 시작과 새로운 계기가 될 그날의 순간도 이렇게 맞닿았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돌고 도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소하게 행복하고, 나름 열심히 헤매며 돌아갈 수 있다면, 때로는 길을 잃어도 — 한참 돌아가더라도 —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는, 어떤 결과가 주어지든
당장 하고 싶은 일들에
충실히, 또 끊임없이 괴롭힘당하듯 살아가겠지.
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