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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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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1. 들어가며 - 지하철, 3호선 교대역으로 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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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3호선 환승 계단을 내려가는데 스크린도어가 곧장 열렸다. 환한 지하철 내부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쏙—하고 몸을 실었다. 토요일인데도 좌석은 사람들로 빼곡히 차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혼자 '옹, 대박' 하며 문 쪽 좌석 앞에 섰다.


그 앞에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앉아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런데 갑자기 맨 끝에 앉아 계시던 분이 벌떡! 일어나더니, 영어로 말을 거셨다. 당연히 길을 묻는 줄 알고, 집중해서 들으려고 한쪽 귀를 가까이 했는데...


"We’re getting off at the next stop. You can have our seats.(우리 다음 역에 내려요. 여기 앉아요.)"


이게 무슨 (!!) 같은 나라 사람한테도 못 받아본 후한 대접을 (!!) 순간 당황해서 얼떨떨한 얼굴로 감사히 옆에 앉았다. (곧 내릴 예정이었지만, 차마 말은 못 했다)


그분들은 꺄르르 웃으며 다음 역에서 내리셨고, 그 뒷모습에 눈짓으로 남몰래 감사를 표했다. 나도 모르게 '히히…' 웃음이 새어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딱 예감이 들었다. 오늘, 좋은 하루겠다.

 

 

 

2. 골목, 예술의전당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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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표정에 기분 좋음이 걸렸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참 아니던가? 양산을 의기양양하게 펼쳐 들고, 신나게 남부터미널역을 빠져나와 예술의전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좋아하는 연주가들의 공연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당신은 이든 콰르텟을 아시는가? 이든을 말하기 전에 콰르텟에 대해 먼저 설명하자면, 콰르텟은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실내악 형식이다. 그렇다. 현악 4중주 팀인 것이다.


이든은 순우리말로, ‘어질고 착한’을 뜻한다. 이든 콰르텟은 바이올린 정주은, 비올라 임지환, 첼로 정우찬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멤버였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내 최애, 임동민 연주가는 올해 6월에 이든에서 졸업하셨다. (아쉽)


그래도 원래부터 워낙 친한 친구 사이인 데다, 그저 같은 팀에 소속되지 않았을 뿐, 여전히 좋은 동료 사이이신 것은 마찬가지겠다. 나는 이분들 덕분에 클래식에 ‘제대로’ 입문했다.


작년 7월 25일, 더하우스콘서트의 줄라이 페스티벌에서 이든 콰르텟이 슈만의 현악 4중주 제3번 A장조, 작품번호 41의 3(String Quartet No.3 in A major, Op.41, No.3)을 연주하셨는데… 진짜 쿵— 했다. 아마 그날이 아니었다면, 내가 ‘오늘’의 나를 만날 수 없었으리라.

 

 

1:01:00 ~

 

 

한 번 심쿵한 기억이 있으니, 어디에서 연주하신다고 하면 살짝씩 살펴 보다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면사랑 신진 유망 연주자 수상자 연주회’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식품 기업 면사랑은 전도유망한 젊은 음악인을 선발해 다양한 지원과 함께 정기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번 무대는 그 두 번째 회차였다. 이든 콰르텟의 멤버이자 1기 수상자 바이올리니스트 정주은과 2기 수상자 첼리스트 정우찬이 그날의 연주회에 참여했다.


그러니 안 갈 수가 있나? (엣헴) 당연히 가야지. 게다가 나만의 클래식 방과 후 학교인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에서 자주 뵙던 김도현 피아니스트—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하시는—도 출연하신다고 하니, 갈 이유는 차고 넘쳤다.


 

 

3. 예술의전당, 로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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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성격상 늦게 가느니 이르게 가는 편이라, 공연장 로비의 문을 일찌감치 열었다. 아무래도 기업에서 후원한 연주회이다 보니, 로비 앞에 모여 있는 분들에게서 약간 ‘어른(?)’ 느낌이 났다. 회사 워크숍 같은 분위기도 있고...


그 사이에 낀 이든 콰르텟의 소인족 팬은 호다닥 리사이틀홀 앞 자판기로 가서 생수 하나를 뽑아 들고는 맞은편 벤치에 앉아 프로그램 북을 넘겨보기 시작했다. 그날은 어떤 레퍼토리가 준비되어 있던가?

 

 

리게티 (György Ligeti)

-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

I. Dialogo

II. Capriccio


글리에르 (Reinhold Glière)

-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듀오 중 일부

II. Gavotte

III. Berceuse

IV. Canzonetta

VII. Scherzo


크라이슬러 (Fritz Kreisler)

- 레치타티보와 스케르초 카프리스, 작품 6


테일러 퍼킨슨 (Coleridge-Taylor Perkinson)

- 루이지애나 블루스 스트럿


드뷔시 (Claude Debussy)

- 아마빛 머리의 소녀 (바이올린과 피아노 편곡)

- 왈츠 '렌토보다 더 느리게 (바이올린과 피아노 편곡)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 피아노 삼중주 제2번 다단조, 작품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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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크라이슬러의 ‘레치타티보와 스케르초 카프리스’를 제외하면, 모두 처음 보는 곡이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이미 음원으로 예습해 온 상태였으니까. 클래식은 어쩔 수 없다. 예습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가 꽤 극명하다.

 

사실 아예 듣지 않고 가서 연주자를 통해 곡을 처음 소개받는 재미도 있지만, 미리 조금이라도 알고 간다면 그날의 ‘연주자’가 어떤 스타일인지 슬쩍 짐작해볼 수도 있다. 음원과는 다른, 실연만의 매력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도 있다.


아무리 음원이 좋아도, 모두가 고요히 집중하는 실연의 공간에서 들을 때의 경험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특히 오늘 같은 실력이 보장된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를 경우엔 그 차이가 더욱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있던 레퍼토리는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와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 2번」이었다. 사람마다 음원으로 딱 듣자마자 귀에 꽂히는 곡이 있지 않은가? 미리 알고 있던 크라이슬러의 곡도 기대되었지만, 유달리 실처럼 섬세한 음색의 ‘아마빛’과, 드라마틱한 서정미가 깃든 멘델스존의 곡이 자꾸 마음속에 떠올랐다.


자, 수분 충전도 했고, 더위도 어느 정도 가신 시점이다. 공연 전에 관람객이 해야 할 준비는 모두 마쳤으니 (폰도 비행기 모드 설정 완료),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된다. 약속된 시간이 도래하기 10분 전, 일찌감치 챔버홀 문 앞에 섰다.

 

 

 

4. 챔버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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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북적북적—1층 A블럭의 16열 가장 오른쪽 끝 좌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홀에서는 꽤나 뒤쪽 라인이라, 관객석 전경부터 무대의 전체적인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그동안 거의 맨 앞자리나 두 번째 줄에 앉는 호사를 누려왔는데, 이 자리도 꽤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 정도의, 16열쯤 되는 거리에서는 연주자들이 그려내는 소리선보다 바깥에 위치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조금 더 서라운드로, 독주악기 혹은 이중주의 화음을 듣고 싶다면 이보다는 더 앞쪽으로 진출하길 추천한다. (너무 예민하게 듣는 걸지도..) 자, 이제는 연주자에게 공을 돌릴 시점이 된 것 같다. 첫 번째 무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바로 첼리스트 정우찬이다.


일전에 4월 3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아름다운 목요일’ 공연 이후로 오랜만에 무대에서 뵙는 터라, (혼자) 매우 반가웠다. 첼리스트가 무대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자, 그때부터 리게티의 독주 음악이 시작됐다.

 

 

 

1) 리게티 – 「첼로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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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는데, 작곡가가 젊은 시절 짝사랑을 떠올리며 쓴 곡이라고 했다. 시작 자체가 되게 뭔가 장중한 '갸우뚱'한 표현이 몇 번 반복되면서, 듣기 좋은 아랫소리가 앞으로 구비구비 향하는 느낌이 있다. 이 '갸우뚱'은 뭘 묘사하려는 건지 감이 잘 안 온다. 사랑에 빠진 느낌일까?


첼로 특유의 낮고 묵직한 음색으로 내려앉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위로 치솟는다. 여기서 정우찬 첼리스트의 특징적인 소리가 들린다. 연주자들은 워낙 음정이나 소리에 명확한 한 줄기의 선이 분명한데, 정우찬 첼리스트는 그 한 줄에서 네 줄의 겹이 느껴졌다.

 

일반 모닝빵이 아니라 패스츄리 같은 느낌이다. 결이 겹겹이 쌓인 그 파동치는 느낌이 첼로의 낮은 음색을 만났을 때 진짜 매력적이다.


2악장의 카프리치오로 넘어왔다. 음표가 확 밀착되어 있는 건지, 첼리스트의 팔의 오고 감이 빨라지는 시점이다. 보통 이런 곡에선 뭘 판단하기보다는 그냥 간다-간다-음이 간다-쪼인다-하는 양상을 마냥 지켜보는 맛이 있다.

 

첫 곡이지 않은가? 현악 안으로 분위기를 확- 이끌어와 줄 도입부이면서도, 클래식 안으로 사람들을 잠식시킬 흡입력이 필요하겠다. 그 역할을 정우찬 첼리스트가 충실히 해줬다.

 

 

 

2) 글리에르 –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듀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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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하 바이올리니스트와 정우찬 첼리스트가 무대 위에 선다. 최송하 연주가는 인터넷으로 소식만 들어봤지, 실제 연주로는 첫 직관이었다. 와—소리가 쨍하고 또렷한 직선 같았다. 어찌나 분명한지, 음원보다 훨씬 선명도가 뚜렷해서 와—이거지! 하면서 즐기며 들었던 기억이 있다.


고풍적인 느낌의 ‘가보트’, 고즈넉한 노을의 들판을 그리는 기다란 ‘자장가’, 사랑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듯한 4악장, 확—민첩하게 집중력을 이끄는 기분 좋은 벼락 같은 마지막 ‘스케르초’가 이어진다.


이게—토요일이지. 우스꽝스러운 듯하면서도 재치 있고, 위트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7번 곡이었다. (재밌다, 재밌다.)

 

 

 

3) 크라이슬러 – 「레치타티보와 스케르초-카프리스, Op.6」


 

무반주 바이올린 연주로 진행되었다. 아까 활에서 뻗는 소리가 무척이나 분명하다고 말했는데, 그 매력이 확 드러난다. 시작에 확—가라앉은 뒤, 이 악기가 보일 수 있는 음색을 차분히 펼쳐낸 다음에, 기교를 뽐내듯 소리치는 구간이 있다. 좋아하는 바이올린 표현법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크라이슬러는 참 다양한 매력의 곡들을 그려낸 작곡가 같다. 예전에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가 라디오에서 이 곡을 연주하셔서 알게 된 곡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실연으로 접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4) 테일러 퍼킨슨 – 「루이지애나 블루스 스트럿」


 

크라이슬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블루스, 재즈, 영가 등 흑인 음악 요소가 섞인 리드미컬함이 관객의 흥을 돋운다. 듣자마자 이 쫀쫀함—에 “아, 이거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테크닉은 모르겠고, 즐길 수 있는 곡이 뭐가 있을까 하면, 바로 이 「루이지애나 블루스 스트럿」 이겠다. 발이 동동, 활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여본다. 내가 깡깡 머신이라 그렇지, 댄싱 머신이었으면 아마 어깨로 둠칫—리듬도 탔을 것이다. (그럴 일 없다)

 

 

 

5) 드뷔시 – 「아마빛 머리의 소녀」 (바이올린과 피아노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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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몽환적인 선율로, 드뷔시의 전주곡 중 가장 널리 사랑받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이나 작곡가의 이름보다, 귀로 먼저 이 곡과 인사를 했다. 그냥, 하늘하늘—리본이 내 옆자락에서 흩날리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일단 배경 자체는 요근래의 드높은 새파란 창공이겠다. 그 옆에는 연분홍빛 실크 자락이 두 갈래로 바람을 타고 있다. 이 풍경을 기억하고, 소리를 편안하게 마음 안으로 담으면 충분하다.

 

 


6) 드뷔시 – 왈츠 「렌토보다 더 느리게」 (바이올린과 피아노 편곡)


 

미리 들었던 녹음 버전은 야사 하이페츠의 버전이었는데, 1971년도에 발매된 앨범의 수록곡이었다. 클래식은 그야말로 ‘고전’이 아니던가? 이런 오래된 음반 버전의 음원을 들으면, 특유의 라디오 주파수를 닮은 지직거림이 도입부부터 짙게 배경음이 되어준다. 귀에 잔잔하게 스미는 사포 소리. 아시는가? 벽난로가 옆에 있는 것 같고, 참 좋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합'을 느껴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눈을 감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7) 멘델스존 – 「피아노 트리오 제2번 다단조, O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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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의 정주은, 피아노의 김도현, 그리고 첼로의 이유빈이 무대에 올랐다. 오늘의 마지막 무대였다. 영상으로 많이 뵈었더니(줄라이, 연주 영상 등) 약간 아는 분들(?) 같다.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는 예습할 때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당신은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아시는가? 총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프랑크의 2악장이 워낙 화려하고 뭔가 대미를 장식할 것 같은 착각을 주는 곡이라, 금호아트홀 같은 공연장이 아니고서야 악장 간에 관중의 호응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곡이다. 이 곡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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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

시작부터 내달린다. 피아노가 선두를 막 이끌면서, 현악기와 함께 휘몰아치는데 미묘하게 개성적이고 드라마틱한 감정선을 확—이끌고, 서정성의 길을 내달린다. 거기다 곡 진행 타임도 10분은 되기 때문에 착각하기 십상이다. 그만큼 시선을 확—, 집중도를 확—끌어와 주는 재미가 있다.


사실 이 곡에서는 정주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유심히 관찰했다. 대부분 현악 4중주나 트리오 무대에서 주로 만나 뵈었기 때문에, 이 연주가만의 색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근데, 1악장은 듣기 바빴다. 멘델스존의 선율이 내 집중력을 다 앗아갔다.


김도현 피아니스트는 물방울을 튀어 오르게 하는 데 능하신 분인데, 그 새카만 어둠 속에 피어나는 건반과 이유빈 첼리스트의 짙지만 무겁지 않은 소리색이 합쳐지니까 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근데도 일순에 보이는 건 정주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샛노란빛의 은은한 여유겠다.


연주자들이 무대를 즐기는 모습, 온난한 미소, 서로 시선이 오가는 장면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즐기는 자들’을 앞에 두고 어찌 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기다 페이지터너(악보를 넘겨주는 사람)로 최송하 바이올리니스트께서 깜짝 출현해 주셨는데, 어찌나 집중하시는지, 멀리서도 그 진지함이 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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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2악장

멘델스존적인 기쁨을 잔뜩 향유하고 있는 와중에 2악장이 시작되었다. 큰일이었다. 요새 마음이 너무 열려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피아노가 밑바탕을 지켜주는 사이에 바이올린과 첼로가 위와 아래로 차분히 다가온다. 거기서 마음의 둑이 툭—무너졌다. 

 

갑자기 그냥 파도가 확 들이쳐 와서 어찌 뭐 말릴 틈도 없었다. 오늘 화장 잘돼서 좋았는데, 나만의 울음 방지 신호(짜장면, 마라탕, 탕수육)를 사용해 봐도 금방 사그라들 방울이 아닌 것 같아서 남몰래 티슈를 넓게 펼쳐 흘려둔 걸 남몰래 감췄다. 왜 울었는지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연주 장면도 잘 생각이 안 난다. 눈앞에 뭐가 씌인 틈이 아니었던가.


한 가지 추측해 보자면, 정주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소리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적이었다. 서번트 리더십이 무슨 뜻인가. 겸손하면서도 영향력 있는 부드러운 리더라는 뜻이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다정한데 그 안에 단단한 심이 딱—지켜주고 있다.


피아니스트의 밤하늘과 연보라빛 라일락을 닮은 첼로와 함께 만나니, 그냥 눈물 방울이 퐁—퐁—....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바이올린 리사이틀 이후로, 갑작스럽게 마음을 뚫고 들어온 서정성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퐁—퐁—.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조금 슬프다.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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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악장

그러다 이 3악장의 밀착감이 나의 눈물샘을 딱 막아준다. 약간 분위기가 업되는 시점에 남몰래 눈물을 슈슉—훔쳐내고 무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 밀착되고 텐션 있고 서스펜스적이고 재밌는 순간. 정주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짝-짝-짝-짝’ 활과 현 위에서 점프해 줄 때, 무한대의 소리 흐름을 그어 나갈 때, 세 악기가 하나가 되어 망설임 없이 진출해 나간다.

 

4악장

아, 3악장보다는 속도감을 내려놓고, 여유를 가질 때다. 그렇다고 막 내려앉았다는 건 아니다. 이 ‘웅—’ 하며 현악이 아래로 웅덩이를 파내려가는 듯한 이 표현, 누가 개발했을까?


멘델스존은 좋겠다. 이런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있고, 스스로 펼쳐낼 수 있어서 부러울 지경이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꼭 클래식 천재 작곡가로 태어날 것이다. 1악장과 2악장이 합쳐진 듯한 4악장이다. 서정적인 곡이 힘을 가진다면, 분명한 방향성 안에서 논해질 수 있다면 바로 이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간에 바이올린이 아리아하듯 연주하는 구간이 있는데, 또 따뜻해—이럴라고 온 게 아닌데 하면서 티슈를 눈밑에 붙였다. 이 연주회에서 우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아서 약간 민망한데, 눈물 퐁퐁을 어떻게 막나. 


멘델스존은 아무리 생각해도 반칙인 것 같다. 바이올린 협주곡도 한참을 듣고 있는데, 이젠 피아노 트리오까지 껴들었다. 망설임 없이 뚫어버리는 흐름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게 감동적이다. 서사적으로 아래에서 위로 쭉—타고 오르는 마음이 곳곳에 피어난다.


매번 곡의 말미에는 아쉬워하느라 애태우기 바쁜 나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 주니까, 또 퐁퐁—이다. 클래식이 이렇다. 이렇게 감정적인 장르다. 특히나 나같이 우둔한데 예민한 사람들한텐 너무 강력하고 온화한 자극이다. 


 

 

5. 끝내며, 다시 로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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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오늘의 연주자들을 기다리는 인파가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웬만하면 그냥 가려고 했는데, 반드시 오늘의 멘델스존 2악장이 너—무 좋았음을 전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냅다 앞에서 기다렸다. (칭찬은 양껏 해야지, 삼키면 안 된다) 꼭 얼굴을 보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눈물 퐁퐁—...


사람도 많고 정신도 없었지만, 용기 내어 기다린 덕에 예상치 못한 기쁨도 있었고, 생각지 못한 선물도 있었고, 긴 마음도 짧게나마 건넬 수 있어 기뻤다. 기쁘다는 게 뭘까? 마음에 즐거운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해볼까? 내 안에 얇은 곡선 하나가 꾹—그려진 것이다. 왼쪽 아래에서 시작해서, 포물선을 오른쪽 아래로 그려내어 멀지 않은 위치에서 잠시 멈춰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소리 없이 빙긋 웃는, 미소다. 

저런, 저거였네. 뭐가 말이냐고?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딱, 예감이 있었다. 오늘, 좋은 하루가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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