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아이들이 나오는 영상을 자주 보고 있다. <왔다! 내 손주>와 같은 정규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브이로그 같은 것들을. 그중에도 특히 애정을 갖는 채널은 독일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유라 님이 운영하는 <주라의 독일로그>다. 독일에서 살아가는 생활을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또 자신의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만든 그 채널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남편 마티아스 님과 딸 리나다.
세 가족의 단란하고 다정한 일상은 언제든 마음을 편안히 해준다. 그중에서도 리나의 등장은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실제 주변인을 비롯해 지구 반대편의 나에게도 무조건적인 기쁨을 전해주고 있다.
세 가족의 이야기는 내가 그동안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삶의 좋은 면을 알려주었다. 가만히 품에 안겨 방싯방싯 웃던 아기가 어느덧 자기 힘으로 놀이기구에 앉아 손을 흔들 수 있을 정도로 자랐을 때의 기쁨을, 엄마와 아빠를 보고 함박 웃는 해사한 얼굴을, 엄마 아빠의 품에 안기듯 힘들 때는 자기 힘으로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든든함을. 주변인들에 비해 소소한 행복도 자주 느끼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당연히 좋으리라 생각했던 풍경 속에서 새로운 모양의 행복을 발견할 때면 뜨거운 것이 아래로부터 가슴을 채우는 것 같다.
그래도 유난히 인상 깊은 장면은, 또 일상적인 것. 영상을 찍고 있는 엄마가 무어라 얘기하자, 똑똑하게도 재치 있는 대답을 하고 꺄하 웃는 리나의 얼굴이다. 그 맑고 커다란 눈동자가 눈꺼풀에 가려져 순수한 곡선을 만드는 장면을 떠올린다. 눈동자가 너무 맑고 깊어서, 그런데 그 의미는 순수하리만큼 분명해서 가끔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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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언젠가의 일을 생각한다. 버스를 기다리며 도롯가에 서 있었는데, 웬 갈색 개가 목줄도 보호자도 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렇게나 큰 개라면 떠돌이 개는 아닌 것 같고, 누가 잠시 놓쳤나보다 싶었다. 개는 경계심도 없이 나를 바라보며 우아한 발놀림으로 다가왔다.
나는 말이 통하지도 않고,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동물을 낯설어하는 데다 그들과 같이 생활해 본 경험도 없었다. 보호자를 놓친 개를 마주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좋은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바로 옆은 여유도 없이 수 대의 차가 내달리는 도로. 개가 혹여 차도로 뛰어들까 걱정이 되어서 팔과 다리로 차도를 가로막고 선 뒤, 누구 개를 찾는 이가 없나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으레 사람들이 하는 방식을 따라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털이 피부에 감겨 인간과는 너무나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 곧이어 개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말도 통하지 않지만 알 수 있었다. 깊고 맑은, 너무나도 순진하고 순수한 저 눈에는 아무런 악의도 없고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골몰히 고민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그것이 우리의 눈이 담고 있는 의미와는 너무도 다르도록 깨끗해서, 나는 그 개와 헤어지고 나서 또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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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가 보여주었던 눈을, 이제는 아기 리나에게서 본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직선으로 바라보는 눈 속에는, 사사로운 악의도 없고 때에 타 지저분해진 마음 같은 것도 없다. 그것에 나의 하루가 위로받는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자기는 당연히 갖고 있는, 그 맑은 눈동자가 내게도 무언가 깨닫게 하고 감동받게 한다면.
진심이 아닌 감정을 보일 때마다, 의례적인 미소를 짓고 예의상 눈꺼풀을 접어 웃을 때마다 그런 눈을 떠올린다. 거짓 없이 사랑하는 눈을. 이 세상에 그런 것도 선사되었다고 한다면, 그 일부분을 나도 나눠볼 수 있다면 더없는 감동이 된다.
...그렇게, 어떤 사랑은 눈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