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을 향유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로운 점을 알기 때문이며, 그 영향력이 위대하다는 걸 몸소 경험한 적이 많아서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문화예술이며 그 몫이 크다.
이를 아트인사이트에서 활동하면서 다시금 되새기는 날이 많았고, 새로운 이로운 점을 발견한 순간도 많았다. 최근에 발견한 것은 오랜 취향이나 편견을 뒤집는 힘이 있다는 점이다.
미술 시간을 피하고 싶었던 어린 내가 성인이 되어 한 번의 전시 관람 경험으로 미술에 관심이 생겼다. 그 후, 기회가 될 때마다 전시회를 관람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내 방식대로 작품을 감상하며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의 발전을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아트인사이트를 만나고, 미술과의 관계가 발전할 기회를 마주했다. 처음엔 주저했지만, 용기 내 그 기회를 잡은 덕에 점점 발전했다. 거북이 속도로 여전히 발전 중이지만,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매우 크다. 약간의 지식이 생겼고, 나만의 관람 방식도 다양해졌다. 안목이 높아졌고, 미술 재테크에도 관심이 생겼다. 무엇보다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많이 올라갔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나와 미술의 거리가 이만큼이나 좁혀졌으며, 앞으로도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게.
음악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듣는 것부터 악기 연주까지 관심이 많았다.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 리스트에 음악감상이 속해 있다. 카페에 가면 먼저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며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꼭 검색하여 플레이리스트에 넣는다. 클래식, 피아노곡, 대중가요, 인디, pop, jpop, 중국음악까지 장르별로 한때 빠져 지냈던 시기를 지나오기도 했다. 장르마다 빠져 지낸 시절이 있던 만큼 장르를 가리지 않는 편인데도 싫어하는 장르가 딱 하나 있었다. 록이었다. 록발라드는 괜찮아도 록이라면 듣기 전부터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랬던 내가 어느 뮤직페스티벌을 다녀온 후, 180도 달라졌다. 다른 장르를 대할 때처럼 일단 들어보자는 심리가 생겼다.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주관이 뚜렷하기에 변화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문화예술 향유의 이로운 점은 그것마저 뒤집어놓았다.
오랜 취향이나 편견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 이 점을 이용해 보려고 재즈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내게 재즈는 즉흥연주라는 점은 매력적이지만, 뭔가 어려움이 느껴지는 장르였다. 가까워지고 싶지만, 자꾸만 멀어지는 관계 같았다. 어느 날, 우연히 재즈 공연을 보게 되었다. 잠깐이었지만, 집에 가는 길 내내 여운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재즈 특유의 우아한 감성이 유니크했고, 그 점이 매력적이었다. 집에 돌아와 재즈곡을 검색해 들어보았다. 그러나 우아한 감성은 느껴지기는커녕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결국 음악을 꺼버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재즈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하면 가고 싶었다. 내면에서는 재즈의 우아한 감성에 감동했던 순간과 포기했던 순간 사이에서 고민했다. 결국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재즈페스티벌에 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새로운 이로운 점을 만나면서 용기가 생겼고, 마침 기회가 생겨 재즈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의 첫인상은 모든 게 잘 짜인 페스티벌이었다. 공연장까지의 동선을 활용한 마케팅, 프로그램, 공연 진행 방식 모두 MBTI J가 짠 것처럼 체계적이었다. 일단 서울숲역 3번 출구에서 공연장으로 가려면 언더스탠드에비뉴를 지나야 한다. 폐컨테이너를 활용한 가게들이 있었으며, 플리마켓이 진행되고 있었다. 입구 쪽에는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김치전과 야채전, 소떡소떡을 즉석에서 조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 부치는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김치전을 구매했다. 그 뒤로 핸드메이드 소품들과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곳도 있었다. 핸드메이드 소품은 액세서리, 뜨개실로 만든 잡화류, 그릇, 디퓨저 등 다양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소품들이 많아서 걸음마다 멈춰 서서 구경했다. 상호를 보니 청년이 많아 보여 검색해 봤다. 알고 보니 언더스탠드에비뉴는 창조적 공익 문화공간이며, 청년 창업가와 사회적약자에게 일자리 창출을 하는 곳이었다. 매년 130만 명 이상이 찾는 곳인 데다 나는 성동구 주민인데, 언더스탠드에비뉴의 존재를 그날 처음 알았다.
나처럼 이곳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은 이번 기회로 알게 되고, 구매로 이어지는 것까지 기똥찬 동선이었다. 한편으로는 청년 또는 사회적약자의 핸드메이드 작품을 만나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야무지게 기획한 마케팅 이전에 뮤직페스티벌의 즐길 거리로 느껴졌다.
프로그램은 체험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울숲 곳곳에 숨은 사슴 책갈피를 찾아오면 책갈피 제공, 영수증 사진찍기, 끈 갈피 만들기도 있었는데, ‘Nature, Music & Love’ 슬로건과 어울리는 프로그램이었다. 브랜드 팝업 부스 역시 체험 위주였다. 다른 뮤직페스티벌에서 경험했던 것과 비슷했지만, 경품이 모두 실용성 있고 푸짐하다는 점이 달랐다. 평소 애용하던 제품도 받아서 좋았다. 한 부스에서는 SNS 팔로우만 해도 퀄리티 높은 와인안주 박스를 줬고, 게임 성적이 좋지 않아도 독특하고 맛있는 팝콘을 제공했다. 두 손 가득히 챙긴 유용한 경품과 안줏거리에 마음까지 두둑해졌다.
이번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의 컨셉은 ‘Nature, Music & Love’였다. 나는 여기에 ‘Together’도 포함하고 싶었다.
다른 뮤직페스티벌과 다르게 개인이 싸 온 도시락 말고도 외부음식반입이 가능했다. 배달 음식도 가능해서 한강공원처럼 배달픽업 존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성수동 맛집에서 음식을 포장해 온 관객도 많았다. 단, 다회용기를 사용해야 하므로 해당 부스에서 다회용기로 바꿔 입장하면 된다. 여기는 뮤직페스티벌 내에서 준비한 푸드트럭만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게 아니라, 주변 매장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이야기한 언더스탠드에비뉴 마케팅 방식까지 모든 게 상생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서울숲뿐만 아니라 성수동 일대를 누비며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었다. 마치 성수동의 동네 축제처럼 느껴졌다.
관람 방식에도 ‘Together’가 있었다. 무조건 캠핑 의자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다른 관객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피크닉존을 따로 만들어 허용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펫존이었다. 따로 마련된 펫존에서는 1주인 1반려동물을 허용하여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단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매너와 규칙을 지키면서 자유롭게 그리고 모두 함께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평화로워 보였다.
스테이지는 정면에 선셋 포레스트 무대와 뒤쪽에는 디어 디어 무대가 있었으며, 무료로 볼 수 있는 가든 시어터 무대까지 있었다. 티켓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도 볼 수 있다니, 하나부터 열까지 ‘Together’였다.
라인업은 신예부터 거장까지 다양했지만, 재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는 모두 낯설었다. 스텔라장만 빼고 모두 처음 만나는 아티스트였다. 여기서 ‘처음’을 잘 이용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최대치의 호기심과 설렘이 담겨있고, 순수함이 있다. 이 점을 활용하여 관람했다. 여기에 라이브라는 점까지 더해져 귀가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재즈만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팝업 부스에서 체험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우렁찬 악기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보니 흰색 티를 입은 남녀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어노잉박스의 퍼레이드 공연이었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번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은 서울숲 안에서의 페스티벌이 아니라 성수동 일대를 무대로 꾸몄다고 한다. 이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퍼레이드를 보고 싶어서 개막일인 전일에 성수동에 갔었다. 하지만 비가 와서인지, 타이밍을 못 맞춘 것인지 퍼레이드를 볼 수 없었다. 비록 바라던 성수동 일대가 아니었지만, 서울숲 안에서라도 퍼레이드 공연을 봐서 다행이었다.
어노잉박스 주위에는 이미 관객들이 몰려 있었다. 성수동에서부터 따라온 건가? 생각이 들면서 부러웠다. 어노잉박스는 서울숲 입구에서부터 연주하며 걸어가다가 선셋 포레스트 무대와 디어디어 무대 사이쯤에 자리를 잡고 공연을 이어갔다. 어느새 어노잉박스 주위에는 관객들이 빙 둘러서 관람하고 있었고, 그 속에 우리도 있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자유롭고 활기찬 광경. 로맨틱하고 열정이 넘치는 광경. 그 광경 속에 우리도 속해 있어서 기뻤다. 순간 울컥했다.
어노잉박스의 퍼레이드 공연이 끝나고 끝인사를 하고 퇴장하는 걸 보고 돌아서려는데, 발길이 움직이지 않았다. 퇴장하는 어노잉박스의 뒤를 따라가는 관객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어릴 때 봤던 동화 속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서울숲에서 실제로 만났다. 이제 내 머릿속에는 어노잉박스=피리 부는 밴드로 각인되었다.
유일하게 아는 아티스트였던 스텔라장의 무대를 볼 때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처음 스텔라장의 음악을 접했을 때 흔하지 않은 목소리와 분위기를 가진 아티스트, 몽글몽글한 감성이 돋보이는 곡들, 로맨틱과 톡톡 튀는 매력이 어우러진 음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플레이리스트에 곡을 담아 한동안 무한반복을 했었는데, 들을수록 폭닥폭닥한 촉감이 손이 아닌 귀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만큼 스텔라장의 라이브를 매우 궁금해하고, 기대했었다.
실제로 보고, 들은 스텔라장의 공연은 기대 이상이었다. 스텔라장이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 그리고 목소리와 재즈가 잘 어울렸다. 서울숲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든 것 같았다. 나는 무대 사이드쪽에 서서 관람한 덕에 선셋 포레스트 무대 앞의 관람석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스텔라장의 음악을 들으며 드넓게 펼쳐진 잔디, 돗자리 위의 와인과 와인안주 (재즈페스티벌이라 와인을 가져온 사람이 많았는데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누워서 재즈를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까지 눈에 담았다. 배터리 충전하듯 행복감이 차올랐다. 괜스레 목이 메었다.
전자공방×난아진의 공연도 기억에 남는다. 디어디어 무대에서 진행되었는데, 뒤쪽에서 열린 작은 스테이지였으나 관객들이 꽤 많이 있었다. 일렉트로닉과 클럽 사운드의 감각으로 독창적인 음악을 보여주고 있는 전자공방과 시원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지닌 보이스와 실력을 겸비한 보컬리스트 난아진의 콜라보레이션 무대였다. 난아진 특유의 보이스가 전자공방의 음악이 잘 어울렸다. 오래도록 한 팀이었던 것처럼 호흡도 잘 맞았다. 전자공방×난아진의 공연은 흥을 돋우는 곡이 많았다. 서서 리듬을 타던 관객은 어느새 신나게 뛰며 즐기고 있었다. 재즈는 정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습을 보며 편견이 깨졌다. 재즈도 댄스나 힙합처럼 신나게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갑자기 중간에 비가 와서 우산이 없는 우리는 서울숲에서 빠져나왔다. 집에 가려고 했으나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고, 일단 비를 피해 파라솔 밑에서 기다려봤다. 그러다 비가 그친 것 같다는 소리가 들려와 재빨리 손을 뻗어 보았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우산도 샀으니 이 정도의 비라면 관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둘러 우산을 쓰고 재입장했다.
디어디어 무대에서는 피달소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저녁 하늘 그리고 서울숲과 어울리는 선율에 자리를 잡고 관람했다. 피아노의 선율과 관악기의 조화가 서울숲 그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저녁 하늘과 참 잘 어울렸다. 더구나 피아노와 관악기의 합주를 좋아했던 사람이라 더 집중해서 관람했다. 내 앞에 서 있는 관객들과 무대를 함께 바라보면서 평화로운 낭만이 느껴졌다. 곳곳에서는 사랑이 피어올랐다. 손을 잡은 연인, 어깨동무한 연인, 아주 짧은 입맞춤을 한 연인, 팔짱을 낀 연인들을 뒤에서 바라보는데 그들의 사랑이 내게도 전해졌다. 괜스레 외로워져서 화장실에 다녀온 그에게 왜 이리 오래 걸렸냐며 타박했다. 재즈와 사랑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비로소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보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공연도 있었다. 선셋 포레스트 무대에 올랐던 마이크 스턴 밴드의 무대였다. 연주 실력, 개성 있고 몽환적인 보이스, 귀에 꽂히는 멜로디에 감탄했다. 더 놀라운 것은 고령에도 흔들림 없는 열정적인 무대였다. 알고 보니 Guitar Player 매거진도 인정할 정도로 재즈기타의 거장이다. 내한 공연을 할 정도로 한국 팬들도 많다. 퓨전 록 재즈의 아이콘이기도 하며, 거장들과의 협연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는 옐로우자켓의 베이시스트 지미 하슬립과 드러머 스티브 프루잇, 색소포니스트 밥 프란체스치니 그리고 그의 아내인 레니 스턴과 함께 공연했다. 무엇보다 잉꼬부부의 호흡을 라이브로 보게 되어 영광이었다.
마이크스턴의 재즈 기타연주에서는 그의 여정이 느껴졌다. 음악과 함께한 삶의 여정과 연륜이 연주에 그대로 드러났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깊이였다. 공연 내내 존경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잔디 위에 앉아 넋을 놓고 관람하다 보니 금세 공연은 막바지로 향해갔다. 마이크 스턴 밴드의 공연은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넘쳤다. 다른 관객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여기저기서 앵콜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쉬움에 울컥하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공연장에서 나왔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당시에는 그 미련이 공연에 대한 미련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재즈페스티벌을 향유한 시간에 대한 미련도 있었다. 즉흥연주에서 오는 자유와 여유 그리고 재즈의 감성, 서울숲, 곳곳에 스며 있던 ‘Together’까지 결이 비슷한 것들이 모인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우아하고 평화로운 낭만과 사랑이라는 재즈의 감성이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행복감도 있겠지만, 재즈가 건네는 위로에 관람하면서 몇 번이나 울컥했던 듯하다.
이틀 후, 마음에 들었던 아티스트를 검색해 음악을 들어보았다. 이번에는 중간에 음악을 끄지 않았다. 끝까지 들어본 후 마음에 드는 곡들은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문화예술 향유의 이점을 이용하기는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