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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정재은 감독의 첫 에세이 <같이 그리는 초상화>는 그의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의 작업 과정을 담아낸 회고록이자 창작에 관한 생각을 함께 담아낸다. 극영화로 데뷔한 정재은 감독은 건축과 공간,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영역을 전개하고 있으며, 건축의 유산이나 지식만을 다룸이 아니라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건축의 본질에 침투하려 한다.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각자 다른 꿈을 꾸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도 하며 보내는 그저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20대의 초반을 그린다. 웃음만큼 노동과 사회의 단면이 거칠게 얼굴을 내미는 정재은 감독의 세계를 단순히 청춘 영화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그가 다큐멘터리스트로 활동을 하게 된 행보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왜 다큐멘터리이고, 건축이었는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책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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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는 당시 대장암 투병 중이던 건축가 정기용의 모습과 그의 건축 세계를 취재하며 시작했다. 정기용은 거주의 의미, 즉 공간의 본질과 인간(사용자)에 대한 균질하고 꼼꼼한 탐구를 해나간 건축가이다. 또한 서울 건축학교, 녹색 대학, 책 읽는 사회 만들기 등 많은 사회 활동을 이어가며 건축 문화 전반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책에서 언급된 대로 ‘건축가를 표방한 인문학자’라는 표현에 걸맞다. 그가 작고한 후 2013년 과천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진행한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의 기록을 만났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일민 미술관 자료가 기증된 후 선보인 전시이다. 한 사람의 궤적이 아카이브에 가까운 양상을 보인다는 것. 그가 건축가만이 아닌 활동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기획과 설계, 생각을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책 속에서도 일민 미술관 전시를 위한 작업 과정이 소개된다. 손이 성치 못하면 말로라도 책을 써내는 그 빼곡함을 어떻게 비집고 들어갔을까 궁금해진다.


정재은 감독은 건축가 정기용을 출연자로 추천받고서 방문한 무주의 건축물에 대해 을씨년스러웠던 감상을 솔직하게 남긴다. 정기용은 전라북도 무주에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서른여 개의 건축물을 작업했다. 흙 건축같이 생태 지향적 건축에 관심이 많던 그에게 농촌 지역의 공공 건축 프로젝트는 뜻깊은 의미였을 테다. 하지만 그 의미와 무색하게 취재의 입장에서 무주의 모습은 ‘저예산 독립영화’였다고 밝힌다. 어리숙하고 볼품없는, 그 건축물들을 보며 무주에 의미를 부여해 보려 애쓴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출연진 선택에는 아마 그 본질에 대한 궁금증, 정기용보다도 무주에 대한 정재은 감독 본인의 탐구 본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직업적 성취보다도 다큐멘터리에서 다루고 싶은 인간적인 매력을 포착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다큐멘터리스트 정재은의 시작은 상업 영화의 시스템에서 탈피하려는 것이었지만 그가 작업하는 공간과 경험, 시간을 거치며 변화하는 양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것이었다. <고양이를 부탁해> 속 인천의 모습, 아이들의 집과 거리 모습은 보편성으로 가지면서도 그 캐릭터만의 정서를 온전히 품고 있어서, 이미 그의 다큐멘터리는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다큐멘터리와 글을 접했을 때 여전한 중추를 느낀다. 인간과 공간의 레이어를 겹겹이 헤쳐나가는 동시에 사회적 시선을 떼지 않는 집념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 사이의 기간 동안 정재은 감독이 픽션에서 논픽션을 작업하기까지에는 명확한 서사와 용기가 있다. 영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대한 염증을 느끼며 그의 말대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일, 우연적인 요소에 더 열려 있는 창작의 현장. 조금 더 깊은 인간적인 관계가 가능한 일’을 찾았고, 그것은 다큐멘터리였다. 어쩌면 앞선 세 가지의 일과는 딴판일지도 모르는 것이었지만 그에게는 리얼리티가 필요했다. 진짜 같은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담아내는 일이.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채로 피사체를 따라가게 될 수가 있다. 안전한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채로 상황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이 걱정되었다. 타인의 삶을 창작의 재료로 삼는다는 것은 분명 신비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낯선 파도에 나를 던져보는 위험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평생 가보지 않은 길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책은 정재은 작가의 에세이이자 정기용 건축가를 카메라에 담은 과정을 반추한다. 다른 시공간의 두 인물이 주연인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정기용과 그의 작업을 조명한 영화가 있었다면, 과거에 멈춰 선 정기용과 이제는 더 많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가는 현재의 정재은이 책 속에서 만나 차분히 말을 내놓는 모습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둘의 관계와 태도는 주체와 객체가 아닌 상호 보완적으로도 느껴지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과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 간의 아슬한 긴장감이 감지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긴장감은 오히려 독자를 끌리게 만든다. 전혀 모르는 이를 만나 그 삶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건 어쩌면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동시에 원초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더듬더듬 플롯이 나타날 때까지 깊은 동굴로 들어간다는 과정이 경이롭다.


“자신을 내향인에게 낯을 가린다고 소개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요즘, 낯선 인물을 만나 모험을 강행하는 다큐멘터리스트의 삶이란 마치 청동기 시대의 그것처럼 보일 만도 하다.”


그럼에도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완전히 살아있고 연출할 수 없는 산발적인 장면들을 찍고 그것들을 한 가지의 맥락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자 능력이다. 수천 가지의 플롯을 내놓을 가능성 속에서 단 한 가지의 줄기를 뽑아내고 곁가지는 툭툭 털어낸다는 건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독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두려움에 대한 마음도 책에 담겨 있다. 무엇을 찍는지 모르겠다는 혼란, 누군가의 삶의 일부를 편집한다는 우려가 분명 작업 과정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찍는다. 개입하지 않고 묵묵히 찍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년 반 동안 출연자의 일터를 취재하고 따라가고 인터뷰한다. 우리는 관객으로 그가 뽑아낸 하나의 줄기를 따라 몸을 맡기지만 찍고 만드는 이들은 그 이외의 것들에게 더 많은 애착을 느낄지도 모른다. 삭제하고 편집하는 수많은 장면이 끝없는 자기반성과 후회를 만들어 낸다.


“극 영화에서는 삭제 장면이라고 하겠지만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삭제 장면이라는 개념이 적당하지 않다. 쓰이지 않는 푸티지가 워낙 광범위해서 잘 맞는 표현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표현이 ‘다른 플롯의 조각들’. 다른 이야기가 시도된 흔적을 다른 플롯의 조각들이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촬영 시간 동안 찍었을 수많은 장면 중 아무리 좋다 한들 정해진 플롯에 맞지 않다면 쓸 수 없다. 맥락에 맞춰 이야기를 깎아 만드는 것처럼 소모적이고 힘겨운 일이다. 그 순간을 찍는 순간만큼은 관객이 보는 것보다 훨씬 크게 경험할 테다. 하지만 그것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고 후에 편집해 내는 것은 더 중요하다. 정재은 감독은 그 지점을 직접 부딪치며 배운다. 극영화와 다른 과정과 방법을 겪으며 스스로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플롯의 조각들이라는 표현은 모든 결정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무엇을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으로 시작하는 모든 삶의 가능성이 어딘가 다른 플롯의 조각으로 우리 삶 곳곳에 남아있다. 그건 잘못된 것도 아니고 그저 일어났고 필요한 일들일 뿐이다. 수많은 후보 중 하나를 살게 되며 쌓아가는 것. 그게 인생이고 그것을 담는 게 다큐멘터리의 묘미가 아닐까.


“현실에서는 어떤 일이 늘 발생하고 있다. 내가 결정한 적 없는 삶의 사건들이 늘 발생하고 있고 그것이 작품의 서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중략) 현실에는 우열이 없다. 하지만 때로는 현실이 가진 상투성에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이 가진 이미지의 초월성에 감탄하기도 한다. 무주 추모의 집은 나에게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가 흐릿해지던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우리는 진짜를 찾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에서도 인간은 무언가를 편집하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상이 아닌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은 그 책임감과 기묘함 사이에서 환멸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재은 감독이 느낀 것은 환멸보다는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에 가깝게 느껴진다. 어떤 짜여진 내러티브보다 일관된 이야기들을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린다. 정재은 감독이 무주 추모의 집을 방문해 만난 사람들은 그 순간을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로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스스로 프레임 안으로 걸어들어와 자신의 이야기를 두고 간다. 추모의 집이라는 공간이 가진 특수성과 인간의 순진한 면이 상호 작용한다. 정재은 감독이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은 신비롭다. 짜여지지 않고 실재하는 이야기라는 단순한 사실이 오히려 감정을 극대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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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의 서술을 통해 정재은 감독의 작품을 이해하게 되면서도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에 구체성을 더한다. 영상물인 다큐멘터리가 더 선명한 이미지와 서술을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여백으로 남겨진 지점들을 책에서 보충하고 덧대어낸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에세이인 동시에 회고록이고 그 동시에 다큐멘터리다.


정기용의 건축물을 본 적이 있다. 무주 산골 영화제로 방문한 등나무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각자 돗자리를 깔고 등을 기대며 머리 위 우거진 등나무를 보며 노곤하게 바람을 맞으며.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오래된 건축만의 아늑함을 느꼈다. 정기용 건축가가 초여름 무주의 모습을 보았다면 분명 즐거워했을 것이다. 그가 말하고 실천한 공공 건축은 그를 이해하고 싶은 수많은 이들을 통해서 또다시 재탄생하는 중이다. 이제 건축물들이 대신 입을 열어줄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정재은이 있다. 정재은 감독은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없다고 썼지만, 그의 첫 에세이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에서 결국 자신과 다큐멘터리 간의 연결성을 단단하게 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보여낸다.


출연자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이야기를 하는 장을 끊임없이 열어가는 감독으로서의 모습과 태도가 결국 다큐멘터리를 통해 변화되는 무언가를 증명해 낸다. 정재은 감독은 픽션과 논픽션을 모두 경험해 보면서 오히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픽션을 비추는 논픽션, 논픽션을 비추는 픽션의 구조화 해간다. 마치 그가 처음 정기용을 만났을 때 한 “거울이 나를 따라다니는 건가? 내가 보여주기 싫은 것도 보고야 마는 거울이?” 말처럼 말이다. 그 사이를 정재은은 고민하고 두들겨보며 끝의 끝까지 자신의 선택을 돌이켜본다. 수천만 번 소화하면서 바라보게 된 출연자를 곱씹는 그의 모습에서 독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동시에 애틋함이 읽힌다.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고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건축가 정기용의 건축이 그랬듯, 이 책은 독자에게도 ‘어떻게 나의 세계를 기록하고 연결할 것인가’라는 사유를 남긴다. 고민하고 회고하는 그 모든 과정이 아름다운 동시에 괴롭다. 책에 담긴 정기용의 건축과 작업부터 그의 삶, 그 주변 인물들까지 마지막 편집을 끝내기까지의 고민들을 담는 솔직한 정재은 감독의 말들이 그래서 더욱 무게있게 다가온다. 결국 어떻게 만들 것인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 라는 고민. 그 치열함이 작용하는 끝은 어디일까. 복합적인 고민과 시간이 켜켜이 쌓인 에세이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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