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변환]풍경.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30125322_xnsiuqey.jpg)
잘 지내지? 안부를 물은 지 좀 오래된 것 같아. 편지는 더더욱 그렇고.
편지는 참 무섭지. 베일에 꽁꽁 싸인 진심을 단번에 꺼내놓게 하잖아. 이 편지를 쓰려고 앉자마자 마치 고해성사를 하러 온 신도의 마음이 되어버렸어. 물론 난 종교가 없으니, 고해성사를 해본 적도 없지만.
종교도 없는 내가 웃기게도 요즘 회개의 시기를 갖고 있어. 내가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면서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러기 위해선 모두에게 미안함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 너도 그중 하나이고.
그래,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었던 지난날들에 대해서. 나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하고, 날 좋아하는 마음들에 대해선 배려가 부족하잖아.
타인에게 가장 무자비했던 순간에 너를 만났다는 것이 괴로웠어. 살면서 후회는 절대 안 하기로 약속했는데 너희를 대하는 모든 일들에는 늘 후회가 남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어릴 땐 누군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요즘은 그런 내 사랑 방식이 조금 끔찍하게 느껴져서 고민이야. 너도 알듯이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괴롭히잖아.
그래서 요즘은 모든 사람 사이에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너무도 실감해. 슬픈 건 난 지금도 여전히 그 거리 감각이 부족하다는 거야. 얼마나 더 깨지고 다쳐야 그 거리를 한눈에 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어서야 사람마다 애정을 주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걸 알았어. 그동안 네가 주는 사랑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너무 답답해. 시간을 돌려 다시 돌아가서 네가 주는 사랑의 형태를 찬찬히 찾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역시 수많은 사랑의 형태 중에 내 것이 가장 별로인 것 같아. 애초에 난 그동안 너를 사랑했던 게 맞을까? 내 방식대로 널 정의하고 맘대로 결론지었던 날들이 생각나. 그때 난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널 괴롭히고 있었다는 거지. 문득 이 결론마저 나의 독단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생각이 방금 스쳤네.
뭐든 이제는 그만 괴롭히고 싶어. 너를, 너희를, 앞으로 만나게 될 그들을. 그럼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겠지? 자신이 없어. 또 어떤 존재로부터 나를 보고, 그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정의하고, 기어이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괴롭히게 될까 봐.
이토록 혼란스러운 편지라니. 무엇 하나 정의하지 못한 것들을 너에게 떠넘긴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기도 하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쓰지 않으면 영영 내 마음을 전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떤 오염도 없이 온전히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부디 잘 지냈으면 좋겠어. 둥글고 부드럽고 따뜻한 것들에 둘러싸여 뾰족한 것이 너를 찌르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편지 쓸게. 잘 있어!
2025년 8월 30일
회개하는 마음으로, 효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