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9와 80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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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운 좋게도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광복 80주년 기념 음악회를 예매 오픈 직전에 알아챘다. 첫 시도는 서버에 막혔지만, 두 번째에는 운 좋게 티켓을 얻었다. (음하하)
떠올려보니, 딱 1년 전인 2024년 8월 15일에는 서울시향의 광복 79주년 기념 음악회 리허설을 관람했다. 묘하게도 1년 간격의 수미상관. 그때의 나는 무엇을 느꼈더라?
그날의 선율은 하나의 바람이었다.
분홍빛 바람.
흐름 속엔 해질녘 노을이 있었고, 오렌지빛 태양 아래 발코니의 두 남녀가 겹쳐졌다. 북의 경쾌한 리듬을 팝콘 튀기는 소리 같다고 하던 친구의 말이 오래 남았다.
본 공연이었다면 건네지 못했을 감상을 그 순간 함께 나눌 수 있어 더 좋았다.
잊고 있던 하프의 등장은 정신을 맑게 했다. 제1바이올린과 어우러진다.
리허설이었기에 인상적인 대목을 한두 번 다시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기쁨이었다.
2024년 8월 15일
서울시향 광복 79주년 기념 음악회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중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더 널찍한 상상 속에 머물렀다. 요즘은 어떤가? 지금은 전체보다 개인, 기교보다 ‘소리’에 더 집중한다. 관찰의 방향이 세밀해졌다는 것도 이제야 깨달았는데, 벌써 1년이 지났다. (시간 참 빠르다)
작년에는 친구와 함께 DDP에서 공연을 보았고, 올해는 가족과 함께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한 해가 바뀌고 무대가 달라져도, 내 앞에 놓이는 질문은 늘 같다.
오늘 무엇을 느낄까?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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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울시향 광복 80주년 기념 음악회는 최수열의 지휘로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거문고 연주자 오경자가 협연했으며, 프로그램은 말러 교향곡 제5번 〈아다지에토〉, 라벨 〈피아노 협주곡〉, 정대석의 거문고 협주곡 〈수리재〉,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2번(3·4악장)으로 구성되었다.
앙코르는 그리그 〈두 개의 슬픈 선율〉 중 〈지나간 봄〉과 김바로 편곡의 〈아리랑〉으로 마무리됐다. 서울시향 창단 80주년과 맞물려, ‘광복의 의미와 자유·평화의 가치’를 음악으로 되새긴 무대였다.
무더운 날씨 탓에 공연장에 조금 서둘러 도착해 내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메인 로비의 대한음악사에 들러 엽서도 한 장 골랐다. 이곳은 늘— 마음에 드는 편지지가 가득하다.
일찍이 좌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며 객석의 분위기를 살폈다. 천장의 조명과 정돈된 악기, 하나둘 채워지는 관객들의 기척이 공연을 앞둔 공기를 가득 메웠다. 정각이 되자 단원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앞을 보고 있다가, 예전에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마스터클래스에서 통역을 맡아주셨던 서울시향 제1바이올린 김민정 바이올리니스트가 눈에 띄어 반가웠다. 자리에 앉으신 옆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모두가 자리를 잡고, 최수열 지휘자가 두 손을 모아 고개를 떨군 순간, 광복 기념 오프닝 영상이 재생되며 공연의 막이 올랐다.
2.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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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교향곡 제5번 아다지에토
영상이 끝난 자리를 현악의 물결과 하프의 투명한 울림이 채웠다. 오늘은 광복의 기쁨이자, 떠나보낸 이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행복과 지난날의 아픔이 뒤섞여 결코 단순할 수 없는 날이다.
문득, 생각 하나가 길게 머물렀다. 지금 내가 내 나라의 말, 한글로 또박또박 적을 수 있는 이름을 가진 이들 사이에 앉아 있다는 것. 내 생각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겠구나.
우리는 내 품에 있는 사람이 영원히 곁에 있을 것처럼 믿으며 살아간다. 창밖의 나뭇잎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매일 계속될 것처럼 착각한다. 가장 익숙한 것들 속에서, 외양은 낯설지만 금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방인들 곁에서 두려움 없이 머무는 것—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생을 맞바꾸어 얻어낸 결과치라는 것을 곧잘 잊는다.
고요한 말러 안에 있으니 작은 일 하나, 누군가의 눈짓 하나에 일희일비하던 오전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무엇이 그리 사소한 것을 크게 부풀려 중요하다 여겼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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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롭게도, 빈번하게도, 자잘하게도 아파하는 나를 조용히 응시하는 ‘사랑’이 그날의 아다지에토에 가득했다. 이미 떠나간 이들의 손바닥이 나를 향해 펼쳐져 있는 듯했다. 사람들이 그토록 말하는 사랑에도 여러 형태가 있지 않은가.
8월 15일의 사랑은 은빛의 고요한 물결이었다. 자연으로 돌아가 작은 빛이 된 사람들이 머무는 고즈넉한 밤하늘, 거기서 해가 떠오르는 아침으로 향하는 길목의 하늘이었다. 둥근 것이 떠올랐다는 건 그대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음을 뜻하며, 지금을 살아가는 오늘을 비추는 기다란 염원이다.
그날의 말러는 셀 수 없이 긴 마음들을 살뜰살뜰 들여다보았다. 나는 마음을 되돌아보며 살짝 울었다. 그냥— 위로받았다는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협연: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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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건 아닌데,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유난히 자주 만나게 되었다. 7월에 한 번이 당분간의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8월에도 다시 재회했다. 시기도 대충 이맘때 아니었던가.
나는 2악장의 온난함과 3악장의 재간거림이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예민하고 서사적인 패턴을 좋아하는 내게는 상대적으로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곡이었다. 다만 피아니스트들이 만들어내는 저마다의 다른 음색이라면 기대할 구석이 있었다. 라벨만의 물기와 수채화 같은 느낌을 어떻게 그려낼까— 오늘의 연주자가 궁금했다.
무대에 협연자가 등장하자마자 환호성이 터졌다. 김태형 피아니스트가 한복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한복이라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저 복장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오늘이 어떤 행사인지 새삼 실감이 되었다.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길게 드리운 뒷자락을 촥— 정리했다. 당연히 의상을 가지런히 하는 동작인데도, 전통의상이 서양 악기 앞에 놓이니 괜히 더 낯설고 좋았다. 라벨의 재즈와 한복과 피아노라니— 색다른 조합이었다.
I. Allegramente (활기차게)
각 악기가 자기 자리에서 생동감 있게 튀어 올랐지만, 마냥 농밀하거나 과하게 화려하지 않았다. 다 같이 관중을 사로잡겠다는 기세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담백한 기운에 가까웠다.
그때 피아니스트의 첫 음이 울렸는데, 손가락이 정말 가벼웠다. 운 좋게도 1층 A블록에 앉아 피아니스트의 양손이 피아노 앞면에 비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의 손은 유려하게 건반을 스쳐갔다. 이전에 다른 피아니스트들은 수직으로 톡톡— 혹은 꾹꾹— 눌러 소리를 내는 느낌이 강했는데, 오늘은 유달리 수평으로 흘러나오듯 소리가 퍼졌다. 매우 조화롭고 산뜻했다.
지인이 말하길, 실력 있는 발레리노는 몸짓이 가볍고 우아하다고 했는데, 딱 그 비유가 어울렸다. 마치 유리구슬을 가볍게 굴릴 줄 아는 사람 같았다.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양반집 도련님이 건반 위에서 부드럽게 부채질하는 듯, 실크 자락을 닮은 매끄러움이었다. 예민한 긴장감 없이 태생의 여유를 지니고 있어 여름의 정취를 그려내기에 충분했다.
결국, 여러 사람이 모인 이곳에서 멋있는 척, 고고한 척할 필요가 있겠는가. 함께하는 잔치라면 그에 맞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품격이렷다.
II. Adagio assai (매우 느리게)
이러니 2악장이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얇고 고귀한 깃털이 건반을 어떻게 쓸어내릴 것인가? 예민한 바늘도, 유려한 물방울도 아니었다. 한 손의 토닥임 정도의 두께감이겠다.
제 무릎 위에 머리를 기댄 채 누워 있는 한 사람의 등 위를 기분 좋게 토닥이는 정도의 기색이다. 담담—, 자상— 딱, 소리들의 형태가 이랬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속도감도 다정하다. “네 마음이 그랬구나, 근데 오늘 같이 날 좋은 땐 한숨 잠들어도 좋겠다..”는 말이 들려올 즈음에 관악의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오랜만이다— 그래, 라벨의 이 라일락빛 긴 리본이 피아노 위를 동- 동- 떠다닌다. 공연장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기다란 것이라 한참을 편안히 바라봤던 것 같다.
들려오는 게 너무 다정해서— 있지도 않았던 잠기운이 어깨 위로 얹히는 것만 같았다. 따뜻한 게 자꾸 나를 감싸주지 않던가.
III. Presto (아주 빠르게)
잠은 무슨— 다시 깨어날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깨우는 방식조차 온화했다. 억지로 재촉하는 게 아니라, 네댓 명이 함께 붙어 아침 햇살 아래로 데려다 놓는 것처럼.
피아니스트가 빠른 속주로 구슬을 굴려내던 순간이 두 번 정도 있었는데, 맞은편에 있던 꼬마 두 명이 오늘의 또 다른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로 변신했다. 박자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따라하며 손을 흔드는데, 내 시야에는 두 배의 즐거움이 펼쳐졌다.
이런 귀요미들!
(앙코르) 그리그, 두 개의 슬픈 선율 중 ‘지나간 봄’ - 김태형(피아노) · 이원해(첼로) · 웨인 린(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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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에 김태형, 첼로의 이원해, 그리고 바이올린의 웨인 린이 함께 피아노 트리오로 앙코르를 들려주었다. 앙코르는 보통 협연자가 혼자 짧게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앙상블 형태로 진행되니 작은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공연 영상으로만 접하던 노부스 콰르텟의 이원해 첼리스트가 무대에 계셔서 놀랐다.
웨인 린은 아쟁 같은 결을 바탕으로 유려한 선율을 펼쳤고, 이원해 첼리스트는 멀리서도 존재감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따뜻한 진중함을 보였다. 김태형 피아니스트는 부드러운 부채 자락이 스쳐 지나가듯, 봄의 흔적을 차분히 회상했다.
따스한 기운이 가득했다. 각자의 색감은 분명 달랐지만, 그 안의 결은 왜 이토록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을까. 첼로의 낮은 울림, 바이올린의 높은 시선, 피아노의 다정한 토닥임을 어찌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목소리는 유약한 아이의 서툰 속삭임이 아니라, 지나온 세월을 미소로 되새길 줄 아는 어른들의 다정함이었다.
정대석, 거문고 협주곡 ‘수리재’ (협연: 오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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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라니. 거문고 협주곡이라니? 이날의 곡 제목만 듣고 가장 기대했던 파트였다. 무대가 시작되기 전, 홀 중앙에 놓인 낯선 나무 악기와 의자 하나가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소리일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무대 왼편에는 장구 연주자가 흰 한복을 입고 자리했다. 아까 꼬마 도령 같은 의상과는 다른 낯섦이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협연자인 오경자 명인이 분홍빛 한복 자락을 우아하게 끌며 등장하셨다.
예쁘게 웃고 계셨지만 서양 악기 연주자들과는 전혀 다른, 은은한 카리스마가 흘렀다. 거문고를 튜닝할 때 울려 퍼진 우리의 소리는 낯설고도 친숙했다. (내가 예술의전당에서 거문고 소리를 듣고 있다니!) 순간 여기가 국악당인 줄 알았다.
곡이 시작되자 서양 악기들이 우리 소리를 능숙하게 불러냈다. 외국인 합창단이 한국어로 아리랑을 부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장구가 무심히 툭, 툭 박자를 던지자 오케스트라는 숨을 죽였고, 거문고가 거칠고 강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중세 무도회장에 커다란 호랑이가 들어선 듯한 기세였다.
연주 장면을 가까이에서 본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왼손은 현을 누르고, 오른손은 술대(짧은 나무 막대)로 악기를 두드리고 긁었다. 내가 알던 현악기와는 전혀 달랐다. 긋거나 튕기는 대신, 위에서 아래로 힘 있게 소리를 밖으로 내던진다.
거문고가 리드할 땐 반드시 사위가 고요했다. 누구도 감히 끼어들 수 없는 기세였다. 귀로만 들으면 북을 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긴장감 어린 리듬은 언제 강해지고 사그라들지 예측할 수 없었다. 판소리의 장단처럼 울부짖다 숨죽이고, 다시 관중을 사로잡는 기운이 그 악기 하나에 다 담겨 있었다. 수십 명의 연주자가 있었지만, 무대의 시선은 온전히 그 명인에게로 쏠렸다.
잔향은 둥글게 퍼졌다. 내가 지금껏 들어온 잔향이 길게 뻗어 사라지는 직선이었다면, 거문고의 소리는 원을 그리며 잠시 머물다 사그라졌다. ‘머무를 만큼은 남겨두고 가겠다’는 듯, 담백한 여운이었다. 아— 진짜 매력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하다. 이젠 내 세상에 국악까지 들어와 버렸다. 분명 바이올린을 들으러 왔는데, 내 나라의 현악기까지 눈에 들어오다니.
거문고에서 나는 물방울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나는, 이제 들어봤다...
![[크기변환][포맷변환]108035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19112712_nvdeacp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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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 끝나자 오경자 명인은 우아하게 인사한 뒤, 무대 밖으로 호다닥 나가듯 사라지셨다. 마치 “부끄럽지만 얼른 들어갈게요!” 하는 듯한 모습에 웃음이 났다. 거문고부터 소중히 챙기시고, 다시 박수 속에 등장했지만 금세 자리를 떠나셨다. 아, 아씨가 자꾸 도망가신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2번 중 3, 4악장
![[크기변환][포맷변환]1080359.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19112722_lqmwlzg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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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 좋게 하나로 뭉쳐 관객 속으로 덮쳐 온다기보다는, 저쪽— 멀리서 서서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기운이 더 크게 다가왔다. 강한 소용돌이가 금세 피어올랐다가, 확— 사라졌다.
뭐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 순간, 관악이 홀로 길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 주위를 천천히 다른 옷자락들이 감싸며 함께 움직였다. 아래에서 위로 치솟지만 중간 영역을 넘어서는 법은 없다. 오늘 연주의 전체 흐름도 대체로 이랬으니, 이해가 되었다.
끝내 치닫지 않고, 멀찍이서 머물러 있는 것이다. 뭔가 서사가 층층이 쌓여간다는 느낌보다는, 풍경이 서서히 조성되는 광경을 지켜보는 기분에 가까웠다. 폭풍이 일고, 바람이 흔들리며, 대지가 자리를 잡는 길이다.
널따란 황야 위에 숲을 그려 나가는 풍경화 하나가 완성되어 가는 듯했다. 뚜렷한 주인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결국 ‘이 땅’을 그린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들이 이루고자 한 것은 자유의 터전, 당장의 행복을 포기해서라도 얻어야 했던 조국의 미래,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니었을까.
외세의 손에 파괴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모랫바닥에서부터 풀이 돋아나고, 시냇물이 흐르고, 나무 기둥이 우뚝 섰다.
잎사귀가 햇빛 아래 열매를 맺고, 그 아래 사람들이 살아간다.
이 곡이 ‘독립 교향곡’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였을까, 내 마음 위에 그려진 대지에는 어느새 백의민족의 국기 하나가 넓게— 넓게 펄럭이고 있었다.
하얗고도 환한 도화지 위에 푸른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태극, 그리고 사방 끝에는 건곤감리가 새겨져 있다. 여기가 어디냐고? 당신의 나라, 대한민국이겠지.
3. 24와 25 사이
![[크기변환][포맷변환]IMG_6626.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19112735_ryvycnqu.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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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도 2024년에도, 2025년에도 내 8월 15일에는 음악이 있었다. 그해엔 리허설이었고, 이번엔 본무대였다.
내년 8월 15일엔 어디에 있을까? 또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곁에 있는 사람들과 “오늘은 뭐 하지—” 하며 고민하다가, 막연한 기대 속에 하루를 시작하고 있으려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도 우리는 같은 흐름 안에서 이 날을 다시 맞이한다. 또 한 번의 8월이 찾아올 것이다. 무난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충만한 ‘오늘’인지— 길게, 깊이 감사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1945년 8월 15일이 있었기에 2025년 8월 15일이 가능했다. 그들이 그리도 자유를 외쳤던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다— 오늘을 마주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