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속만 썩지', '속상해'...
마음 속에 무언가를 담아두고, 그것이 썩는 것에 대한 관용어구들을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심심찮게 듣고 있다. 왜 속에 무언가를 담아두면, 결국 썩는다는 말을 하는 걸까? 땅속에 타임캡슐을 묻어두듯 영원히 묻어둘 수는 없는 걸까?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썩는다'라는 상태를 생각해보자.
사과 하나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 사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말라 비틀어지고, 점차 형체를 잃어버리며 악취와 진물이 흐르고, 나중에는 거기에 벌레까지 들러붙는다.
마음에 담아두는 무언가 역시 그런 상태일 것이다. 마음 속은 진공 상태가 아니라고 믿는다. 종종 바람과 햇빛이 들고, 어떤 날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주인공인 팬지는 어떤가. [내 말 좀 들어줘]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마음 속 깊이 담아두고 있는 썩은 말들이 많은 걸까?

제목만 보고 추측한 것과는 달리, 주인공 '팬지'는 하고자 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뱉어내는 사람이다.
그녀의 말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남편과 자식, 마트의 캐셔, 의사에게까지 독설을 퍼붓는 모습은 웃기고, 때로는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이처럼 마음에 담아두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내뱉어버리는 팬지이지만, 그녀의 삶은 그녀가 뱉어내는 말처럼 결코 유쾌하고 즐겁지 않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가 가족에 대해 가진 트라우마와 결핍이 평생 그녀를 조용히 괴롭혀왔음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팬지는 아무리 입을 움직여도 결코 시원치 않다.
되려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그녀 스스로도 종종 느낀 '뜨끔'한 감정들이 그녀 스스로를 무척이나 피로하게 만든다.
나아가, 피로해진 그녀의 기질은 또 다시 주변인에게 표출되어진다. 썩은 과일이 악취를 풍겨 주변을 괴롭게 만드는 것처럼, 팬지가 가슴 속에 담아두고 꺼내두지 못한 것들이 결국 주변인들까지 괴롭게 만든 것이다.
영화 내내 팬지는 '피로하다', '사람들이 나를 괴롭힌다' 따위의 말을 몇 번이고 내뱉는다.
실제로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고, 어리거나 젊었을 시절에 누구라도 느꼈을 앳되고 기분 좋은 감정들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해주고, 또 표현하라며 북돋은 것은 영화 내내 언니를 곁에서 지켜보는 샨텔 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픈 남편을 끝내 찾으러 내려가지 않는 팬지의 모습은 어쩌면 조금 잔인하다고까지 느껴졌지만, 샨텔이 아닌 그녀의 바로 곁에 있는 이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아닌, 가슴 깊이 숨겨둔 아픔을 꺼낼 수 있는 '말'을 하도록 만들어주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팬지라는 사람의 일생 동안 참아온 말을 들어줄 이가 오래도록 없었다는 사실이 씁슬했다.
팬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이 가슴 속에서 썩기 전, 쉬이 꺼내어 볼 수 있는 환경을 가지게 되기를 바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