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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내 인생책 목록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여러 번역본을 오가며 읽을 때마다, 같은 문장도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경험을 했다. 그 중에서도 전혜린 번역본은 나를 멈춰 세웠다. "내가 아는 그 전혜린?" - 그 이름은 이미 나에게 작가로서 또 시대의 한 인간으로서 강한 인상을 남긴 사람이었다.

 

이번 번역본은 전혜린이 초판에 옮긴 문장을 현재 맞춤법에 맞게 최소한 다듬은 버전이다. 초판 당시의 한자어 사용과 번역투 문장은 그대로 남아 있어, 본래도 추상적인 이 소설이 더욱 아리송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나의 첫 『데미안』은 민음사 번역본이었는데, 그 때는 문장이 비교적 간결하고 직설적이라, 책 속 세계로 곧장 빠져들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전혜린 번역본은 처음에 낯설었다. 종교적, 철학적 함의가 짙은 대목, 이를테면 '카인과 아벨' 이야기나 아프락사스를 동경하는 장면에서는 한 문장을 읽고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후반부,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을 만나고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마침내 데미안과 합일되는 과정을 읽을 무렵 나는 깨달았다. 이 번역은 원문의 결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려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문장보다, 때때로 숨이 막힐 만큼 무거운 이 문장들이야말로 헤세가 처음부터 독자에게 건네려 한 감각일 수 있다는 것을.

 

 

 

불안의 열쇠를 타인에게 넘긴다는 것


 

이번 읽기에서 가장 오래 머문 장면은 싱클레어가 크로머의 계략에 빠져 고통받는 대목이었다. 이전까지는 주로 '데미안을 따라가는 싱클레어'라는 구조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불안과 속박의 감각이, 너무도 선명하게 내 과거와 겹쳐 보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삶의 중요한 순간에 외상 같은 사건을 겪었다. 그 뒤에 생긴 그림자가 나를 오래 따라다녔다. 싱클레어가 느낀 공포와 무력감, 그것을 감추려는 몸부림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가 불안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물건이 있는 거야. 그것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사람은 아무 말에서 불안을 가질 필요가 없어. 만약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에게 힘을 양도해줬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거야. 예를 들면, 무슨 나쁜 일을 했는데 다른 사람이 알고 있거든-그러면 그는 네게 힘을 갖게 되는 거야, 이해하겠니? 그건 분명한 일이 아니니?"] (p. 67)

 

나는 이 대목에서 오랫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를 지배하던 불안의 근원은 바로 '힘을 넘겨준' 데 있었던 것 같다. 내 약점을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만 작아지고, 들킬까봐 조심하며 살아온 시간들. 데미안의 말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 담김 통찰은 강렬했다. 불안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 열쇠를 타인에게 쥐여준 순간부터, 불안은 나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키를 되찾아오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의 시작일 것이다.

 

 

 

에바 부인의 집에서 머무는 나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데미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을 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의 집에 머무르는 장면에서 오래 머물렀다. 곧 전쟁이 닥칠 것을 알지만, 그 집은 따뜻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그 안온함 속에서도 싱클레어는 완전히 편하지 못하다. 어딘가 공허하고 불가피하게 다가올 변화를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지금 그와 비슷한 상태에 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안정되어 있고, 한동안 큰 풍파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다가올 무언가를 예감한다. 그것이 전쟁인지, 전환인지 아니면 단순한 성장의 통과의례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내가 아직 그 여정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데미안과 합일되는 결말 장면조차 이번에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직 길 위에 있고, 그 길은 현재 진행형이다.

 

 

 

번역과 시간, 그리고 나


 

민음사 번역본이 내게는 첫사랑 같은 책이었다면, 전혜린 번역본은 오래된 친구와의 재회였다. 첫사랑이 순수한 감동과 열정을 주었다면, 오래된 친구는 더 많은 질문과 사유를 던져준다. 문장이 때로는 무겁고 불친절하게 느껴졌지만, 그 무게 덕분에 나는 다시 멈춰서서 생각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 불안을 직면했고, 힘을 되찾는 법을 배웠다.


『데미안』은 매번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번역이 바뀌면 문장이 달라지고,, 내가 달라지면 이해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변화의 교차점에서 매번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다. 이번 읽기는 단순한 재독이 아니었다. 그것은 번역과 시간, 그리고 나 자신이 함께 걸어온 또 하나의 여정이었다.

 

나에게로 가는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나는 여러 번 『데미안』을 다시 읽을 것이다. 번역이 달라지고,, 내가 달라질 때마다 또 다른 자화상을 마주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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