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한 세계가 떠오르는 회화 [미술/전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크리스찬 히다카: 하늘이 극장이 되고 극장이 하늘에 있으니》

by 박정빈 에디터
2025.08.05 11:56

 

 

하 00[700].jpg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크리스찬 히다카: 하늘이 극장이 되고 극장이 하늘에 있으니》

서울시립미술관은 북서울미술관의 '회화반격' 특집으로 《크리스찬 히다카: 하늘이 극장이 되고 극장이 하늘에 있으니》 전시를 2025년 6월 5일부터 2026년 5월 10일까지 개최한다.

 

일본계 영국 작가 크리스찬 히다카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으로, 동서양의 미술사와 기법을 융합한 '유라시아 모드' 세계관을 선보인다.

또한 어린이의 세계를 영감과 질문의 원천으로 삼아 새롭게 개편하여 어린이를 포함한 다양한 관객을 고려한 시도도 함께 펼쳐진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SeMA


 

하01[700].jpg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북서울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첫 번째 분관이다. ‘갈대 언덕’을 뜻하는 노원(蘆原)구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물 주변이 작은 동산처럼 조성되어 있다.

 

미술관은 공원과 맞닿아 있어 지역 주민과 예술이 소통하는 열린 문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02[700].jpg

 

 

이번 전시는 2025년 6월 5일부터 2026년 5월 10일까지 이어진다. 2022년 북서울미술관 기획전 《조각충동》에 이어, 2025년에는 ‘회화’에 주목한다.

 

최근에는 전통적 예술 공간인 박물관 안에도 첨단 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미디어 아트가 설치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그린 회화까지 등장하는 시대 속에서 회화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작가 크리스찬 히다카는 동서양의 회화사와 화법을 결합해,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회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1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전시장이 설계되어 있다. 전시장 내부가 한눈에 펼쳐지는 구조 덕분에, 마치 하늘에 있던 극장이 땅으로 뒤집힌 듯한 인상을 준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전시 동선은 앞으로 펼쳐질 회화 공간을 더 기대하게 한다.



 

상상 가득한 여행의 시작


 

〈고도에서 기다리며〉, 2025, 린넨에 오일 템페라, 230 × 174 cm. 사진_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 . 사진_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_[700].jpg

〈고도에서 기다리며〉, 2025, 린넨에 오일 템페라, 230 × 174 cm. 사진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정면으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이 바로 <고도에서 기다리며>이다.


 이 그림은 반 고흐의 <타라스콩으로 가는 화가>에서 인물이 자화상으로 표현된 것처럼, 크리스찬 히다카 자신을 투영한 자화상적 이미지이다. 밀짚모자를 쓰고 배낭을 메고 있는 점이 고흐의 그림과 유사하다.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여행 앞에서, 작가는 마치 선배 화가였던 반 고흐의 모습을 빌려 앞으로 있을 회화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듯하다.

 


〈땅 아래 펼쳐진 산수〉, 2025, 벽면에 천연안료와 페인트, 가변 크기. 사진 이손, 서울시립미술관 제공[700].jpg

〈땅 아래 펼쳐진 산수〉, 2025, 벽면에 천연안료와 페인트, 가변 크기. 사진 이손,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전시장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이 벽화는, 작가가 미술관에서 3주간 직접 그린 것이다.


관람자가 내려온 계단과 그림 속 계단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한 구성을 이루며, 관람객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몰입을 유도한다.


동굴과 벽화라는 요소는 자연스레 회화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고대 동굴 벽화를 떠올리게 한다. 먼 옛날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라는 질문과 함께, 회화의 자유롭고 상상력 가득한 여정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빛과 상징으로 읽는 회화



하031[700].jpg

〈지혜의 무대〉, 2025, 린넨에 오일 템페라, 195 × 160 cm



작품에서는 빛과 그림자의 강한 명암 대비가 눈에 띈다. 이러한 표현은 2차원 평면에 3차원의 입체감과 사실성을 극대화하는 회화 기법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과 함께 발전한 전통적 회화 기법이다.


그림 속에서 여자의 손에 감긴 뱀이 피리 부는 남자를 바라보자, 남자는 연주를 멈추고 뱀을 응시한다. 그리고 오른쪽 하늘에서는 천사가 내려오면서 뱀을 가리킨다. 이러한 구도와 설정은 회화를 하나의 무대처럼 구성한 것으로, 회화가 지닌 서사적 긴장감과 연극적 표현을 보여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뱀은 선사시대부터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알은 새로운 탄생과 창조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들은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적 영감을 드러낸다.


하04[700].jpg

〈지혜의 무대〉 확대



고대 벽화가 삶의 기록이었다면, 중세 종교화는 신의 형상을 표현하며 종교적 경건함을 강조했다.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는 회화 기법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면서 회화의 역할을 탐구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회화는 단순히 종교 교리를 전달하는 수단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적 사고와 인본주의 세계관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예술의 창조적 의지와 표현 욕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원근법과 명암법 등 회화 기법이 발전했고, 화면 속 세계는 관람자에게 더욱 큰 몰입감을 주었다. 작가가 사용한 뱀과 알의 상징은 예술의 창의성을 표현한 것으로, 회화의 창조적 역할을 사유하는 제안으로 이끈다.


 

〈오래된 북〉, 2021, 린넨에 오일 템페라, 251 × 178.5 cm, 개인 소장. 사진_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 [700].jpg

〈오래된 북〉, 2021, 린넨에 오일 템페라, 251 × 178.5 cm, 개인 소장. 사진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 



작가는 북을 반복해서 두드리는 울림과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서로 연관 지었다.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은 작가에게 마음속 깊은 생각과 감정을 살피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작품 속 북을 치는 사람은 유럽과 아시아의 얼굴 특징이 공존하는 모습을 갖고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일본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의 배경을 추측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 배경을 바탕으로, 여러 시대와 문화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상상하는 회화 세계를 전하고 있다.

 



동양의 산수와 현대의 공존


 

JPG〈산등성이 길을 따라〉, 2023, 린넨에 오일 템페라, 136 × 272 cm. 사진_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700].jpg

〈산등성이 길을 따라〉, 2023, 린넨에 오일 템페라, 136 × 272 cm. 사진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

 


10여 년 전 작가는 중국을 여행하며 송나라 산수화를 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그렸다. 그는 동양의 전통 회화에 디지털 공간의 색채를 융합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회화 세계를 구현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작가가 회화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전달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송나라 산수화는 고원, 평원, 심원의 삼원법을 활용하여 동양의 입체적인 공간을 구성하고, 화면의 한쪽으로 산수가 치우친 편파구도가 특징이다. 이러한 송나라 산수화의 기법은 조선 초기 산수화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초기 산수화인 안견의 《몽유도원도》에도 삼원법, 편파구도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안평대군의 꿈속 이야기를 산수화로 그려낸 것으로, 상상과 기억, 현실과 이상이 교차하는 회화적 공간을 담아낸다.


조선의 산수화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세속을 떠난 은거의 삶과 문인의 성리학적 가치관, 자연에 대한 이상적 태도를 담고 있었다. 또한 회화는 명산을 유람한 경험을 기록하는 수단이자, 개인의 정신과 이상을 표현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작가는 <산등성이 길을 따라> 작품으로 동양 회화의 정신성과 공간성을 계승하면서도 디지털 색채를 더해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기억과 철학, 감성을 표현하는 동양 회화의 역할을 현대적 표현으로 새롭게 조명한다.

 

 


회화로 떠오르는 한 사람의 세계관


 

〈황금기〉, 2023, 린넨에 오일 템페라, 200 × 165 cm, 개인 소장. 사진_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 . 사진_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_[700].jpg

〈황금기〉, 2023, 린넨에 오일 템페라, 200 × 165 cm, 개인 소장. 사진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

 


전시의 시작에서 화가가 자신을 투영했던 빈센트 반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흐가 평생 존경했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 또한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을 그렸었다. 밀레의 그림은 당시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고흐가 밀레와 비슷한 별 그림을 남겼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 사람이 누군가를 너무 존경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비슷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 회화는 작가의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삶의 체험과 감정이 투영되지 않는 인공지능의 회화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회화는 어떤 사람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장면, 혹은 어떤 장면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