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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된 이름, 모순된 인생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말이 있다. 바로 “내 이름은 안진진.”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진(眞)’이 두 번 반복되지만, 성(姓) ‘안’은 부정의 의미를 가진 접두사처럼 읽혀 “참되지 않다”라는 역설적인 뜻을 내포한다.
그래서일까, 이 말은 자꾸만 입안에서 맴돌았다.
모순된 이름, 모순된 인생. “내 이름은 안진진.”
가족, 결핍, 그리고 삶의 과제
스무 살 중반,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안진진은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인생에서 ‘결혼’이라는 과제를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녀가 가장 가까이에서 본 결혼 사례는 어머니와 이모의 결혼이다.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 자매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극명하게 달랐다.
안진진의 아버지는 평소엔 다정했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했다. 술에 취해서는 자주 집을 나가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안진진이 스무 살이 되던 해에는 몇 년 동안 집을 떠났다.
남편이라는 단어가 마치 남의 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과의 삶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고생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아버지를 사랑했고, 딸을 사랑했고, 동생인 안진모까지 감싸 안은 가족의 중심이었다.
반면, 이모는 성공한 건축가와 결혼해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기념일에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두 자녀는 해외로 유학을 갔다. 하지만 이모는 그런 남편이 “너무 지루하다”라고 말한다. 기차처럼 늘 정해진 시간에만 도착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라고.
그래서일까, 이모에게 진진은 마치 차창 밖의 날씨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햇살 가득한 풍경이 되고, 또 어떤 날은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변화무쌍한 사람이었다. 그런 안진진이 이모의 삶에 잠깐의 색을 입혀주는 존재였을 것 같다.
안진진은 굳이 엄마와 이모의 삶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결핍을 느꼈을 것이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의지적인 사람이지만,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정서적 결핍은 어느새 그녀 안에 자리 잡고, 그로 인해 심리적 안정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안진진이 결혼을 삶의 과제로 삼은 건, 어쩌면 그 결핍을 채우려는 시도로 생각된다. 안진진은 결혼 상대로 김진우와 나영우 두 인물 사이를 고민한다.
김진우는 남도 여행에서 찍은 야생화 사진을 선물하는 감성적인 사진가다. 반면 나영우는 모든 데이트의 장소와 시간을 계획하고, 인생을 일정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안진진은 김진우와 함께 있을 때는 편안함과 사랑을 느끼고, 나영우와 함께 있을 때는 피곤함 속에서도 삶의 자극을 느낀다. 김진우는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나영우는 사고의 자극을 주는 인물이다.
안진진의 삶의 과제인 결혼은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속 ‘남편 찾기’처럼 느껴졌다. 소설을 읽으면서 두 인물의 뚜렷한 장단점을 비교하며, 남편을 찾아봤지만, “어차피 남편은 나영우”라는 식의 응원은 아니었다. 내가 응원한 대상은 안진진이었다.
누군가를 선택하고, 또 누군가를 남겨두는 일에 누구보다도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진 그녀. 선택이 주는 상처를 염려하면서도 결국엔 그 선택의 중심에 서야 하는 사람. 그래서 그녀의 고민과 성장을 더 응원하게 되었다. 비록 선택 끝에 남겨진 사람이 신승훈의 ‘날 울리지 마’의 가사처럼 슬픈 노래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라도 말이다.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삶
어린 시절, 안진진과 아버지 사이에는 둘만 공유하던 따뜻한 기억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떠난 아버지가 아직도 그 추억을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해한다.
만약 완전히 미워해서 영영 떠나버린다면, 그 수많은 약속과 기억들을 다시는 확인할 수 없을까 봐 아직도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선택을 앞둔 시점에서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있었고, 사랑하는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손 크기가 겹치는 날, 서로를 알아보자던 둘 사이의 약속은 결국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사건을 통해 안진진은 아버지의 부재에서 비롯된 결핍을 직면하고, 그것을 견뎌 내며 한 걸음 성장했다고 느껴졌다. 더 이상 정서적 안정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외부 요인에도 흔들리지 않는 본인을 격려하면서 자기 자신의 안정과 중심을 발견한 안(安)진진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결혼 상대를 선택한 이유는 정서적 안정을 찾으려는 선택이 아니라, 삶을 진지하게 탐구하며 살아가려는 노력으로 느껴졌다.
‘헤어진 다음날’
소설 속에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이 등장했을 때, 나는 너무나 반가웠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즐겨 듣는 음악이 현실과 연결될 때, 그 감정의 진폭은 더 크게 다가온다.
마치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한 ‘안개’처럼, 이야기에 등장하는 노래를 들으면 이야기와 현실이 겹쳐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현우의 노래는 비발디 ‘사계’ 중 ‘겨울’을 샘플링한 멜로디로 익숙하게 시작된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안부를 묻는 가사로 문을 열고, 이내 “날 사랑했냐”라는 전달되어서는 안 될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나는 그 노래를 정말 좋아했다.
모순된 감정이 스며든 그 노래 역시, 모순된 인생과 소설이 겹쳐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