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관에 왜 가시나요?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5.0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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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전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 대한 오피니언에서, 국공립미술관의 예술장벽 낮추기와 새로운 시대의 미술관의 역할 설정에 대한 고민과 도전에 대해서 다룬바 있다. 이번 글에서는 부산 시립미술관을 조명하고자 한다.

 

*

 

지난 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기획전시 <이토록 아름다운>을 진행했다. 근처에 거주하는 시민으로서 어릴 적부터 몇 번이고 방문한 미술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였다. 처음으로 미술관의 작품이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간 미술관에서의 작품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 머물렀다면, <이토록 아름다운>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머물 수 있는 하나의 치유의 장을 제공했다.

 

<이토록 아름다운>에서는 코엑스 전광판을 통해 유명세를 떨치고 한국에 미디어아트의 열풍을 불러왔던 에이스트릭트의 [starry beach]를 만나볼 수 있었고, 김이박 작가의 <식물요양소>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통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늦은 배웅>이라는 새로운 사례를 예술계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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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배웅> 프로젝트는 부산시립미술관, 박혜수 작가, 부산일보가 함께한 프로젝트로, 코로나19 유가족들에게 사연을 받아 진행했다. 갑작스러운 이별로 화장을 먼저 한 후에 장례를 치르는 등 제대로 된 인사조차 전하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위로와 애도를 담아 사연을 부산일보에, 소개하고 이를 모아 미술관에 전시했다.


이는 예술과 언론이 연계한 유례없는 프로젝트로, 코로나 19 재난 앞에서 예술과 언론의 공적 책무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 전시를 통해 부산시립미술관은 위압적이고 다가가기 힘든 예술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관객들과, 시민과 함께 소통하는 예술을 이루어냈다. 이러한 미술관의 새로운 도전에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고, ‘전시의 확장성’에 대한 담론이 더욱더 형성되기 시작했다.


나또한 <늦은 배웅> 프로젝트를 통해 여러 지역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새로운 행보를 기대하고 있었다. 2022년 4월, 부산시립미술관은 새로운 기획전 <나는 미술관에 00하러 간다>를 통해 기대 이상을 보여줬다.


 

“주어진 여가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은 휴식, 기분전환, 자기개발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준다.

 

<나는 미술관에 00하러 간다>는 여가 활동의 불평등을 극복하고 미술관이 제안할 수 있는 대안적 알고리즘을 보여주는 시도이다. 미술관은 작품감상을 통해 예술을 즐기는 공간이자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여가를 탐문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나는 미술관에 00하러 간다> 가 스스로에게 필요한 진정한 여가(행복)를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이기 바란다."

 

- 전시 서문 중

 



탐색 intro 

옵티컬레이스 <천태만상 인생순삭>


 

"옵티컬레이스의 <천태만상 인생순삭>은 세대와 성별에 따른 여가 지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이 시대의 진정한 여가란 무엇인가가 자문하게 된다."

 

- 전시 설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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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다채로운 색채에 눈길을 빼앗긴다. 벽면을 빼곡히 채운 한국인의 24시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역시 내가 속하는 집단인 20대 무직 여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게 되었고, 자연스레 그 밑에 위치한 10대 전체여성도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새삼 시각화 하니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나가 자각되어 마음 한편이 쓰렸다. 그리고 “스스로 학습”은 나의 집단인 20대 무직 여성이나 10대 여성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 후로는 평생 나를 위한 스스로 학습의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은 걸까. 확실히 한국인의 24시간엔 여가가 너무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꽉꽉 채워 보내기엔 너무나 아까운 인생인데.


 

<클럽>


부산 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클럽>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스로에게 필요한 진정한 여가찾기 를 돕고자 클럽(공통의 관심사나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 즐기는 모임)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 전시 설명 중

 


클럽은 배움, 스트레칭, 명상, 드로잉, 체조 등 다양하며, 미술관에서 "oo"의 빈칸을 지역민들과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채워보도록 한다. 또한 클럽의 진행자로 부산의 예술인, 강사, 사업가들을 초청하여 또 한번 미술관을 지역으로 확장한다.


 

o+o


 

“인간은 끊임없이 타자와의 관계를 형성하지만, 관계를 맺기까지는 오랜기간 필요하다. 직접적인 관계 맺음과 접촉 제한의 시기를 지나온 지금, 관계 형성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계기를 제시한다.“

 

- 전시 설명 중

 


이 공간에서는 널찍한 공간을 작품과 나로만 채우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파트다.

 

내가 처음으로 전시에 깊이 빠지게 된 계기는 피크닉에서의 기획전 <명상>이었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명상과 가까이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전시란, 작품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 노력하기 보다도,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선택지이며, 나는 그 시간을 몰입과 사유로 채우고자 전시를 본다. 그것이 내가 전시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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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의 <관계항>과 나

 

 

한 번 작품과 관계맺음을 경험하면 계속해서 전시를 찾게 된다. <나는 미술관에 oo하러 간다>는 이 파트를 통해 오랜 시간을 가지고 작품과 관계를 형성해보는 경험을 해보도록, 친절하게 그 기회를 제공한다.


 

o


 

“o 에서는 미술관의 거닐기, 멈추기, 바라보기 와 같은 보편적이고 관습적으로 움직임을 넘어, 능동적 여자로서의 춤을 통해 오롯이 자신만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 전시 설명 중

 


o 파트의 전시관은 마치 파티장을 연상시키며, 은빛 장막으로 둘러쌓인 공간에서 헤드폰을 꽂으면 한국 현대무용의 거장 안은미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춤추는 방법을 설명한다. 고백하자면, 여전히 몸을 움직이는 게 어색한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지만, 이러한 장을 형성해주었다는 것 자체에서 센세이션을 느꼈다.


춤보다는 이 전시관 앞의 피아노에 이끌렸다. 미술관에 마음껏 쳐도 되는 피아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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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과 피아노와 나.

 

 

피아노를 치며, 약간의 황홀경을 느꼈다. 악기의 상태는 휼륭했고, 미술관은 알다시피 울림도 훌륭한 공간이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서 사랑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 음악과 미술. 예술의 일부가 되는 경험. 무엇을 표현해도 허락되는 자유의 공간.

 

*

 

이번 전시를 통해 부산시립미술관은 정말로 전시의 틀을 과감히 깨버렸다. 미술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관객들로 하여금 마음껏 경험해보도록 하며, 시각예술품의 전시를 넘어, 그야말로 시민들의 여가를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재탄생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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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진행한 안은미 무용가의 전시 오픈 퍼포먼스. (출처 부산일보)



#나는미술관에영감을얻으러간다.

#나는미술관에명상을하러간다.

#나는미술관에피아노를치러간다.

 

다음 번 미술관이나 전시를 찾을 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갈 것인가?


*

  

니체는 인간 정신의 발달을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낙타-사자-어린아이가 바로 그것이며, 궁극적으로 우리는 어린아이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돌앙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 니체

 

 

어린아이는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놀이를 즐긴다. 우리는 아이처럼 느끼는 법을, 아이처럼 노는 법을, 아이처럼 창작하는 법을, 그 재미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 예술은 이런 우리에게 아이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술관의 이런 변신이야 말로 우리에게 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진정한 예술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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