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회화는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 [미술/전시]

《그 너머_원계홍(元桂泓, 1923-1980) 탄생 100주년 기념전》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4.1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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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계홍 화백을 재조명하는 전시 《그 너머_원계홍(元桂泓, 1923-1980)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3월 16일부터 5월 21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원계홍 화백은 1940년대에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어 방향을 전환하였다. 서울로 귀국한 뒤엔 일본에서 배웠던 세잔과 클레, 칸딘스키 같은 작가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업에 몰두하였다.

 

수십 년의 작업 끝에 1978년 12월 공간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몇 번의 전시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향년 57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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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한국 화단에서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작가 원계홍 화백의 예술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전시다.

 

설치된 작품은 크게 (골목/자연)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 추상화와 드로잉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가 노트와 관련 자료가 함께 전시된다.


원계홍 화백의 골목 풍경 시리즈는 당시 서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사람이 없다는 것, 그리고 화면 전체를 뒤덮는 회색빛의 어두운 색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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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관람하는 초반엔 그의 작품에서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알 수 없는 우울감과 소외감이 연상되었지만, 여러 작품을 마주할수록 원계홍 화백의 작품들은 그러한 감정들이 한 겹 뒤로 물러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도시화가 진행되는 서울의 거리 풍경 속에서 사회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 전에, 풍경을 통한 "구성적인 심상" 자체를 그려내고자 한 것이었다.


"균형이 잡혀 있고 색채가 조화되어 있으면 작품으로서는 충분하다. 주제 같은 것은 필수한 것은 아니었다. 회화는 말하자면 그 자체가 주제이매 아름다운 것에 영원한 기쁨이었다." - 원계홍, 「작가 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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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풍경 작품들은 크게 〈빨간 건물〉(1979), 〈회현동〉(1979)과같이 건물과 골목을 가까이서 그린 그림과 〈회색 지붕〉을 비롯해 지붕을 그린 작품 등 멀리서 조망하듯 그린 작품으로 구분되었다.


전자의 경우, 건물과 함께 골목(길)이 드러나며 화면 속에서 시선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 곧 내가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면 후자의 경우 건물의 기하학적인 구조만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기 때문에 평면성이 더욱 느껴지며 또 다른 시각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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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의 골목 작품 속 대상들은 색면이 섞이지 않은 채 여러 층 두텁게 쌓이거나 그리다 만 듯 구체적으로 형태가 나타나지 않은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북창동길〉(연도 미상)에선 중심에 서 있는 건물의 1층은 얇은 검은 선과 조금 두꺼운 회색의 뼈대에 어두운 노란색만이 채워져 있을 뿐이다.

 

D.H. 로렌스가 세잔의 작품에서 비워진 부분을 클리셰를 피하고 사과성을 취하기 위함이라 설명한 바가 떠오른 것은 원계홍 화백 또한 본질의 표상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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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설악〉(1978)에서 세로로 뻗은 나무와 바닥의 눈길, 멀리 보이는 산들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특히 화면의 오른편에선 원경의 산이 전경의 나무를 뒤덮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화백이 그리고자 한 것이 외부 대상의 재현이 아님이 명백해진다. 색으로서 존재하는 대상들의 중첩에서는 시간성이 드러나는 듯하다.


"회화에 있어서 색채의 조화란 시각적인 감동이지만 그것은 3차원적 'form(형)과 결부시킬 수 있는 것이어서 그 경우 우리는 마치 형(form)에 닿을 수 있는 것 같은 촉각적인 감동을 받는다. 또한 움직임의 환각마저 맛볼 수도 있는 것이다." - 원계홍, 「작가 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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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작품들은 몇몇 정물화를 제외하곤 대부분 70년대 후반의 작품이었다. 이는 작가의 화풍이 무르익은 시점에서 타계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이번 전시는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관을 지녔던 원계홍 화백의 작품을 통해 회화가, 화가가 무엇을 그려내야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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