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저마다의 가풍이 있듯이 우리 집에도 소소한 가풍이 있다. 바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철 과일을 항상 구비해둔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아침으로, 식사 후 후식으로, 간식으로 과일을 즐겨먹었다. 봄에는 겨우내 추위를 걷어내고 온기를 맞이하며 살구를 맛보고, 여름에는 찌는 듯한 더위에 뚝 떨어진 입맛을 다시 돌게 해주는 새콤한 자두를 먹는다. 서늘해지는 가을이 되면 할머니 댁에 있는 거대한 감나무에서 감을 따고, 시릴 듯한 추위가 찾아오면 뜨끈한 전기장판에서 귤을 내내 까먹는다. 과일은 본디 건강식품이라고 주장하면서 신나게 먹었는데 최근 혈당 관리에 초점을 둔 요즘 식단 트렌드에 과일을 자주 섭취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듣고 적잖이 충격이었다.
어릴 적 과일에 얽힌 즐거운 추억도 많이 있다. 아빠와 단둘이 오디축제를 가서 오디를 따느라 손과 입이 검게 물든 적이 있었고, 할머니 댁에 열린 앵두와 보리수 열매를 잔뜩 따먹으며 놀기도 했다. 혼자서 복숭아를 깎아보겠다고 설쳐댔다가 껍질을 너무 두껍게 깎아서 조각상을 만들 뻔했던 적도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잠깐 떠나있었을 때에도 과일만큼은 성실하게 챙겨 먹었다. 달콤한 향기에 속아서 딸기 한 팩을 비싼 돈 주고 샀다가 무 맛이 나서 상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과일은 생으로 먹는 걸 선호하지만 그럼에도 부모님이 과일로 만들어주시던 간단한 간식들을 참 좋아했다. 지금부터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과일로 만든 그 간식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딸기 샤베트
![[크기변환]ChatGPT Image 2025년 8월 1일 오전 12_31_56.pn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01003259_polhoxpw.png)
사실 정확한 명칭은 없다. 우리는 그것을 대충 '딸기 얼린 것'이라고 퉁쳐서 불렀다.
딸기는 쉽게 무르고 달콤한 녀석을 찾는 게 어렵기 때문에 처치가 곤란한 상태의 딸기는 그대로 얼렸다. 엄마는 그런 냉동딸기에 야쿠르트를 넣어서 갈아주시곤 했다. 당시에 우리 집엔 믹서기가 없어서 지금은 '핸드블랜더'라고 부르는 도깨비방망이로 갈아주셨는데, 일일이 눌러가며 갈아야 되다 보니 딸기 완전히 갈리지 않고 조각조각 남아있었다.
새콤하고 시원한 그 딸기 덩어리를 제일 좋아해서 항상 얼린 딸기를 해주실 때마다 신신당부하곤 했다. 야쿠르트가 떨어지는 날에는 우유를 넣고 갈아주시기도 했는데 그때는 죽상이 되어서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아무래도 야쿠르트 자체의 새콤달콤한 맛이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였던 것이다.
딸기가 아닌 다른 과일로 대체할 수는 있지만 야쿠르트의 궁합을 잘 생각해야 된다. 바나나같이 마냥 달콤하기만 한 과일에는 역효과이므로 추천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얼린 키위도 상당히 맛있었다.
곶감 호두 말이
![[크기변환]ChatGPT Image 2025년 8월 1일 오전 01_04_39.pn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01015353_ydflsdiq.png)
외할머니 댁에는 대문 양옆, 집 뒷마당에 큰 감나무들이 많이 있다. 가을이 되면 가지가 휠 정도로 감이 주렁주렁 달린다.
단감은 그때그때 깎아먹고, 홍시는 볕이 안 드는 서늘한 곳에 신문지를 깔고 익을 때까지 내버려둔다. 그중에서 덜 익은 감은 껍질을 깎아서 베란다에 매달아서 건조하는데, 그것들이 나중에 곶감이 된다.
말랑말랑하게 잘 마른 녀석들을 골라서 한 입 먹어보면 엄청난 단 맛에 혀가 얼얼해진다. 나는 그런 단 맛이 어색해서 곶감을 잘 먹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빠가 한번 먹어보라고 접시를 건넸다. 곶감은 곶감인데 동그랗게 썰린 곶감 가운데에 호두가 꽃처럼 박혀있었다. 고소한 호두와 달콤한 곶감은 참 잘 어울렸다.
아빠는 이걸 한 통 꽉 채워서 냉동실에 보관하셨는데 그렇게 보관한 곶감 말이는 살짝 얼어서 사각 사각해지고 단 맛은 비교적 줄어들어서 훨씬 깔끔한 맛이 났다. 그 많던 곶감 말이를 다 비워낸 것을 보시고 이제 곶감을 말릴 때면 항상 곶감 호두 말이를 만들어주신다.
과일 요구르트 바
![[크기변환]ChatGPT Image 2025년 8월 1일 오전 01_35_56.pn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01015410_febbhaeg.png)
어릴 적 집에는 요구르트 제조기가 있었다. 우유와 유산균을 넣고 발효를 시키면 찰랑거리던 우유는 점성이 있는 요구르트가 되었다. 그 시큼한 맛 때문에 항상 엄마 몰래 딸기잼을 왕창 넣거나, 달콤한 시리얼을 부어먹곤 했다.
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엄마는 무르기 시작한 과일이나 맛이 없는 과일로 잼과 청을 만들어 보관하셨다. 약한 불에 오래 끓이는 과일 잼 냄새는 생각보다 향기롭진 않았으며, 마트에서 파는 잼과 맛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요구르트와 잼은 냉장고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자리하고 있는 골칫거리들이었다.
해결책을 강구하던 어느 날 엄마는 아이스바 용기를 구해오셨다. 그리고 냉장고에 쌓여있던 요구르트에 잼을 넣고 섞은 뒤 용기에 부어서 냉동실에 넣어두셨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요구르트는 근사한 아이스크림이 되어서 돌아왔다. 딸기잼, 복숭아잼, 블루베리 잼으로 섞어 만든 요구르트 바는 시원하고 달콤했다. 귀여운 아이스바 모양도 한몫했다. 그 이후로 봄, 여름의 간식은 과일 요구르트 바가 되었고 우리는 요구르트 기계가 고장날 때까지 요구르트를 알차게 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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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과일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서 가족의 정성과 사랑이 스며든 하나의 풍경이었다. 좋아하는 과일을 기억해두었다가 퇴근길에 한 봉지씩 손에 들고 들어오던 아빠의 모습, 과일을 얼리고 말려서 여러 가지 간식으로 만들어주던 엄마의 손길에는 계절을 담은 배려와 우리를 위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해가 바뀌고 입맛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제철 과일은 식탁에 놓여 있고, 그 곁에는 늘 부모님의 손맛이 함께한다. 과일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풍경들, 웃음소리는 나에게 그 무엇보다 따뜻한 기억이다.
우리 집의 가풍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늘은 아빠가 피자두를 사 오셨다. 어서 맛보러 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