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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휴대폰으로 숏폼 영상을 마구 내려보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한 영상을 보았다. 온통 하얀 공간에서, 밴드 세션을 뒤에 두고 처음 보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가수는 개성 있는 연두색 원피스와,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긴 부츠를 신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엄청 화려한 비트나 풍부한 멜로디는 아니었고, 오히려 단순하지만 귀에 바로바로 꽂히는, 연두색 원피스만큼이나 개성 있는 노래였다. 노래가 제법 마음에 들어서 제목을 찾아보니, 『항복』이라는 노래였고, 가수의 이름은 윤마치였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노래를 발견하면, 꼭 남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병(?)에 걸렸기에 나는 언니에게 서둘러 이 노래를 들어보라고 재촉했다. 허망하게도, 언니 역시 이미 알고 있는 노래였다. 그렇게 난 윤마치를 알게 되었다.

 

 

 

Love is a magic



 

 

If you don't believe it you will never find it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게 

한시라도 빨리 넘기고픈 페이지 

엔딩은 완벽할 테니까 

I believe it now 

Our love is a magic yeah 

Do you believe it now? 

Our Love is a magic


윤마치 - Love is a magic 中

 

 

언니는 한참 동안 『항복』을 듣다가, 새로 발견한 윤마치 노래를 내게도 추천해 주었는데, 그 노래가 바로 『Love is a magic』이었다.

 

『Love is a magic』은 미국 드라마 Modern Love를 보고 쓴 곡이다. 윤마치는 '사랑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라고 생각한다 서술하며, 온 세상 사람들이 방식은 다르지만 같은 것을 느끼기에, 그것이 마치 마법같이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Love is a magic』은 코러스로 향하기 전에 마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처럼 고조되는 감정을 나타내는 비트 뒤에, 사운드가 겹겹이 쌓이면서 풍부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일까, 이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사랑이라는 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구를 가졌어도


 

 

 

어리석은 우리들은 말야 

저 떨어지지도 않을 별을 그리지 

은하수를 동경하고 달빛을 꿈꿔 

모든 걸 가졌다 해도 

우린 여전히 또 영원히 헤매고 헤매겠지

 

윤마치 - 지구를 가졌어도 中

 

 

그날은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동 재생되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어떤 노래가 나올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마치였다. 노래를 듣는 순간, 마치 중력을 거스르며 우주를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지구를 가졌음에도, 어째서 인간들은 만족하지 않는가?"

 

이 질문이 노래 가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늘 더 많은 것을 원하며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저 멀리 있는 별을 동경하고, 닿을 수 없는 곳을 꿈꾸며,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 우리는 영원히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더 큰 것을 향해 손을 뻗는 존재이니까. 이 노래는 그런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갈망을,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하게 되새기게 한다.

 

 

 

새벽에게



 

 

하고 싶은 말 굳이 널 통할래 

광활한 네 품에 나 몸을 던질래 

닳고 또 닳는 밤에 끓고 또 끓는 맘 

눈물 머금은 heart to heart

 

꽉 여민 마음들 살짝 풀어도 되지? 

어둠에 가리우면 부끄럽지 않잖니 

아침 해가 떠오르면 없었던 일이 되고 말 테니 

아무도 모르게 살짝 울어도 되지

 

윤마치 - 새벽에게 中

 

 

아직 해가 짧은 계절, 저녁을 먹고 밤 산책을 나온 적이 있다. 몇 분 걷지 않았는데 해는 금세 바다의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았고, 우리는 서늘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로를 걸었다. 해가 다 진 밤이었지만, 달과 별이 너무 밝아서 어둡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순간, 그 분위기가 떠오른다.

 

'새벽 감성'. 누구나 한 번쯤은 이 감성에 취해 괜히 케케묵은 일기장을 펼쳐보기도 하고, 평소라면 절대 쓰지 않을 편지를 쓰기도 한다.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을 시절, 취침 시간을 단속할 부모님이 곁에 없어서인지 새벽이면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침침한 노란 조명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날이 많았다. 그러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잠식되어, 별안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가끔 이렇게 혼자서 줄줄 눈물을 쏟는 건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닦으려 하지도 않은 채, 그냥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더 이상 떨 궁상도 없고, 쏟을 만큼 쏟았다 싶으면, 그제야 눈물을 쓱 닫고 잠이 들었다. 새벽은 끔찍한 흑역사와 망가진 건강을 선사하지만 가끔은 그 고요함이 날 다독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새벽이라는 시간은 참, 얄궂다.

 


*

 

윤마치는 일상의 조각을 모아 노래를 만드는 가수다. 그래서 그의 노래 속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는 순간들에서 시작된다.

 

아침에 알람을 듣고 짜증이 났을 때, 잠 못 이루는 새벽을 보낼 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지하철을 탈 때, 커피를 마실 때... 이렇게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장면들이 가사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내가 윤마치의 노래를 사랑한다. 거창한 세계관이나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아도, 그 순간 그의 노래를 들으며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언가를 비판하고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음악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그냥 흘러가는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음악이 더 값지게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떠올린 생각들이 과연 이 노래의 의도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 그저 편안하게,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있음에 감사한다.

 

그의 음악은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다.

 

윤마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평범한 하루도 조용히 빛나는 순간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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