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이익-"과 "삐이익-" 그 중간 어딘가에 걸친, 거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깊은 바닷속에 잠겼다 물 밖으로 튀어나와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는, 해녀들의 숨비소리다.
제주도에는 돌, 바람, 그리고 여자가 가장 많다고 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제주도에는 해녀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떤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물질을 했다.
해녀는 자신의 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부심과 당당함을 지닌 제주의 여성이며, 그들이 지키고 가꾸는 제주 바다는 풍요로운 생태계의 상징이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해녀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다. 해녀 공동체는 봉건적 위계질서가 아니라 언니-동생으로 이어지는 수평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위계가 있는 자매애로 결속된 공동체이다. 지시와 통제가 아닌 상호 간의 대화와 설득을 통해 민주적으로 구성원들의 이기심을 조율해나가는 공동체다.*
과거에는 제주도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교적 쉽게 제주도의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육지와 분리된 섬 문화는 다소 낯설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선하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채헌의 《해녀들 : Seasters》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기로 다짐했던 건 다른 것보다도 영문 제목이 눈길을 확 끌었기 때문이었다. 바다를 의미하는 'sea'와 자매를 뜻하는 'sisters'를 결합한 이 단어가 해녀들을 상징하기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1931년 12월 일제강점기에 발발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일제의 지배 아래 해녀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으며 이에 대항하는 내용으로 중심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해녀들의 공동체 정신은 특히 인상 깊고 감동적이었다.
해녀들 사이에는 계급이 존재한다.(소설 해녀들에서 묘사된 계급을 기준으로 한다.) 상군-중군-하군 그리고 해녀들의 리더인 대상군이 있다. 대상군 해녀는 바람과 파도를 읽으면서 바다를 살피고 해녀들을 안전하게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이 계급은 연차 혹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계급이 아닌 재능으로 결정된다. 숨을 오래 참고, 수압에 따른 귀의 압력 조절을 잘할 수 있어야 깊은 수심에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채집할 수 있는 역량도 한계가 있기에 해녀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물질을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할망 바당이 있다. '할망 바당'은 할머니를 뜻하는 '할망'과 바다를 뜻하는 '바당'이 결합된 제주 방언으로, '할머니들을 위한 바다'라는 의미다.
할망바당은 수심이 낮고 파도가 적어 비교적 쉽게 물질할 수 있는 곳으로 어린애와 파파 노인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상군과 하군이 구역을 나눈 것과 마찬가지로 해녀들이 오래 물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해녀들의 배려이고 지혜였다.
할망 바당에서 시작해 할망 바당으로 끝나는 게 해녀들의 한 생이었다.
《해녀들 : Seasters》 p.260
또한 항상 바닷속을 유영하는 해녀들에게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불턱이 있다. 불턱은 모닥불을 피우는 공간으로, 돌을 쌓고 그 가운데 '지들커'(땔감)를 넣어 불을 피웠다. 지금은 현대식 탈의실이 생겼으나 과거 불턱은 물질을 하고 나와 꽁꽁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수 있는 해녀들의 소중한 휴식공간이었다. 밥은 안 챙기더라도 지들커는 꼭 챙겨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 해녀들은 불턱에 둘러앉아 파도와 수온, 채취할 해산물, 잠수 영역 등을 논의해서 정했고 잠수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불턱은 마을과 가정의 대소사를 나누는 공동체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능력 중심의 계급 체계를 따르긴 하지만, 해녀들 사이에는 여전히 평등과 연대의 정신이 살아 있다. 항상 목숨을 내놓고 바다를 누비기 때문에 서로 돕고 신뢰한다.
《해녀들 : Seasters》에서 가족과 같은 유대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등장인물 덕순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마지못해 물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거센 해녀들과 고된 물질에 적응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해녀라고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해녀 삼춘들과 함께 물질을 하며 쌓인 시간 동안 덕순의 생각도 변하기 시작한다.
그때는 죽지 못해 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돌아보니 자신을 잡아끈 것은 다름 아닌 해녀들이었다.
이웃 할망 해녀가 버리려는 낡은 테왁을 얻어와 쓰는 저에게 자기는 이제 새 테왁을 들였다며 쓰던 테왁을 던져준 해녀들이,
짓궂게 놀려대면서도 빈 망사리에 물건 한 주먹씩을 덜어주던 해녀들이,
입술이 새파래져 덜덜 떠는 저에게 말없이 뚜데기를 덮어주던 해녀들이 울면서도 바당에 들게 했던 힘이고 이유였다.
성정이 불같이 거칠어서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하는 말마다 상스러워 말도 섞기 싫었던 이들이 저를 살리고 먹인 이들이었다.
《해녀들 : Seasters》 p.166
이제는 점점 사라져 가는 직업이 되었지만, 해녀들의 숨비소리와 불턱의 온기는 여전히 제주 바다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하다. 바다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이들의 삶은 우리가 잊고 있던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서로의 숨을 헤아리며 함께 잠수했던 해녀들처럼, 우리도 각자의 바다를 건너며 곁을 지키는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해녀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연대와 돌봄의 서사다.
*노우정, 「제주 해녀공동체의 특성과 지속가능한 마을어장 관리」, 제주대학교 대학원,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