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를 닮아 콩국수를 좋아한다 [음식]

사랑하면 닮고 싶어진다.
글 입력 2022.09.14 01: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가을이 성큼 와버린 지금에서야 여름 제철 메뉴인 콩국수 이야기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름을 떠나보내며 애틋한 마음으로 떠올린 콩국수 일화를 적어보고자 한다.

 


IMG_8252 중간.jpeg

 

 

더운 여름 날씨에 지쳐 입맛 없을 때 시원한 음식이 생각난다. 누군가는 냉면을 찾겠지만, 난 콩국수를 먹는다. 콩물을 후루룩 삼키면 잇몸 사이에 가득 낀 콩의 질감과 그 고소함이 좋았다.

 

난 집 근처 국수가게에 콩국수 메뉴가 빨리 개시되길 바랐다. 어디서도 콩국수를 찾지 못할 때면 마트에서 콩물을 사와 직접 콩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또 이번 여름은 콩국수 맛집 투어를 다닐 생각도 했다. 그랬지만, 더위에 못 이겨 집 근처 국수가게에서 콩국수 몇  그릇을 해치운 걸로 만족했었다.

 

콩국수를 자주 먹는 날 보며, 지인은 내게 왜 콩국수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난 시원함과 고소함이 좋아서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나의 콩국수 사랑은 엄마의 영향이 크다.

 

엄마는 '우리 딸은 엄마 닮아서 콩국수를 좋아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난 마음속으로 '내가 콩국수를 좋아하는 건 맞는데, 엄마를 닮아서? 도대체 어떤 논리일까. '라고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한 번은 엄마한테 콩국수를 왜 좋아하느냐고 여쭤봤다. 답은 예상한 대로였다. '고소하고 시원해.' 나와 같았다. 뒤이어 붙인 엄마의 말은 예상치 못했는데, '사실 외할머니가 콩물을 많이 만드셨지. 또 콩으로 두부도 만들고, 메주도 만들고.. 그리고 엄마의 할머니는 콩칼국수를 자주 해주셔서 어릴 때는 콩국수를 뜨겁게 먹었어.'

 

엄마의 대답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그림이 그려졌다. 어린 엄마가 밥상 앞에서 뜨거운 콩칼국수를 후후 불며 먹었을 장면을 상상하고, 외할머니께서 맷돌로 콩을 갈고 계신 모습을 어렴풋 회상하고, 아랫목에 메주를 쌓아 두어서 쿰쿰한 냄새가 풍겼던 방을 떠올렸다.

 

콩국수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새 외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음식, 엄마의 어린 시절, 외가댁의 풍경까지 더해졌다.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곰곰이 생각했다. '나를 닮아서 콩국수를 좋아한다.'라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나도 좋아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당신을 닮고 싶다. 그러면 당신과 나의 사이가 더 가까이 있는 기분이니까.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닮아가는 거 아닐까? 그러니 외할머니도 엄마도 그렇게 자신들이 사랑하는 엄마를 닮아갔던 거 아닐까?

 

결국 인정했다. 나도 엄마를 좋아하니까 콩국수를 좋아한다고. 알고 보니 나의 콩국수 사랑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나 대대로 대물림되는 어마어마한 사랑이었다.

 

한편으로 콩국수 이야기를 하다가 외할머니를 떠올렸을 엄마를 생각했다. 전에 엄마는 외할머니께서 만드신 마지막 고추장을 아껴 쓰시겠다며 시판용 고추장을 사 오셨다. 외할머니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어서겠지. 무얼 봐도 외할머니를 그리워했을 엄마이다.

 

그러고 나서 이번 추석을 맞이해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것이 있다. '엄마는 무얼 봐도 딸인 나 역시도 떠올렸겠구나.' 추석에 내가 사는 곳을 방문한 엄마는 좋은 건 뭐든 다 해주고 싶으신지 반찬과 과일을 가득 싸오셨다. 또 내가 사는 동네를 함께 거닐면서 '우리 딸 고생이겠다.'라고 말씀 하셨다.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엄마, 나를 걱정하는 엄마가 계신다. 누군가의 딸로서 누군가의 엄마로서 양쪽을 오가며 쌓아왔을 그리고 앞으로도 쌓아갈 당신의 애틋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 애틋함은 변치 않고 일정하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로 말이다.

 

여름은 지나갔지만 지금 같은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 난 콩국수가 더욱 먹고 싶어졌다.

 

 


강민영.jpg

 

 

[강민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